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할아범 / 박동진

[소통의 월요시편지_604호] 느티나무 할아범 박동진  동네 고샅, 늙은 느티나무 베어지던 날 이장 선거에 떨어진 영감 골이 났다 "늙어 힘없으면 발 품 파는 심부름도 못한다디야, 이런 우라질 세상"   서른 아홉에 상처한 영감  죽은 갓난아이, 기차에 뛰어 든 젊은 놈 돌림병에 죽은 벙어리, 저승길 편히 가도록 동네 궂은 일 마다 않던 영감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죽기 전에 이장 한번 하겠다는데 귀농한 젊은이가 이장이 되었다    젊은 이장, 교통에 방해된다며 고샅길 수백 년 먹은 느티나무를 단숨에 전기톱으로 베어냈다. 몸통에 구멍 뚫린 느티나무 할아범 수백 년 묵은 뿌리가 잘려나갔다   낮술에 벌게진 영감 구멍가게에서 막걸리 서너 병 안주 없이 마시고 "나무 그늘에 땀 식히지 않은 놈 있었느냐" 호령이시다 오일장 보고 돌아올 때 다리쉼 할 느티나무 그늘이 걱정이다   *필리핀 출장 갔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돌아와서야 시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기다렸던 분들, 걱정해주신 분들... 모든 분들께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비가 내리는 목요일 아침... 옛노트를 꺼내 옮깁니다. 박동진 시인의 시 「느티나무 할아범」입니다.동서고금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무리한 일을 벌이는 법입니다. 젊은 이장은 아마도 동네 좁은 고샅길을 막고 있는 느티를 자르고 길을 넓힐 것입니다. 그것이 곧 마을의 발전임을 그것이 이장으로서 해야 할 일임을 확신하고 있을 터이지요.그러나 그것이 곧 무리(無理)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어찌 알겠습니까. 진리와 무리가 아닌 일리 혹은 순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젊은 때는 잘 모릅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 느티 그늘에 쉬어 가는 길, 그 굽은 순리의 길을 젊을 때는 잘 모릅니다. 세월이 그를 가르쳐 줄 겁니다. 그런 세월이 저도 이만큼 가르쳐 주었으니 말입니다. 남은 한 주 평안하시길요...   2018. 5. 14. 달아실출판사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