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예썰의 전당> [49회] 오만과 편견-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1770년대 초상화
요제프 하이든과 더불어 18세기 빈 고전주의 악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오페라, 실내악,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등 여러 양식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겨 전시대를 통틀어 음악의 천재 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1762년 첫번째 음악 여행에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났고 거기서 그의 첫번째 교향곡을 썼다. 1769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보았고 첫번째 이탈리안 오페라를 썼다. 1780년대 후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K.492)〉·〈돈 조반니(Don Giovanni K.527)〉·〈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K.588)〉등의 작품으로 그는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모차르트는 35살에 병으로 죽었는데, 이처럼 짧은 생애 동안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곡가는 없다.
✵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K.492)은 1786년 초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이다. 풍자의 미학과 유쾌한 희극적 요소가 결합된 18세기의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로 꼽힌다. 전4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의 대본은 당시 대본가로 이름을 날리던 로렌초 다 폰테가 맡았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모차르트와 다 폰테는 이후 의기투합해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와 같은 대작들을 탄생시키게 된다
✵ 돈 조반니(Don Giovanni K.527)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대본을 썼던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이 작품의 대본도 맡았다. 다 폰테는 1787년 5월 중순에 대본을 완성했으며, 모차르트는 그 해 여름 내내 오페라를 작곡했다. 10월 초, 모차르트는 거의 대부분을 완성한 〈돈 조반니〉 악보를 들고 프라하 여행길을 떠난다. 본래 10월 14일에 상연될 예정이던 초연은 29일로 미뤄졌지만, 프라하에서의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K.588)는 여인들의 정숙함을 시험해본다는 이 오페라는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황제 요제프 2세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작곡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실제로 빈에서 일어난 일을 극으로 옮겼다는 설도 있다. 모차르트의 34세 생일 하루 전 날인 1790년 1월 26일에 초연되었다.
✺ KBS1 <예썰의 전당> [49회] 오만과 편견-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2023년 04월 22일 방송 다시보기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2-0078&program_id=PS-2023041513-01-000&broadcast_complete_yn=&local_station_code=00§ion_code=05
✺ 오만과 편견-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예썰의 전당' 마흔아홉 번째 이야기는 음악의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그만큼 그를 둘러싼 편견도 가득하다는데. 이번 예썰의 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정한빈, 음악감독 안우성과 함께 오만과 편견을 벗어던지면 비로소 들리는 ‘진짜’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예썰 하나,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그의 천재성은 철저히 만들어졌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하지만 그 속에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도 숨어있다. 모차르트는 자기 입으로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품을 쓴다고 착각한다. 그렇지만 선배들의 음악 가운데 내가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꾸준한 노력을 해왔다는데. 모차르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재능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해 6세의 어린 모차르트를 데리고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연주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과연 그가 천재 음악가로서 거듭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썰 둘, 천재도 피할 수 없었던 취업의 문턱, 그가 한 선택은?
