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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로 가며 필상은 자식이지만 성수에게 감사하게 생각했다.
처가 집 나간 성수가 걱정도 안 되냐고 물을 때는 처가 걱정할까 봐 성수를 잘 안다고 큰소리치고 장담했지만, 속으로는 혹시 충격으로 성수가 나쁜 길로 빠지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성수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효식에게도 언제나 변함없이 자기를 동생처럼 대하여 주며 보살펴 주는 그 마음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아무리 효식의 집에 가 있다고 하더라도 애비의 처사로 섭섭해서 집을 나간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아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상태가 궁금해 견딜 수 없어 아침 새벽같이 집을 떠났지만, 필상은 오후 세 시쯤 하여 효식의 집에 도착해서 마침 점심 곁두리를 먹고 농장으로 나가려던 성수를 만났다.
대구에 내려온 아버지를 본 성수는 그래도 아직은 섭섭함이 다 풀리지 않은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 못하고 화를 내고 무단으로 집을 나온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 때문인지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과수원으로 나간다.
그런 아들을 보고 필상도 노여움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커서 성수의 성의 없는 인사를 모르는 척하고 받는다.
그렇게 어색한 부자의 상봉을 본 효식은 씩 웃으며 필상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필상이 자기 처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고 앉자
“참! 부자의 상봉이 볼만하군. 대체 자네 성수에 어떻게 했는데 그러나?”
하고 묻는다.
“왜요? 성수가 무어라고 해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성수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대답을 안 하는군. 다만 농장 일을 배우고 싶어서 왔으니 농장에서 일만 하게 해달라고만 해서 ‘대학은 안 가냐?’ ‘집에는 말을 하고 왔느냐?’ 하고 물으니까 ‘아무런 것도 묻지 마시고 농장에서 일하게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서울로 올라가겠어요.’라고 해서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잡아놓고 자네에게 알린 거야. 그 후에도 대학을 가야 할 애가 저러고 있어 몇 번 대학 안 갈 것이냐고 물었지만 역시 대답하지 않고 농장 일만 열심히 하고 있어”
필상은 한숨을 쉬고는 그동안의 일을 대강 말하고 두 집에 풍부하지 않은 경제권을 쥐고 있는 자기로서는 가정에 위계를 위해 공부 잘하는 애들의 학자금을 먼저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다 듣고 난 효식이
“자네 참 못 쓸 사람이군.” 한다.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공부 잘하는 영우네 애들보다 내 아들이니까 성수를 먼저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요?”
“내 말은 그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형편이면 나한테 부탁을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야.”
효식의 말소리에는 좀 섭섭함이 배어난다.
“어려울 때마다 늘 형님께 신세를 지는데 그런 일로 형님께 폐를 끼쳐서야.”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네가 나한테 무슨 신세를 져? 아니 설혹 신세를 졌다고 해도 내게 자네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도와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섭섭하구먼. 내가 자네에게 그렇게 뿐이 안 되는가? 더욱이 내가 자네 아들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네도 잘 알면서.”
효식이 섭섭한 마음에 노기 띤 음성으로 말한다.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필상은 효식의 마음에 감사하면서 또 미안한 마음에 정중히 사과한다.
“됐네. 지나간 일을 탓해 무엇 하나? 저녁에 성수와 같이 이야기해 보세. 지금이라도 대학입학이 가능하다면 학교를 보내세.”
“성수가 마음을 잡은 것 같은데, 그렇게 까지야,”
“그건 자네 생각이고, 성수 생각을 모르잖아? 여러 말 말고 성수 생각을 들어보세.”
“형님!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당연한 것을 가지고 감사는 무슨 감사야.”
효식이 다시 필상을 통박 주는 한마디를 한다.
저녁에 농장 일을 마치고 돌아온 성수와 효식과 효식의 처 그리고 필상이 이렇게 넷이 식탁에 앉았다.
효식은 남보다 일찍 갓 스물에 결혼해서 애들을 그만큼 일찍 두었는데 딸만 셋이다.
