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적으로 개를 좋아한다. 내가 엄마 젖을 먹을 때부터 우리집에는 개가 있었기에 나는 개를 보면서 컸을 것이다.
우리집 개는 족보를 알 수 없는 누런 잡종 똥개였는데 복구라고 불렀다. 근본이 없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복구와 잘 통했고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엄니가 기억하기를 복구는 나보다 한 살이 많거나 동갑이라고 했다. 복구는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동네 아저씨한테 끌려가 죽었다.
엄니가 복구를 아저씨한테 넘긴 것은 너무 늙었다는 이유였다. 부엌 아궁이 앞에다 똥을 싸기도 했는데 엄니는 복구가 노망이 나서 그런다고 했다.
엄니는 어쩔 수 없이 이웃집 아저씨한테 공짜로 복구를 데리고 가라고 부탁했다. 그 뒤에 복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복구가 없어진 걸 알고 나는 마당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종일 밥도 안 먹고 울었다.
비록 똥개였지만 복구는 근본 없는 나한테 충성을 다했다. 주인이 워낙 가난했기에 좋은 음식인들 먹었겠는가.
식구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나 생선 뼈와 대가리 등이 복구의 밥이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는 내 똥도 먹었을 것이다.
변변한 개집도 없어서 복구는 마루 밑이나 부엌 나뭇짐 아래 짚풀 위에서 잠을 잤다.
이런 열악한 복지환경에도 복구는 집을 나가지도 않았고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껑충껑충 뛰면서 나를 반겼다.
나는 지금도 동네 아저씨한테 끌려가 생을 마친 복구의 12년 일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개라는 단어를 주로 나쁜 쪽으로 써왔기에 그렇지 인간과 가장 친근하게 지낸 짐승이 개다.
닭이나 오리, 염소한테 백날 먹을 거 줘 봐라. 절대 곁을 안 준다. 음식 주면서 만지려고만 해도 먹다 말고 달아난다.
그것은 서커스단에서 길들인 코끼리나 곰도 마찬가지다. 훈련이 되어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일뿐 인간에게 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반갑다고 꼬리 흔드는 유일한 짐승이 개다.
내가 개를 워낙 좋아해서 그런가? 이상하게 개띠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내 친구의 형이 개띠인데 그 분이 그랬다.
"너는 희한하게 나하고 아주 잘 맞아."
내가 일부러 구별을 하거나 맞추는 것이 아님에도 그렇다. 코드가 잘 맞아서 친해졌는데 나중에서야 그 사람이 개띠임을 알고 놀랄 때도 있다.
엊그제 지리산에 갔다 내려오던 중에 만난 개다. 딱히 지킬 것도 없는 시골 어느 농가 앞에 묶여 있었다.
아직 철이 없는 개라 아무한테나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뒷편에 핀 접시꽃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가는 나에게 호기심을 잔뜩 보인다.
이토록 순진한 이 강아지도 내년에 나를 보면 도둑놈으로 여기고 막 짖어댈지도 모르겠다.
문득 내 어릴 적 친구였던 복구가 생각났다. 밥그릇에 먼저 눈이 갔다. 복구의 밥그릇은 찌그러진 양은 냄비였는데 얘는 비싼 후라이팬이다.
매일 달걀 후라이나 양식이라도 먹나? 종일 묶여 있을 테지만 그것이 운명인 줄 알고 주인에게 순종할 것이다.
이 강아지는 빨리 자라 외부인이 오면 컹컹 짖는 일이 밥값을 하는 것일 터, 나는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잠시 눈길을 보내다 자리를 떴다.
개 좋아하는 것도 병이련가. 오는 내내 강아지 모습이 어른거렸다.
지난 겨울에 (2026년 1월) 북한산 갔다가 원효봉에서 만난 개들이다. 동무 몇과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데 개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나는 안쓰러운 생각에 먹던 컵라면을 남겨 내밀었다. 흠칫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던 강아지가 슬그머니 와서 먹는다.
오랜 기간 사람 손길에서 벗어난 들개의 속성이다. 이들에게도 서열이 있는지 센 놈이 먼저 먹는 동안 나머지는 구경을 한다.
주인이 내다 버렸던지 아니면 스스로 집을 나왔던지 북한산에는 들개들이 많다.
집 나온 들개와 고양이들이 북한산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다 사람이 저지른 일이다.
