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3:10-14 충직한 사람을 성전에 세우다
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레위인은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고 예배의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레위인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 생존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 밭으로 간 레위인(10) 제사장은 백성이 바치는 제물 가운데서 자신들의 몫을 받았습니다(신 18:3). 그러나 레위인은 제사장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십일조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백성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레위인은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계를 위해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과 노래하는 사람 중 일부가 자기 밭으로 가서 농사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누구에게도 유익한 일이 아닙니다. 레위인이 레위인의 일에 충실한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일입니다.
백성들이 십일조를 가져오다(11-12)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며 레위인을 제자리로 복권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십일조의 회복은 단순히 백성들이 십일조를 지켰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유다 전체를 생각해서도 영혼이 잘되어 범사가 잘되어지는 기반을 다지는 일입니다.
충직한 사람들(13) 느헤미야는 제사장, 서기관, 레위인 그룹 중 한 사람씩을 임명해 창고지기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충직한 사람들로 인정받은 사람들로서 레위인에게 십일조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충직하다”는 말은 ‘신실하다’, ‘책임감이 있다’의 뜻입니다. 충직은 재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닙니다. 모든 직분자의 필수 덕목입니다.
나를 기억하옵소서(14)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집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한 수고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행한 선한 일이라는 구절에서 선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하나님에 대한 느헤미야의 변함없는 충성과 헌신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어떤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보상해 줄 선한 일임을 기억합시다.
스위스의 의사이자 작가인 '폴 투르니에'는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인격 의학의 창시자입니다. 어느 날, 그는 악성 빈혈로 고생하는 한 직장인 여성을 진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반년 이상 치료해도 효과가 없어서 입원 치료를 받기를 권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녀는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치료 전부터 이전과는 다른 건강한 모습이었고, 검사 결과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특별한 것을 했나요?” 그러자 환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죽도록 미워하던 한 사람을 용서한 것뿐이에요.” 그녀의 고질적인 질병은 다름 아닌 미움과 증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병의 치료법은 다름 아닌 ‘용서’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