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30차 17. 금관가야에 전해진 장군 차
금관가야에 전해진 장군 차의 전래
인도에서 차씨를 안고 왔던 장유 스님은
인도에서 마시던 차를 가야에 와서 차밭을 일구고
가야에 인도차를 재배하는 일터를 마련했네!
장군 차의 차의 명칭은 세월이 지난 후
고려에서 일본을 침략하려고 했던 시기 고려의 충렬왕 시대
옛 가야지역에 멈추면서 일본을 침략하려고 준비했던 시기
고려인들이 충렬왕에게 차를 공양할 때
충렬왕은 차에 대하여 알고자 했는데
충렬왕에게 올린 차의 명칭을 모르고 있어
출경 왕은 자신이 차 명칭을 지었는데
장군 차라고 그 칭명을 전해주었다.
장군 차에 대한 명칭은 서기 48년 아유타국에서
자유 스님이 차 씨를 안고 와서 오늘이 김해에
장군 차, 밭을 일구게 되었다는 그것을 아는가?
장군 차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가야 인들도 차를 마시는 법을 알았던 것
그 이유는 바르게 선양했어야 한다고 본다.
가야지역에 장군 차밭을 일구는 운동을 했어야 하는데
가야에서는 장군 차를 재배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장군 차라는 이름을 얻기까지에도 세월이 흘렀지만
그래도 장군 차리라는 칭명이 있음에 가야에서는
인도의 차를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라는 것
그것을 알게 해준 것이 장군 차이기도 하다.
장군 차를 마시는 불교에서 전승했어야 하는데
가야 불교는 진흥왕 시대에 멸망했네!
가야 불교를 말살하고 있던 신라시대에는
진흥왕 자신이 승려가 되고 부처님의 전법을
신라에 전하려고 했다는 것이야말로
가야 불교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그러나 가야에 중심이 되었던 차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네
물론 신라지역에 차를 재배할 수 있는 토양
토양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장군 차에 대해 연구를 하려고 해도 가야에 대한
역사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러한 역사를
탐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네
가야에 장군 차를 안고 찾아온 장유 스님은
실로 인도인으로 인도에서 승려가 되었다면
인도불교의 전래설을 주장해야 한다는 점
장유 스님을 인도의 승려로 인정해야 함에도
그러한 역사를 바르게 정하는 장군 차의 차밭
장군 차의 차, 밭을 일구는 작업을 가야에서
거행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음이네
장군 차는 고려의 충렬왕 시대에 일본은 침략하려는
원나라 황제에게 자신이 고려에 왕이 되면
일본을 침략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원나라 황제에게 인정받고 고려에
왕이 되어 일본을 침략하려고 옛 가야에
가야에 머물러 있던 시기에 장군 차라고
그러한 역사를 바르게 인식한다면
인도의 차 씨앗을 가야에 심었다는 전설
전설을 인정하는 장군 차의 전래를 인정해야 한다
2024년 8월 13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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