여름에는 덜 보이다가도 먹잇감이 없는 겨울에 유독 사람들 주변을 배회하며 생존 본능을 발휘한다. 잡히지 않고 배를 채우는 것이 이들의 생존 방식이다.
개에 관한 시 하나를 옮긴다. 앞선 글과 사진은 어쩌면 이 시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예전에 오일장마다 나타났던 약장수가 항상 원숭이 재롱을 맨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매일 시를 읽고 때론 시에서 인생을 배운다. 마음 가는 시를 만나면 노트에 필사를 하는 것이 오랜 나의 습관이다.
옮길 때도 한 문장씩 낭송을 하면서 적는데 마치 마음에 새기듯이 시가 훨씬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개 - 이명
주인은 나를 차에 태우고 먼 길을 와
산기슭에 두고 갔다
몇 번을 짖으며 쫓아갔지만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주인을 알고 있다
주인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더 크게
무위자연이 되라는
주인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산은 높았고 나는 산을 지키기로 했다
*이명 시집/ 개/ 문창/ 2025
이 시를 쓴 이명(李溟) 시인은 1951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영학을 전공했다. 오랜 기간 굴지의 기업에서 근무하며 법벌이를 했다.
평생 가슴에 품고 살던 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11년 환갑 나이에 등단을 했다. 이후 여덟 권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이 되었다.
독자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시인이지만 용케 나의 시 그물망에 들어왔다. 이명이란 이름도 본명이라고 한다.
한학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삼형제가 전부 외자 이름을 가졌는데 예술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시집 제목을 개로 지은 것도 아주 인상적이지만 이 시 한 편 만으로도 시인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간결한 시 속에서 개가 품고 있는 은유와 풍자, 이것 또한 세상을 사랑해야만 나올 수 있는 싯구일 것이다.
나 또한 개도 시도 나 자신도 사랑하며 살 것이다.
첫댓글 정든 복구가 사라졌으니 어린 현덕군이 얼마나 슬펐을까요?
우리 둘째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파는 어린 토끼를 사와서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데 갸가 금방 죽었어요.
그때 우리 딸도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자고 대성 통곡을 했지요.
62년 범띠 현덕님은 58년 개띠들과 잘 맞고 61년 소띠 달항아리와도 잘 통하지요. ㅎㅎ
주인에게 버림 받고 들개가 된 개들과 마주치면 무서울 것 같은데 그 들개들에게도 따뜻하시니 현덕님은 참 품이 넓으십니다.
50년도 더 훨씬 지났음에도 복구가 떠난 날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답니다. 지난 주 수요일 점심 때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을 못 하면서요.
저는 58년뿐 아니라 46년하고도 잘 맞구, 갈 데 없는 저를 지금 고용하고 있는 70년 개띠 사장하고도 잘 맞더라구요. 묘한 인연이지요.
유독 제가 개띠와 인연이 많다는 것일뿐 다른 띠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궁합이나 소통도 자기 하기 나름일 테구요.
북한산 들개가 사람에게 대들거나 그러지는 않더군요. 대부분 개가 사람을 피합니다. 그래도 개 무서워하는 여성들한테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달항아리님은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두루두루 잘 통하니 참 좋구요. 펑화로운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ㅎ
예전에는 개를 매달고 때려서 잡아 보신탕끓여먹는 남자들 있었어요 때리는 잔인한 남자 너무너무 경멸했어요 나는 지금도 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개를 고통스럽게 키우는걸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다니다 하루종일 묶여 있는개를 보면 불쌍한게 우리 복슬이는 쥔잘만나 복지 좋은 천당서 살고 있구나싶어요 개는 품종과 관련없이 주인 잘 만난개가 복받은거죠
저도 어릴 때 그런 풍경을 몇 번 보긴 했습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여름 보양식이라 생각하고 그랬다는데 지금은 그런 풍경 사라졌지요.
엊그제 만난 그 강아지는 묶여 있더라도 종종 풀어주고 산책이라도 시켜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개는 주인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서 안타깝지요.
로사님 댓글에서 강아지 사랑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덕님도 복구와 12년을 가족으로 살았으니
얼마나 정이 많이 들었을까요.
울 강쥐도 13살인데
둘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드라이브도 하고
놀이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제 힘든 시기를 함께 보냈지요.
남의 강아지도 너무 예뻐서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지요.
