필상은 처와 더 이상 다투어야 좋을 것이 없고 또 아들 앞에서 처와 다툼을 해 계속해 봐야 볼 상만 사나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 알았어. 이번 한 번만 당신이 참고 이해해 주면 앞으로는 우리 애들도 살피도록 할게. 그리고 이것만은 알아줘. 나도 우리 애들을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을. 성호는 내 말 알겠지.”
아버지의 그 말씀에 성호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성수 형이 이 말을 들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잘 알겠습니다.” 한다.
필상의 처도 곁눈으로 필상을 보며 ‘이 양반이 아들들을 사랑하기는 하는 모양인가?’ 하고 생각한다.
한편 필상은 앞으로는 우리 애들도 살피도록 하겠다는 말을 하고서도 앞으로 경제적으로 나아지면 몰라도 현재와 같은 형편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말을 듣는 필상의 처도 또한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니나 어쨌든 필상이 그렇게 말하고 자기들이 말하는 동안 앞에 말없이 앉아서 듣고만 있는 성호 앞에서 자꾸 남편과 다투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갈 무렵 영우가 “형님!”하고 부르며 들어선다.
영우는 술이 좀 취한 것 같다.
그 소리에 필상은 처와 좀 떨어져 앉으며
“그래! 아운가? 어서 들어오게.” 한다.
“그럼! 저는 나가겠습니다.”
하고 일어서 나가던 성호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영우를 보고
“작은아버지 술 드신 것 같네요.”하고 말을 붙인다.
“성호구나! 그래! 어머니가 돌아오셔서 기분이 좋아 한잔했다.”
“잘하셨어요. 그럼, 말씀 나누세요.”
성호가 문을 닫고 나가자
“형수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돌아와 주셔서.”
영우가 필상 처를 보고 깍듯하게 하는 인사에 필상의 처는 아직 자기 마음이 풀리지 않고 또 자기로 인해 영우가 마음고생을 한 것에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그 인사에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그것을 본 필상이
“여보! 아우가 인사하지 않아? 사람이 인사를 하면 받아야지.”
필상이 한마디 했지만 그래도 필상의 처는 아무 말이 없다.
“괜찮습니다.”
라고 한 영우가 필상의 맞은편에 가서더니 필상에게 큰 절을 한다.
“아니 이 사람 왜 이러나? 자네 술이 과했나? 안 하던 짓을 하게.”
얼떨결에 절을 받으며 놀랜 필상이 이렇게 말하고 필상에게 절을 끝낸 영우는 필상의 처를 향해서며
“형수님도 절 받으세요.”
하고는 필상 처에게 또 큰 절을 한다.
필상의 처도 영우의 이러한 행동에 당황하면서 얼른 맞절로 받고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인다.
절을 끝낸 영우는 필상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앉으며
“형님! 그리고 형수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분가해 나가겠습니다.”
그 말을 하곤 밖에다 대고
“여보! 들어와” 하고 소리친다.
그러자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영우의 처가 조촐한 술상을 들고 들어온다.
“이 사람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분가하다니?”
필상의 물음에
“진작 분가를 하였어야 하는 것인데, 염치없고 아둔한 저희가 아직까지 형님께 붙어있어 형님께 누를 끼쳤습니다.”
영우의 그 말에 필상의 처가 영우를 바라보는 눈에 노기가 인다.
자기가 일으킨 사단이 영우네에게도 섭섭하긴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분가해 나간다고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똥낀 놈이 성낸다고 이 사단이 어째서 일어났는데 하는 원망과 그동안 쌓은 정이 얼만데 이런 일로 분가를 하겠다는 건가?
자기들이 내 입장이라면 나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해도 너무 하는군!
자기가 일으킨 일로 영우네가 마음고생했을 것 같아 조금은 미안했던 마음이 이런 생각들로 채워진다.
“이 사람이 점점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누가 누구에게 누를 끼쳐.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온 거야. 동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거야?”
하는 필상의 소리가 높아 간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형님이 보살펴 주신 은혜는 저희가 죽어도 못 잊을 겁니다.”
“누가 그런 소리 듣자고 했어. 그렇게 말하면 자네는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나. 나도 늘 자네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별말씀 다 하십니다. 그리고 분가해도 같은 마을에 있을 것이고 형님댁에 큰일은 제가 맡아 하겠으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아니 동생! 누구 맘대로 분가를 해? 안 돼! 분가는 절대 안 돼.”
필상은 강경하다.
“형님의 마음은 충분히 압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이미 이사할 집을 얻었고 내일 이사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자네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
그동안 경제권은 늘 필상이 쥐고 있고 용돈 정도만 받아쓰던 영우에게 집을 얻을 만한 돈이 있을 턱이 없다.
“전세비로 6개월간 농사일을 해주기로 하고 얻었어요.”
“참 한심한 사람이군. 그러면 설혹 분가한다고 해도 무얼 하며 어떻게 살 작정인가?”