위에 딸 둘은 공부를 잘해서 모두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와 결혼하여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터울이 늦어 이제 20살인 막내딸은 대학교 2학년인데 공부가 뒤 떨어져 대구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고 학기 초라 친구들과 어울려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요사이 귀가가 늦어 네 사람만 식탁에 앉은 것이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효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성수야! 오늘 아버지한테서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이곳이 왔을 때 바로 말하지 않고.”
성수는 그 말을 듣고 아버지를 한번 흘끗 쳐다보고 아무 말 없이 수저만 놀린다.
그래서 효식이 다시
“지금이라도 네가 합격한 대학에 입학이 가능하면 입학해라. 입학금은 이 아저씨가 마련해 줄게.”
필상은 미안한 표정으로 효식의 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까 효식과 필상의 말을 옆에서 들어서 알고 있는 효식의 처는 필상의 마음을 짐작하고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다.
효식의 그 말에 성수가 숟가락을 놓으며
“그게 정말이에요? 아저씨?” 한다.
“그럼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냐?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말해봐라. 입학금이 얼마나 되냐?”
“입학금이랑 책값이랑 모두 합쳐 백오십만 원 정도 돼요.”
“알았다. 내일 아침 은행 문 열면 찾아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해라. 그리고 한 달에 하숙비와 용돈으로 삼십만 원 정도 보내주마. 혹 모자라면 네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해라.”
“아저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은 성수의 입이 귀에 걸린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해라. 너에게 아저씨가 투자하는 것이니까 그 보답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어 사회에 봉사하면 그게 보답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저씨!”
대답하는 성수의 말소리가 경쾌하다.
식사가 끝나고 성수가 제방으로 가자 필상이 효식이 처에게
“형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못나서 형님께 또 신세를 집니다.”
아무래도 필상이 효식보다 효식의 처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별말씀을 다 하세요. 형님은 근래 그런 재미로 사세요. 다른 애들도 도와주고 있는데 성수를 돕는 것이야 당연하지요.”
“그래도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또.” 한 것은 효식이고
“그런 말씀마세요. 폐는 무슨 폐에요. 우리가 도울 만하니까 돕는 것이죠. 그리고 서방님과 우리는 남이 아니잖아요.”
효식의 처의 이 말에 필상은 더욱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하고 효식은 그런 처를 보며 싱긋이 웃는다.
하늘의 신은 공평한 모양이다.
필상이 영우를 친형제처럼 도와주고 그 필상을 효식이 이렇게 도와주니 말이다.
남에게 덕을 쌓는 사람은 하늘에서 반드시 그 대가를 주시는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효식과 그의 처와 필상 세 사람이 성수를 기다리고 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성수를 주기 위해 시내에 나가야 하는 효식은 식사 후 바로 떠나려고 외출준비까지 마쳤다.
어제저녁에 성수가 자기가 합격한 K대학교에 마지막 등록 마감 날짜를 확인해 보고 내일까지라며 아침 일찍 서울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이른 아침을 먹고 바로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성수를 기다리던 세 사람은 식탁으로 다가오는 성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서울로 올라가려면 성수도 효식과 같이 외출준비를 하고 나와야 하는데 성수가 어제 농장에서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을 입고 식탁에 나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효식이 먼저 묻는다.
“너! 그 차림이 무어냐? 서울에 갈 애가 왜 작업복을 입고 나왔니?”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성수가
“아저씨! 저 대학 안 갈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성수의 대답에 효식이 그렇게 물었고 필상도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대학에 보내주지 않는다고 가출까지 하면서 시위를 벌이던 애가 이제 충분히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리고 어제저녁까지 그렇게 들떠 있던 애가 뜬금없이 대학을 안 가겠다니 필상은 자기가 성수의 말을 잘 못 들었나 하며 이같이 의아한 눈길을 성수에게 보낸 것이다.
옆의 효식의 처도 역시 같은 눈치다.
