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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정말 친형제 이상의 정을 나누었다.
피난을 나와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자기를 받아 동생으로 삼아주고 지금까지 큰 걱정 없이 살게 해준 필상을 영우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은혜에 감사했으며 20여 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 조금도 자기의 심정을 거스르지 않고 잘 따라준 영우를 필상 또한 고맙게 생각했다.
다음 날 영우네는 분가를 했다.
분가한 날 저녁 필상이 그동안 영우네가 거처하던 불 꺼진 건너 방을 보며
“당신이 참고 사단을 안 일으켰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다시 처에게 섭섭한 감정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그걸 빌미로 분가해 나가는 사람들은 무어예요?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그리고 자기들이 내 입장이면 자기들은 안 그랬겠어요?”하고 필상 처도 섭섭함을 나타낸다.
“당신도 섭섭하긴 섭섭한가 보군.” 하는 필상의 한숨 서린 말에 필상의 처도 미안했던지 잠시 침묵을 지킨다.
“그런데 당신은 애가 집을 나가 몇 날이 지났는데도 걱정이 안 돼요?”
하고 필상처가 시간이 좀 지난 후 묻는다.
“걱정이 되지만 어떻게 해. 어디가 있는지 알아야 데려오든지 하지.”
“짐작이 전연 안 돼요?”
“짐작이 가는 데가 있기는 한데 며칠 있으면 연락이 오겠지.”
“당신은 무얼 믿고 그렇게 말해요. 그동안 잘 못 되기라도 하면.”
필상처의 걱정스런 말이다
“무슨 말이야. 잘 못 되다니? 당신은 그렇게도 성수를 몰라? 성수는 좀 우둔하기는 해도, 아니 실은 우둔하지도 않아 제가 우둔한 척하는 거지. 심성이 바른 애야. 홧김에 집을 나갔지만 어디 가서 사고를 치거나 못된 짓을 할 아이가 아니야.”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처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이 사람이 나는 그 애 아빠야. 아들애 심성을 애비가 모르면 어떻게 해.”
필상의 그 말에 처는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짐작이 가는 데가 어딘데요?”
하고 다시 묻는다.
“가지고 있는 돈이 다 떨어지면 집으로 안 들어오면 대구로 가겠지”
독백하듯 하는 필상의 그 말에 필상의 처는 6.25 때 피난 가서 사귀어 필상이 지금까지 형님으로 모시고 해마다 서로 몇 번씩은 왕래며 지내는 이효식을 생각한다.
이효식은 필상이 피난지 대구에서 만난 사람으로 피난민으로 어려움에 처한 필상을 도와주고 같이 미군부대 물건을 판매하여 피난지에서 필상이 살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필상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자주 편지도 하고 사업 관계로 바쁜 효석은 적성을 찾는 일이 드무나 필상은 자기보다 나이가 한 살이 많은 효식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한 해에 몇 번씩 인사차 찾아가곤 한다.
명절에는 문안을 드려야한다며 아이들도 데리고
필상의 이런 태도에 효식도 고맙게 생각하고 필상을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하고 필상과 영우의 관계를 알고는 어려운 처지의 영우를 형제처럼 돕는 필상은 귀하게 그런 필상을 친형처럼 따르는 영우를 참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효식은 전쟁이 끝난 후 전쟁 때 장사를 해서 모은 재산으로 대구에 커다란 과수원을 포함한 농장을 가지고 넉넉한 생활을 한다.
부유한 생활을 하는 효식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딸만 셋이고 아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섭섭하게 생각하며 가끔 필상에게 오면 필상의 아들들을 귀여워하고 특히 성수를 예뻐하여 가끔 웃음의 소리로
“이 집에는 아들이 여럿이니 성수는 우리 아들 노릇을 해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성수를 사위 삼자고도 했다.
이러는 효식이므로 필상의 아들들도 효식을 큰아버지같이 좋아했다.
아들의 성미를 잘 아는 필상은 아들이 홧김에 집을 나갔지만 어디 가서 사고를 치거나 못된 짓을 하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고 가지고 있는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오거나 대구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상의 예상한 대로 며칠 후 효식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성수가 자기네 집에 와 있으니 염려 말라는 말과 어떻게 하였기에 대학에 들어가야 할 성수가 자기네 농장에서 농장 일을 배우겠다고 하느냐고 했다.
편지를 받은 필상은 대구로 내려갔다.
성수가 대구로 내려가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집을 나온 성수는 참으로 섭섭하고 가슴이 아팠다.
대학교를 합격하고도 입학금을 못내 대학을 못 간다니, 집에서 능력이 없어서 못 보낸다면 이해하겠지만,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성도형과 자기와 같이 입학한 성국은 아버지가 등록금과 입학금을 만들어 주고 자기는 이류대학에 입학했다고 입학금을 안 만들어 주시다니 아버지의 처사가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날 뿐이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여 들어간 대학인가!
