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추석명절이다.
예전 어릴 적에는 추석이고 설이 손꼽아 기다려졌으나
나이들어서는 어릴 때처럼 감흥이 별로 없다.
그 때는 추석이나 설이 돼야 옷이라도 한 벌 얻어 입거나
그것도 안되면 운동화나 새 고무신을 한 켤레 얻어 신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추석명절 준비에 며칠전부터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다.
우선 명절에 입을 한복을 꺼내 빨래하고 다듬질해서 풀먹여 다림질과 동전 달기 등 손봐야 하고
놋그릇 꺼내서 가마니 위에 놓고 기왓장 잘게 가루내어 짚으로 녹을 닦아야 하고
밥을 쪄서 말려 모래불에 튀겨 조청을 적당히 배합해서 산자를 만들고 유과도 만들어야 했다.
술도 담아야 하기 때문에 고두밥을 해서 누룩과 술 도가지에 비벼 넣고 이스트를 털어넣으면
한 이틀 뒤면 술독 안에서 술이 복닥복닥 괴기 시작하였다.
설에는 떡국제를 지내지만 추석에는 햅쌀로 밥을 짓는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하기 때문에 제삿날 일주일전부턴
남의 장례식 같은 곳에 문상도 가지 않는다.
제사지내는 법은 유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각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아마도 이조시대 사색당파가 심할 때부터 서로 달리 하지 않았나 추측되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옆에서 제사를 지내 왔으므로 우리 집안의 제사지내는 법을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먼저 벽을 향해 병풍(그림이 아닌 글자가 적힌 면)을 치고 앞에 제상을 놓고 깨끗이 닦는다.
제상상 제일 안쪽에는 지방을 붙인 신위상자를 놓는다. 지방은 한지에 '현조고학생부군신위,현조비유인성주도씨신위,
현조비유인밀양손씨신위,현고학생부군신위,현비유인진양정씨신위'라고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쓴다.
조부모가 셋인 것은 큰 할머니께서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조고는 할아버지,조비는 할머니,고는 아버지,비는 어머니를
지칭하고, 학생은 벼슬이 없는 경우이다. 앞에 현자를 붙이는 것은 나타날 현자로 모신다는 뜻이고 뒤에 신위라고 하는 것은
돌아가신 분이 여기에 계신다는 뜻이다. 지방을 한자로 쓰지만 한자에 익숙하지 않으면 한글로 써도 된다. 또 순 우리말로
아버지 어머니 신위라고 써도 되고 사진이 있으면 사진을 올려 놓아도 된다.
제물을 올리는 법은 아무리 제물을 많이 준비하였어도 5열로 차린다.
제일 안쪽에는 지방을 붙인 신위함이 서고 그 다음인 첫 열에는 멧밥과 국 ,떡 그리고 양 끝에는 촛대와 촛불이 위치한다.
둘째 열에는 잔받침과 술이다.
셋째줄은 탕이다.삼탕 아니면 오탕이다. 문어,조개,쇠고기등이고 오른쪽에는 생선류로 대구,돔,민어,조기등을 놓는다.(갈치니 삼치등 치자가 붙는 생선을 쓰지 않고, 배를 따서 내장을 꺼낼 때 왼쪽을 딴다. 생선에는 대나무 꼬챙이를 끼워 놓는다)
넷째줄에는 나물류인데 고사리,도라지,콩나물,푸른 채소류, 두부,간장, 김치 등을 올리고 자반 고기(전어나 작은 조기)도 올린다.
다섯째줄에는 과일류로서 주로 조율이시 순이다. 홍동백서라고도 한다.즉 대추 밤,배,감, 사과,밀감,참외,수박 등의 과일과
유과,산자,백문어 가위로 꽃무늬처럼 오린 것을 배열한다. 과일류에 대추가 빠지지 않는 것은 대추나무는 꽃이 피면 어김없이 열매가 맺혀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또 밤은 땅속에 파묻혀 싹이 올라와도 그 본래의 껍질이 썩지 않고 오랫동안 싹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서 조상이 죽아서도 후손들을 끝까지 보호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과일중에도 복숭은 쓰지 않는다,나물에도 마늘이나 고추가루도 사용하지 않는다.떡도 팥고물은 쓰지 않고 콩고물이나 절편 등을 쓴다.밤도 쪽밤이나 외톨밤은 쓰지 않는다)
제사지내는 법은 제사상이 다 차려지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음 대문이 열려있는지 다시 확인한 다음 제주를 비롯하여 남성들만
상 앞에 도열하여 먼저 모두 두 번 절한다.
다음에는 제주 혼자서 절하고 상 앞에 꿇어 앉는다. 이 때 다른 사람이 잔을 가져다 주면 두 손으로 받쳐들고 술 조금 부어 잔을 씻는다. 다시 잔을 채운 다음 촛불에 반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린 다음 잔대 위로 올린다.
이 때 젓가락은 음식 위로 걸친다. 두 번 절하고 엎드린다.
순번 대로 잔을 치고 모두 끝나면 멧밥 두껑을 열고 숫가락을 밥그릇 위에 꽂는다.
기제사 때는 제주는 '유세차 ~' 하면서 축문을 읊조린다. 모두 엎드려 유숙할 동안에 국을 냉수로 바꾸어 밥을 세번 떠서 물에 말아 놓는다.
냉수에 말아서라도 많이 드시라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유숙을 몇시간 계속해서 부엌에서 기다리던 아녀자들이 일부러 닭집에 가서 닭을 건드려 첫닭 울음소리를 내도록 했다고 한다. 귀신들이 첫닭울음소리를 들으면 떠날 시간이라고 알고 떠나기 때문이란다.
유숙이 끝나면 제주가 조상님들을 향해서 '사제하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한 다음 잔을 조금 당겨 놓고 수저를 걷은 다음
무두 두 번 절하면 제사가 끝난다. 지방을 촛불에 불을 붙여 태우고 잔술을 들고 음복하면 끝이다.
온가족이 둘러 앉아 음식을 갈라 먹과 난 뒤에 산소에 성묘를 다녀온다. 추석이나 설 때는 당일 성묘갈 때 그냥 가는 사람들도 있고 술과 과일을 조금 따로 장만하여 차려 놓고 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벌초는 추석전 한 보름 전에 하면 된다.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은 효의 기본이고 자손된 도리이다. 조상의 음덕을 입는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제사는 정성이다.
제수를 많이 장만하여 푸짐하게 차리면 우선 보기는 좋다.
하지만 뒷처리가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간소하게 차리는 게 좋다.
과일은 짝수 개를 사용하지 않는다.3개 5개, 7개 이렇게 홀수 개로 차린다.
남의 제삿상에 밤 놓아라 감 놓아라 간섭하게 되면 싸움난다.
각자가 정성들여 모시면 된다. 그러나 기본적인 전통예절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