“어제 밤새도록 생각해보았는데 저는 대학에 가는 것보다 여기서 농장 일을 배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여기서 농장 일을 배우다니?”
“며칠 동안 농장에서 일을 해보니까 재미있었어요. 공부도 잘하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이 대학에 가서 등록금 버리고 하숙비 써가며 공부한다고 세월을 낭비하는 것보다 여기서 착실하게 농장 일을 배우고 원예기술을 익혀서 저도 이다음에 아저씨처럼 큰 농장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도 농장일이 재미있어요.”
“정말로 네 생각이 그러냐?”
효식이 물음에 당황함이 묻어난다.
“네! 확실합니다.”
“너! 혹시 이 아저씨한테 신세 지는 것이 부담돼서 그러는 것 아니냐?”
“아니에요. 아저씨는 제 큰아버지 같은 분인데. 부담되면 어제 말씀드렸죠.”
“성수! 너 나중에 후회 않겠니?”
효식의 처가 근심스런 얼굴로 묻는다.
“후회는요. 제가 밤새도록 생각해서 결정한 것인데요.”
“농장일은 대학을 나온 후에도 할 수 있잖아?”
“물론 대학을 나오고 난 후에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대학에 지원한 학과는 농장일과는 거리가 먼 학과에요. 그리고 농장 원예기술은 현장에서 실제로 일을 하며 배우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좋은 것 아니겠어요. 또한 그런 기술은 빨리 배우면 빨리 배울수록 좋은 것이고요. 그래야 그 기술을 이용하여 다른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농장을 발전시킬 수 있죠.”
성수의 논리 정연한 그 말에 효식의 처는 입을 다물고 필상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우리 성수가 어린앤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철이 다 들었구나.”
하고 효식이도
“성수가 어른이 다 됐구나. 알았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그런데 아저씨 저도 품삯은 주셔야 해요.”
“알았다. 이 녀석아! 네가 일한 만큼은 틀림없이 주지.”
“많이는 말고요. 제 능력에 맞추어 주세요.”
“허! 그 녀석 알았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웃는 효식의 얼굴에 성수를 기특해하는 표정과 자기가 사람은 잘 보았다는 만족감이 흐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농장으로 일을 나가는 성수를 따라 효식의 작업복을 입은 필상도 농장으로 나간다.
그것을 본 효식이 처음에는 말리려 하다가 필상이 성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모르는 척했다.
농장으로 향하던 필상은 저만치 앞에 가는 성수를 불렀다.
기다리던 성수 곁으로 간 필상이
“성수야! 미안하다. 애비 원망 많이 했지?”
하며 성수의 등을 어루만지고 두드린다.
“아니에요. 제가 철이 없어 아버지 마음을 괴롭혀 드렸지요.”
“그렇게 이 애비의 마음을 헤아려 주니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오히려 더 잘 된 것 같아요.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러시면 제가 죄송해져요.”
“그래! 알았다. 이런 너를 보니 애비 마음이 든든하구나. 오늘은 내가 네 곁에서 너의 일을 도와주마.”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는 힘드시고 저는 불편해요.”
“힘들기는 이 애비도 농사군 아니냐? 그리고 불편한 것은 네가 좀 참아라. 이 애비가 너와 같이 있고 싶으니까.”
그 말을 들으며 성수는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잠시라도 오해한 것이 죄송해서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이렇게 해서 대구 효식의 농장에서 성수와 하루를 더 보내고 다음 날 효식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또 성수를 부탁한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필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적성으로 돌아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히 지금 감정을 표현할 지식이 없네요 감사드립니다,
즐~~~~~감!
감동이네요... 여기 나온는 네사람 다 멋지다요.. 오늘 하루가 기분이 좋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이초롱님!
용칠이!
무혈님!
niceshot님!
지키미님!
감사합니다 3월입니다. 이제는 봄! 아름다고 멋있고 추억이 되는 봄을 만드시길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잘읽었습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