철이 들면서 대학은 나와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중학교 특히 고등학교에서 무력했던 자신의 존재감을 세우려고 또한 말씀은 안 하시지만 늘 성도 형과 성국에게 밀리는 자기 자식들에게 섭섭함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 실력으로는 대학에 못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때에 자기가 대학에 합격함으로써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여 들어간 대학인데 아버지는 그것을 알아주기는커녕 의형제인 작은 아버지의 아들들의 등록금과 입학금은 만들어 주고 자기의 입학금은 안 만들어 주신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친자식인 자기에게
처음에는 아버지가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그래도 나는 친아들인데 3월에 학교에 등록하여야 할 때가 되면 입학금을 만들어 주시겠지 하고 설마 외면하시겠는가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로 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 처사에 성수는 분하고 슬퍼서 저절로 눈물이 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슴이 끓는다.
분이 받쳐 집을 뛰쳐나온 성수는 서울로 올라와 동기생 중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의 자취방이나 하숙집을 전전하며 낮에는 늦잠을 자거나 만화책을 보며 뒹굴다가 밤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울분을 토로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낮에 친구들 방에서 뒹굴 때는 남들은 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혼자 남아 만화책이나 보며 뒹구는 자신이 한심하고 밤에 친구들과 술을 먹을 때는 모두 대학생이 되어 앞서가는데 자기만 뒤처지는 것 같아 슬펐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점점 높아갔다.
그러면서도 불량배와 어울리지 않고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것 같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거의 고등학교 친구로 이번에 대학입학을 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필상의 말대로 성수의 심성이 그렇게 악하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하고 있었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도 성도와 성국의 육성회비를 먼저 마련해주고 자기와 성호의 것은 늦게 해주어 밀린 육성회비 때문에 선생님한테 여러 번 창피를 당하고 어떤 때는 육성회비를 가지러 집에까지 쫓기어 왔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번에도 이렇게 대학교를 입학했는데 친자식인 자기보다는 의형제 아들인 성도의 등록금과 성국의 입학금은 마련해 주고 자기 것은 안 만들어 주니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아무리 성국이 S대를 들어가고 자기는 K대를 들어갔어도 자기는 친아들이 아니냐. 너희들은 우리 아버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있느냐고 하며 친구들도 여러 번 들어 이제는 식상 할 정도인 이야기를 또 반복하고 흥분하여 열변을 토한다.
그때 옆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성수네들이 떠드는 소리를 처음부터 듣고 있던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어른이 술병을 들고 성수네들이 술을 먹고 있는 곳으로 다가와 앉으며
“젊은이들 어떤가? 내가 혼자여서 심심해 자네들과 술 한 잔 같이하고 싶은데 괜찮겠나? 오늘 자네들이 먹은 술값은 내가 내기로 하고.”
하고는 젊은이들의 동의를 구하는 말과는 달리 의자를 끌어 앉으며
“자! 우선 한 잔씩 들지.”
하고 얼떨떨해하는 성수네들에게 자기가 들고 온 술병으로 한 잔씩 따르고 그 병을 성수에게 내밀며 “내게도 한 잔 따르게.” 한다.
얼결에 술병을 받아든 성수가 술잔을 채우자
“모두 한잔 들지. 브라보!”하고 권하는 그 바람에 성수네들도 얼떨결에 모두 들고 있던 잔을 비운다.
어묵 안주로 입가심을 한 그 어른이 자기의 잔을 들어 성수에게 권하며
“자네 아버지 무얼 하시는 분인가?”
하고 묻는다
“왜 그러시는데요?”
낮 모르는 사람이 느닷없이 자기네 술자리에 끼어들어 자기들의 흥을 깨더니 이번에는 이상한 질문을 해 당황한 성수가 이렇게 되물었다.
“아니, 옆에서 우연히 자네 말을 들으니 자네 아버님이 참으로 못 쓸 분 같기에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데 그러하신가! 해서 그러네.”
“왜 남의 아버지를 보고 쓸 분이니 못 쓸 분이니 하고 그러세요?”
묻는 말에 가시가 있는 것이 술기운에도 자기는 나쁜 아버지라고 혹평을 하면서 남이 자기 아버지를 나쁘게 말하니 성수는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내가 옆에서 들으니, 친자식인, 자네에게는 대학 입학금을 안 해주시고 의형제인 동생의 아들들 학비를 두 사람이나 해줬다고 하니까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데 친자식보다 의조카를 더 위하시나 해서 말이야.”
“시골에서 농사를 지시는 분이에요.”
“농사를 크게 지으시나?”
“아니에요. 논 열다섯 마지기에 이틀갈이 밭에 비닐하우스로 특용장물도 하셔요.”
성수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전부인가?”
“한집에 같이 사시는 의형제인 작은 아버지와 같이 틈틈이 집수리 등의 잡일도 하셔요.”