제 차 트렁크에는 늘 강아지 간식이 있고요.
울강쥐 보여드릴게요.
잠자다 깨서 히멀떡해요.ㅋㅋ
어머 이뻐라
말티즈종인가요?
이뿌게 단정하게 빗은듯
귀요미네요
작년에 17년6개월 함께한 울집 강쥐 보냈어요ㅠ
두딸은 시집가고 떨어져사니 크게 충격은 없었는데
한동안 강쥐만보면 울컥
눈물쌤이 주르~
작년7월이라 이제 거의 일년이네요
@정 아
아고야~
정말 슬펐을 것 같아요.
그야말로 가족이잖아요.
울강쥐 말티즈인데 정이 많이 들어서
너무 예뻐요.
잠도 꼭 침대에서 함께 자고요.
이녀석도
언젠가는 떠날 아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돌봐주고 있어요.
나중에 덜 후회되도록요.
정아님도
지극정성으로 키웠을 것 같아요.
@제라
마지막에 고생을 했어요
우리보다 강쥐가ㅠ
지도 늙으니 다리도 불편
나중에는 누워서만ㅠ
@정 아
세상에나~
너무 예쁜 강아지 짠하네요.
강쥐 아픈 것도 가슴 아파서
보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주인 잘 만나서 행복하게 살다
떠났으니 그것으로 위안 삼으시길요.
저도 울강쥐
남편 은퇴한 후에 갔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그런데 종종 아픈치레를 해서 걱정 ㅠ
당시 시골 개가 12년을 살았으면 오래 산 셈이지요. 복 많이 받으라고 이름을 복구라고 지었다는데 이름처럼 살다 갔지 싶습니다.
사진만 봐도 제라님의 강쥐 사랑을 알 수 있겠네요. 눈동자를 보니 아주 똘똘하고 영리하게 생겼습니다.
사람 수명이 늘어난 것처럼 요즘엔 강아지 수명도 늘어서 20년 가까이 사는 개도 있다고 하더군요.
모쪼록 예쁜 강아지와 행복한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평온한 밤 되세요.ㅎ
@제라 제라님 강쥐 이야기에.
지금 몇년전 별이 된 우리아롱이가 생각나 앨범을 뒤적여 봤어요.ㅎ
@지이나
지이나님도 이렇게 예쁜
강쥐를 보내셨군요.
저도 언젠가는 보내줘야 하는데
에고고~
동물을 사랑하는 지이나님도
참 착하실 것 같아요^^
저 개띠여라
쿵작이 잘 맞으려나요
현덕님이랑 ㅎ
애견가족으로 삼십여년입니다
처음 말티즈
Imf때 강쥐안고 나가면
욕먹기도 했어요ㅠ
그담 시츄~~작년에 보내고는 이제 힘들어서 포기입니다
그때는 그리 시선이
곱지 않았었지요.ㅋㅋ
저도 산책을 좀 멀리 갈 때는
개모차에 애를 태우고 다니는데
지금도 좀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어요 ㅋㅋ
아하~ 정아님도 개띠시구나.
저번에 뵈었을 때 저와 쿵짝이 잘 맞던데요? 달항아리님이랑 셋이 찍은 사진도 있을 건데 컴퓨터 장롱에 깊이 숨겨놓고 있답니다.
애견가족 30년이라니 대단합니다. 예전보다 강아지 키우는 환경도 많이 좋아졌으니 갸들도 행복한 세상 만난 셈이지요.
저는 지금도 산책길에서 만나는 강아지를 보면 좋아서 입이 벌어지네요. 혹여 주인이 싫어할까 만지지는 못하고 그냥 눈으로만 웃지요.ㅎ
같은 짐승이라도 개의 눈망울과 소 눈에서 깊은 슬픔을 느끼는 것은
내 탓일까요 그네들 무심한 눈길 탓일까요
개들의 표정은 다른 어떤 짐승과 차이가 있지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정들면 괴로운 것은 언젠가는
누가 먼저든 한쪽이 먼저 가야 하니까
들개들이 집 지키는 개들보다 더 건강해 보입니다
흉년에 개들이 사림도 공격했다는 글이 생각나니
또 개가 무서워 지기도 합니다
들개라도 먹을게 있으니 저런 몸집이겠지요
현덕님의 개에 관한 개에 대한 글과 이명 시인님의 개를 의인화 한 시에 대해
가슴 한 켠이 묵직해 옵니다 저도 개를 좋아 하지만 사람 사는 방으로
들여 놓지는 않습니다 개의 집은 마당이지요 마당이 없는 저로선
이렇게 현덕님 글 속에 있는 개들을 반갑게 맞이 합니다 ㅎㅎ
저도 개와 소 눈동자를 보면 슬픔을 느낍니다. 참 맑구나 라고 생각했다가도 너는 전생에 뭐였기에 이런 짐승으로 태어났니 에서 그만 와락 슬픔이 밀려오지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면 꽃도 가시로 보이지만 가능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저런 풍경도 내것으로 만들려고 한답니다. 개가 없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들이기도 하지요.