많은 이들의 박수와 인정을 받고 살아온 모차르트도 피할 수 없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취업난이었다. 더 이상 신동이라 불릴 수 없었던 나이 17세, 의외의 인물이 모차르트를 외면하며 그의 앞길은 더욱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고향 잘츠부르크로 돌아가 궁정 음악가가 된 모차르트, 하지만 그곳에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기에 불만이 가득했다. 끝내 궁정 음악가를 그만둔 모차르트의 삶은 그 이전과 다르게 흘러갔다는데. 궁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예썰 셋, 시대의 오만과 편견에 직접 맞선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음악의 도시 빈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모차르트,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기 시작한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하이든에게 극찬까지 받으며 인정받게 된 모차르트, 이제야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음악 생활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모차르트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오페라였다. 그중에서도 걸작이라고 불리는 '피가로의 결혼'은 당시 귀족들의 부조리함과 시대의 오만에 맞서고 있다는데. 모차르트의 오랜 꿈이었다는 오페라, 그 속에서 그가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피가로의 결혼, 1막 중 한 장면을 그린 그림. 백작과 만나는 수잔나. 의자에는 케르비노가 숨어 있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 미사 c단조(Great Mass in c minor K.427)
https://youtu.be/Jfs4lTs3mLI
✺ 레퀴엠 d단조(Requiem in d minor K.626)
https://youtu.be/Ez0kqVShFEs
✺ 자장가(Wiegenlied K.350)
https://youtu.be/coRf1n9SrfI
✺ 레지나 첼리(Regina Coeli K.276)
https://youtu.be/vXRzq_8bJ3c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W.A.Mozart,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K.467)
https://youtu.be/WQ2ejGuLqv0?list=TLGGG7qlAA2LpOIyMjA0MjAyMw
✵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음악의 신동답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인정받는다. 그의 음악은 불멸의 반열에 올랐으며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클래식에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모차르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심지어 그의 이름도 모르고 그의 음악도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도 그의 음악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초상, 1763년대
특히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주목할 만한 음악을 남겼기 때문에 음악 역사상 가장 재능이 뛰어났던 불세출의 천재로 인정받고 있다. 35년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작품 수만 무려 쾨헬 번호(K.) 626편에 이르는 곡을 남긴 괴수이며 단순히 곡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다수의 작품들이 음악성 측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으며 음악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천상에서 내려올 거 같이 아름답고 순수한 멜로디, 짜임새 있는 천재성이 돋보이는 곡의 구조, 대중성 모두 하나라도 놓치는 거 없이 정말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곡을 들으며 악보도 함께 보면 천재라는 단어가 모차르트라는 인물을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다.
모차르트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기악 성악을 가리지 않고 모든 형식의 음악에 능했으며, 일반적인 팔방미인 수준이 아니라 거의 끝판왕급 역량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모차르트처럼 기악곡 분야 전반과 성악곡 분야 전반에서 모두 뛰어난 걸작을 남긴 음악가는 극히 드물다. 기악곡의 경우 독주곡/실내악/협주곡/교향곡과 같은 다양한 음악장르에서 (첼로나 트럼펫 정도를 제외하고)특정 악기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악기를 위한 작품 및 다양한 악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남겼으며, 성악곡의 경우에도 독창곡/합창곡/오페라/종교음악 등의 거의 모든 장르에서 역사적인 명작들을 남겼다.
또한 모차르트처럼 대중성과 작품성 양쪽에서 모두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음악가 역시 정말 드물다. 그의 음악들은 쉽고 편안하게 들리면서도 역대급의 음악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대작곡가들의 음악들과도 구별되는데, 덕분에 그의 음악은 콘서트홀에서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음악, 각종 BGM, 벨소리 등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 세계의 광고, TV, 영화, 드라마 등 모든 분야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가장 많이 사용될 정도로 클래식 음악가 중 대중적으로도 가장 잘 알려진 음악가이다.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모차르트의 음악을 많이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퀴엠(Requiem)을 쓰고 있는 모차르트
왕실의 티파티에서 클라비코드(Clavichord)를 연주하는 모차르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프라노 가수인 콘스탄체와 빈의 성 슈테판 성당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고 9년 후 같은 곳에서 초라한 장례식을 치렀다. 그 9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콘스탄체가 악처였다고 비난한다. 성격이 변덕스럽고 바람기가 다분했으며, 사치와 낭비가 심해서 모차르트를 과로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빨리 죽게 만들었다. 이들 부부의 삶을 겉에서만 보면 그다지 행복하다고 하기 힘들 것 같다. 9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결혼생활 동안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네 아이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결혼 후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가 큰 성공을 거뒀지만 둘 다 재테크와는 담을 쌓은 데다 근검절약과는 거리가 멀어갈수록 빚이 늘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4년은 몹시 궁핍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지폐,실링(Schlling: ATS: öS) 사용 당시의 5,000실링 지폐에 모차르트 초상.
모차르트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굿 장크트 길겐(Salzkammergut St.Gilgen)의 어머니 생가(외가)와 주변 풍경들
모차르트가 살았던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잘츠캄머굿(Hallstatt Salzkammergut)지대 주변 풍경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5회] 인간 미켈란젤로, 완벽을 꿈꾸다,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