“자네 집의 학생은 대학교에 다닌다는 두 사람과 자네뿐인가?”
“제 밑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이 둘이 더 있어요.”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꼬치꼬치 남의 집안에 대하여 묻나 하는 생각에 반발이 생겼지만, 상대가 어른이고 지금까지 댓꾸를 했으니 그만 둘 수도 없어 하는 성수의 대답이 뿌루퉁해진다.
“그만한 농사를 지시며 두 사람이나 대학을 보내시고 고등학생이 두 사람이라고? 자네 부친이 대단한 분이시네.”
조금 전에는 아버지를 못 쓸 사람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대단한 분이라고 하니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종을 잡을 수 없는 성수는 잠자코 앉아있다.
“생각해 보게. 그 농사에서 얼마나 나온다고 두 집 살림에 대학생 두 사람과 고등학교 두 사람을 공부시키나 앞으로 대학에 들어간 사람은아르바이트를 하여야 할 것 같군. 지금 대학을 다니는 두 사람은 명문대학이라 중고등 학생들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네만 자네는 자네가 입학한 대학에 들어가면 그런 아르바이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다른 일자리도 누가 자네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키려고 일자리를 비워 놓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자네가 대학 다니며 써야 할 모든 비용 등록금에서 하다 못해 용돈까지 모두 집에서 대 주어야 하지 않겠나? 잘 생각해 보게.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나는 가네.”
하고 그 어른은 성수가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휭하니 일어나 나가버린다.
이 시대에 대학생 아르바이트는 중 고등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제나 입주식 과외가 대부분인데 성수처럼 이류대학인 K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아르바이트가 쉽지 않고 시절이 어려운 때라 다른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쉽지 않다.
그 사람이 가고 난 후 술자리 흥도 깨져 자리를 접고 일어섰다.
자기가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의 집으로 돌아가는 성수에 귓전에 그 사람의 말이 맴돈다.
집에 도착하여 잠자리에 들고 나니 더욱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나고 그 사람이 마지막 말을 나에게 해주려고 술자리에 합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로해서 아버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찌 보면 아니 실제로 자기가 너무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 같다.
대학생 두 사람의 등록금과 입학금 그리고 고등학생 두 사람의 학자금을 합치면 3백만 원에 가까운 큰돈을 마련해야 했을 텐데, 그 외에 올해 농사 자금까지, 그것을 마련하시느라 애쓰셨을 아버지 모습이 그려진다.
얼마 안 되는 농사를 지으며 그렇게 많은 돈을 마련하시며 아버지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것도 모르고 철없이 대학입학 했다는 기쁨에 집안 살림 생각은 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떼를 썼고 그 일로 집을 나왔으니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라도 집안의 위계를 위해서 공부 잘하는 사람, 명문대학에 들어간 사람을 먼저 공부시키려는 아버지처럼 나도 했을 것이다.
농촌에서 적은 농사를 지며 많은 돈을 구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선택을 하여야 했고, 그리고 그 선택은 누구나가 이해되고 납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선택의 기준을 세웠고 그 기준에 따른 것이다.
난 참 어리석었구나.
내 생각만 했지 집안의 형편과 아버지의 입장은 전연 생각 안 했으니.
가슴이 먹먹해지며 아버지께 죄송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대학을 못 간다면 일찌감치 기술을 배우자.
그래 그것이 좋겠다.
무슨 기술이 좋을까 생각하다 효식의 생각이 나고 대구에서 크게 농장을 하고 자기를 아들처럼 생각하는 효식이라면 자기의 청을 들어주고 기술도 잘 가르쳐 주리라 그리고 농장에서 과수원예 등의 기술을 배워 나도 나중에 농장을 가져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대구 효식이네 농장으로 내려갔다.
성수는 그런 학생이었다. 선량하고 좀 모자라는 것 같으면서도 속이 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바로 고치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는 그런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등치가 크고 운동도 잘하는 성수를 학생들 중에 금촌 시내에서 불량한 깡패클럽에 있는 학생들이 성수를 꾀어서 자기들 클럽에 가입시켰다.
적성 시골서 자라다 도시로 나와 마음이 들떴던 성수는 처음에 멋도 모르고 그 깡패클럽에 가담 했다가 나중에 그 클럽이 술이나 먹고 싸움이나 하고 말썽을 부리는 조직이라는 것을 알고 또 한 번 나쁜 일에 휩쓸려 정학을 당한 후 그 조직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성수는 그 조직에서 탈퇴를 했다.
그때 깡패들이 클럽에서 빠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였지만, 성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여러 번 깡패 패거리에게 끌러가 흡씬 두들겨 맞아 거동이 불편하여 어렵게 학교에는 나갔지만, 장시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집에 가기는 어려워 학교에 일이 있어 못 간다고 하고 삼 주간이나 집에 오지 못하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끝내 거기서 탈퇴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이초롤님!
지키미님!
무혈님!
감사합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세요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