저도 개를 좋아하지만 마당에 있는 개를 보고 자라선지 개에 관한 생각이 운선님과 비슷하네요. ㅎ
이명 시인의 시가 간결하면서 묵직함이 있습니다. 특별한 단어 없이도 이런 울림을 주는 것이 바로 시인의 힘이겠지요.
여러 시를 필사했는데 다음에 이명의 다른 시로 글을 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고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
개들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은 저사람이
동물을 좋아하는구나 다 안다는군요.
지나다는 강아지 보면은 한번씩 눈길 주며
부르기도 하고.
몇전전 별나라로 떠난 우리집 강쥐 생각도
나고.
개띠라서 그런지 개만 보면 좋아한다는
남편 말씀...ㅋ
지이나님 반갑습니다.
개가 동물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개와 교감을 해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금방 알아먹지요.ㅎ
들개들도 저를 보면 적의를 나타내기보다 안전등산 하세요 라면서 인사하는 듯이 순하게 쳐다보기도 하더군요.
저는 들개 또한 본능적으로 알거라고 봐요.
저 사람이 자기를 헤칠 사람인지 아닌지를,,
지이나님이 개띠라서 오프에서 만나면 저도 자꾸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가 봅니다.
님의 강아지 사랑을 응원합니다.ㅎ
저도 어려서 개를 좋아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는 물론이고 동네 개들을 좋아하고
의지하고 함께 한 추억들이 많습니다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항상 개와 함께 지냈거 같습니다
반려견이라고 세마리를 떠나보내고 않키우려했지만 어쩔수 없나봅니다
작은 그레이 하운드를 곁에 두고있습니다
개를 생각하면서 지은시를 보니 마음 한구석 짠한 느낌이 드네요
개는 항상 사람을 생각하고 따르는 모습이 좋습니다
즐거운 날되세요~~
아하~ 절벽님도 개를 좋아하는 분이시군요.
저는 어렸을 때 개와 지냈던 정서가 평생을 가는 듯싶네요. 마당에서 같이 뒹굴고 여름이면 감나무 아래 가마니떼기 깔고 함께 낮잠도 자고 그랬으니까요.
제 지인도 강아지와의 이별이 넘 힘들어 다시는 안 키운다 했다가도 다시 입양하는 분이 있는데 절벽님도 그러시나 봅니다.
첨부한 사진을 보니 강아지가 아주 잘 생겼네요. 개도 주인을 닮는다던데 마치 귀족 개처럼 품위있게 보입니다.
시를 읽고 짠하셨다니 저도 동감이구요. 절벽님도 항상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껌딱지가 되어 딱 20년을 같이 살던
황색푸들 "희망"이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아직도 내 가슴에는 녀석과
같이 뛰어다니던 추억이 남아있는데...
와~ 껌딱지 강아지가 20년을 살았다니 대단합니다. 희망이란 이름 때문에 이리 오래 살았나 보네요.
4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추억에 잠길 정도라니 선배님과 그만큼 정이 들어서 그러겠지요.
제 경우 50년이 훨씬 지난 세월에도 그 녀석과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유현덕
오케이~ 화이팅...!!
우리 삶에서 충직한 동물에서
이제는 애완동물로 사랑받고 있는 개 이야기.
모두들 많은 사연들이 있겠지만
저는 예당 음악회에서
안내견을 본 적이 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피아노 협연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덩치 큰 하얀 개가 연주자보다 앞장서서 입장.
관객들 모두 놀라고 술렁술렁.
인사를 하고 연주를 하기 위해
의자에 착석하자
안내견도 피아니스트를 보고 앉아서
연주시간 동안 미동도 없습니다.