“걱정 마십시오. 그 집에 일을 해주며 끼니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럼! 지금 머슴 노릇을 하겠단 말인가?”
“머슴이면 어떻습니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데. 무엇을 하던 열심히 살면 되지요.”
“그렇게 하면 애들은 어떻게 하고?”
“애들은 다 잘았겠다. 대학 다니는 두 놈은 형님이 등록금과 입학금을 해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저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해서 해결해야죠. 딸애는 고등학교야 어떻게 하든 마치겠죠. 여잔데 대학이야 안 가면 어떻습니까?”
“이 사람 말하는 것 좀 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그 애들 큰아버지야. 나는 그런 꼴 못 봐. 그러니 잔말 말고 분가한다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해.”
필상의 그 말이 끝나자
“서방님은 내가 성수일로 집을 나갔다 왔다고 그 일로 섭섭해서 분가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마음에 일어나는 노기를 참으며 침묵하고 있던 필상의 처가 분기가 서려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힐난한다.
“사단을 부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할 말이 있어?”
한 것은 필상이고
“아닙니다. 형수님!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 것은 영우이다.
“그럼! 무어예요? 형님이 이렇게 말리는데 분가하겠다고 고집하시는 이유가?”
“형수님께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제가 형수님 입장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지금까지 너무 염치없는 짓을 했지요. 그러니 형님은 역정만 내지 마시고 분가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살다가 힘들면 형님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그 말에 지금까지 아무 말 없던 영우의 처가 입을 연다.
“아주버니! 그렇게 해주세요. 애들 아빠 말대로 저희가 너무 누를 많이 끼치고 있었어요.”
필상에게 이렇게 말하더니 다시 필상의 처를 보고
“형님! 죄송해요. 형님께 보답은 못 할망정 심려를 끼쳐드려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아우가 나에게 무척 섭섭한 모양이군.”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럼! 무엇이야? 아직까지 잘 있다가 내가 집에 돌아오니까 나간다고 하는 게? 내가 성수 일로 성수 아버지한테 섭섭한 감정이 일어 사단을 일으켰지만, 그 일로 서방님과 아우가 분가한다고 나설 줄은 몰랐네.”
필상의 처 말에 섭섭함과 노기가 서러있다.
“형님! 그래서가 아니에요.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것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아주버님이나 형님께 섭섭한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도리를 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네에 있는 것이니까 자주 뵐 것이고요.”
그 후에도 많은 말을 했으나 분가하겠다는 영우네와 못 시킨다는 필상네 의견이 팽팽해 며칠 더 생각해 보자는 필상의 제안으로 결론을 못 내고 그날은 그렇게 끝났다.
이야기 후 필상은 당신이 사단을 부려 일이 이렇게 커졌다며 처를 나무라고
필상 처는 당신이 좀 더 융통성이 있었으면 내가 사단을 부렸겠냐 그 일로 분가를 하겠다는 성도네도 섭섭하다며 남편을 공박했다.
그러면서도 영우네가 분가하겠다는 것에 대하여는 두 사람이 다 당황해한다. 너무나 뜻밖에 일이라
영우네는 이야기를 끝내고 나오면서 잘못하면 우리가 형수님의 일을 섭섭하게 생각하여 그런 줄로 형님네가 오해하시겠지만,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잘 말씀드려 오해를 풀어드리고 이번에 분가해서 형님네 짐을 더러 드리자고 의견을 나누었다.
며칠 후 영우가 다시 분가 문제를 거론했다.
방을 얻어놓은 집에서도 독촉이 심하고 우리가 분가하는 것이 도리라며 우리가 도리를 지키게 해 달라고 필상을 조른다.
그러면서 며칠을 더 끌던 이 문제는 영우의 뜻이 확고하여 마침내 필상은 영우의 분가를 허락하고 필상의 이름으로 된 논 열다섯 마지기에서 다섯 마지기와 밭 이틀갈이 중에서 하루갈이를 영우에게 주고 마침 어미 소가 낳은 암송아지도 나누어 주기로 했고 필상이 보증을 서 가을에 전세금을 주기로 하고 집도 다시 살만한 곳에 전세로 얻어 주었다.
“그동안 신세 진 것이 얼만데 제가 재산을 나누어 갖느냐. 이러면 우리가 재산을 나누어 가지려고 분가한다고 한 것이 되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의 도리를 지키려고 한 것이지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재산을 받을 수 없다”
는 영우와
“한 집안이 되면서 지금까지 서로 도우며 모은 재산이니 이 재산에 반은 자네 것이니 당연히 받아야 한다. 재산을 못 받겠다면 분가를 하지 못한다.”
하는 필상의 주장이 팽팽하였으나 이번에는 필상의 고마운 마음에 영우가 져 재산을 필상의 주장에 따라 나누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세상에 있었네요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이 밀려오네요 감사드립니다.
지키미님!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용칠이님
감사합니다.
요새는 비가 자주 와서 우울할 수 있습니다. 활기찬 하루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