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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께서 부르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어려서는 사진을 찍으며 기념을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00 기념이라고 꼭 적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는 동네방네에 소문이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진기사가 오면 근사한 옷을 차려입고 이집 저집에서 사람들이 몰려 나와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촌스럽게 부동자세로 사진기를 쳐다보느라고 꼼짝도 하지 않다가 마그네슘 불빛이 터지면 깜짝 놀라며 눈을 감았다고도 합니다. 또 사진을 보면 눈감은 모습이 많이 찍히기도 하고, 자연스럽고 다정한 포즈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이 사진기사와 이발사라고 하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와 찍은 사진은 달랑 한 장밖에 없는데 친구들 집에 가면 다정하게 부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어서 액자에 걸어 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였는데, 나는 아버지와 같이 산 시간이 참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아버지는 내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로 내가 결혼할 때, 첫아이의 돌 때 나와 같이 기념사진을 찍으시고 달랑 석장의 사진을 남겨놓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소중한 세장이나 되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은 친구들은 사진 한 장도 없고, 사진 한 장 찍을 돈이 없어서 사진 한 장 없는 친구도 많습니다.
오늘은 안드레아사도의 축일입니다. ‘사도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그물과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라고 사도들이 주님을 따르는 과정을 아주 짧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고민이 있었을 것인데 어른들은 죽기 전에 의지할 구석이 있어야 했습니다. 안드레아 베드로 형제의 아버지와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는 의지할 아들을 선선히 포기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과 같은 사회도 아니었고, 2천 년 전에 자식들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자식들이 출가하는 것을 선선히 들어주셨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축복이 없으면 잠시도 떠나 있을 수 없는 때이니 말입니다.
그들이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은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더구나 아내가 있고, 과묵한 아버지는 차치하고라도 어머니들은 그 일을 선선히 승낙하였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의향을 분명히 밝히기도 어려운 신세였을 것입니다. 아들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통곡하면서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둔한 내가 생각하여도 분명 그들은 자유의사로 예수님을 따라나섰을 것이고, 그들의 부모님들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부자도 아니고,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님을 그들도 알았을 텐데, 앞으로 고생이 많으리라는 짐작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면을 건 것도 아닐 것이고, 마술을 쓰거나 사기를 친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진심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배와 그물도 같이 버렸다고 했으니 생업을 포기한 것입니다. 가끔 바쁜 틈에 시간을 내서 말이나 낙타를 타고 쏜살같이 집으로 와서 부모들을 만나고, 휴가를 얻어서 어부 일을 하면서 그물을 손질할 수도 없었고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자주 가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한 통신수단도 좋아서 자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주님의 그 진실에 감동하였을 것이고, 사람을 낚는 일에 헌신하고자 자유의지로 결정하였을 것입니다.
내 동생 신부님이 서품을 받아서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아버지 신부님은 강론을 하시면서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제 새 신부님은 족보에서 그 이름을 빼야 합니다. 그는 이제 만인의 아버지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안을 돌보고, 집안에 연연하여 살아서는 안 되는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만지는 거룩한 사제가 되었으니 집안의 누구든지 존경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집안 어른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 누구도 그 말씀을 듣고 사제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도들이 주님을 따라 간 것을 아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진실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나는 사도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과 같은 그 응답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림절이 다가오는데 나는 아무 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가슴에 간직한 모든 의문을 없애고 홀가분하고 단순해져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점점 단순해져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날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데도 정리정돈을 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감정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추나무에 연이 걸리듯 주렁주렁 달린 것들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생을 정리하고 주님께서 부르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항상 깨닫고 있습니다. 그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축일11월 30일 성 안드레아 (Andrew)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 연도 : +1세기
같은 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요한의 아들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동생인 사도 성 안드레아(Andreas)는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카파르나움 출신이고(1,21-31), 요한 복음에 따르면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형과 함께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카파르나움과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이웃 마을들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성 베드로와 성 안드레아 형제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라며 그들을 첫 제자로 부르셨다. 이 말씀에 그들은 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요한 복음은 성 안드레아를 성 요한 세례자(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 요한 세례자는 두 제자와 함께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했고, 두 제자는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와서 보아라.” 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해 그분과 함께 묵은 후 집으로 돌아온 성 안드레아는 즉시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며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갔다.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그가 앞으로 케파, 즉 베드로라고 불릴 것이라 말씀하셨다(요한 1,35-42). 이에 근거해서 초대교회는 성 안드레아를 ‘맨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란 뜻의 ‘프로토클레토스’(Protokletos)라고 불렀다. 이렇듯 성 안드레아는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 바로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이자 가장 먼저 주님의 복음을 전한 사도가 되었다.
‘남자다운’, ‘용감한’이란 뜻을 가진 이름의 성 안드레아는 복음서에서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 그는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며 오병이어를 가진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해 갔다(요한 6,1-15). 또 축제 때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온 이들 중 이방인인 몇몇 그리스 사람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하자 성 필립보와 함께 예수님께 말씀을 전해드렸다(요한 12,20-22). 성 안드레아는 복음 안에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그 외에 올리브 산에서 예수님께 종말에 관해 물어본 네 명의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마르 13,3-4).
전승에 따르면 성 안드레아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흑해 서부 스키티아(Scythia) 지방과 그리스 지방으로 가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 불가리아 지방까지 가서 선교했다고 한다.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성 안드레아는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그곳의 초대 주교로 임명했다고 한다. 이들 지역은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가 널리 전파된 지역으로 성 안드레아는 그리스 정교회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좌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60년 11월 30일 네로 황제 치세 때 아카이아(Achaia, 그리스 서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부 지역)의 파트라이(Patrai)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하나,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보통 성화나 성상에서 X자형 십자가와 함께 나온다. 역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에서 성 안드레아는 그리스에 가서 전교하다가 파트라이에서 X형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하며, 죽음 앞에서 성 안드레아가 바친 기도를 전해주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내가 뵈었고 내가 사랑했던 당신, 당신 안에 있는 나를 받으소서. 당신의 영원한 나라에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아멘.”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순교 장소인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 9월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가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러시아, 스코틀랜드 등 여러 국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러시아까지 가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라 러시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아 왔고, 4세기경 그의 유해 일부가 스코틀랜드로 옮겨졌다는 전승에 따라 그곳에서도 특별한 공경을 받았다. 이는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 관리자였던 성 레굴루스(Regulus, 3월 30일)가 꿈에서 지시받은 일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성 레굴루스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갔고, 30여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832년 스코틀랜드의 왕인 앵거스 2세(Oengus II)는 픽트족과 함께 잉글랜드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 속에서도 성 안드레아에게 기도하며 자신이 승리하면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전투 당일 하늘에 X자 모양의 구름이 뜨고 스코틀랜드 군대는 승리를 얻었다. 그 후 스코틀랜드인들은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성 안드레아의 상징인 X자 모양의 십자가를 넣은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이를 스코틀랜드의 공식 국기로 확정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드레아 (Andrew)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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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