20분간의 협연곡이 끝나자
그제야 벌떡일어나
관객 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몇 번의 앙코르 인사로
연주자와 함께 객석을 들락날락..
관객 모두 감동 백배
뜨거운 박수로 환호했었지요.
그리고 어느 날 국회에
개가 들어갈 수 있냐 없냐의
기사가 났었는데
그 연주자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던 거더라고요.
개도 좋아하고
개띠 사람들과도 친분관계를 잘 유지하는
유현덕님 글을 읽고
오래전의 특별했던 저의 이야기도
길게 덧붙여 보았습니다.
우와~ 린하님 댓글에서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풍경이 그려집니다.
예술과 인간애의 합작품을 본 관객은 감동을 받아서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저절로 나왔을 겁니다.
저도 지하철에서 안내견을 볼 때가 있는데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봉사정신 투절한 모습을 보면 귀엽고 대견하고 그랬답니다.
안내견을 쓰다듬거나 말을 건네면 안된다고 해서 저는 조용히 지켜볼 뿐이지요.
이런 안내견 또한 개가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테구요.
안내견뿐 아니라 군대나 공항 탐지견, 소방청 수색견 등 곳곳에서 열일하는 개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댓글을 쓰신 린하님 또한 산처럼 들꽃처럼 순한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항상 좋은 날 되세요.ㅎ
제가 초딩2학년때 우리집 개 캐리가 있었어요
어느날 하교후 집에 돌아오니 우리캐리가 ㅡㅜ
아버지가 캐리를 팔았어요 낙심에 빠진 나 ㅡ,.ㅡ
일주일 지난 후 누가 철 대문을 빠아악 빠아악 긁어대서
나가보니 우리 캐리가 와 있네요
그것도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 온 우리개:))
저를 보는 순간 얼굴이며 코며 닥치는 데로 핣아 데는데~
담날 새로운 주인이 와서 다시 데려갔지요
아 그때~ 우리캐리를 옥상에 데려가서 숨기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미웠어요 ㅡ,.ㅡ
이상한건 개들은 우리 아버지만 보면 오줌을 지릴정도로
좋아한다는 아이러니,,,,
가끔 그 때 생각만 하면 아득히 먼 이야기 인데도
가슴이 저며옵니다,,
칼라풀님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졌나 봅니다. 팔려갔다가 정든 집을 못잊어 다시 찾아온 캐리가 아주 대단한 강아지였네요.
저도 어릴 때 학교 갔다 오면 복구가 반갑다며 제 얼굴과 입술을 막 핥아대곤 했답니다. 엄니는 더럽다고 질색을 했지만 저는 마냥 좋았더랬지요.
캐리와 다시 헤어져야했던 칼라풀님의 슬픔을 이해합니다. 아버님한테 보였던 강아지 반응이야말로 배신을 모르는 개의 충성심이지요.
칼라풀님 댓글에서 개가 얼마나 사람과 친숙한 동물인지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언제나 좋은 시간 되시길요.
우리집은 고양이 11마리 키우고 있다,
아내가 켓맘 일을 한다.
처음 아들이 1마리 가져온것이 시작이 되었다.
반려동물 이야기를 하다보면 ,동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싫은것 넘어 혐오하는 말들을 많이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은 소중하다,동물들을 학대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심장속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할때가 있다.
생명을 구하고 사랑하는 일을 숭고하다.
케빈님 대단하시네요. 고양이가 11마리면 돌봐야 할 일이 엄청 많을 겁니다.
냥이가 강아지보다는 손이 덜 들어간다고는 해도 숫자가 있는 만큼 수고가 만만치 않겠네요.
동물 선호하는 것에도 호불호가 있지요. 개는 좋아하면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또 오직 고양이만을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구요.
우리집 근처 체육공원에도 길고양이가 여럿 사는데 얘들 돌보는 여성분이 있답니다. 사료도 가져다놓고 비싼 통조림도 먹이곤 하데요.
저는 동물을 사랑하지만 이렇게까지는 못한답니다. 케빈님의 동물 사랑에 박수 보냅니다.
내가 개띠라서 만나면 그렇게 반겨 주셨나요? ㅎㅎ
ㅎㅎ 그걸 어찌 알았을까요
항상 유쾌 활달하시니 저절로 말을 건네고 싶어진답니다. 사람 간에 일방소통이란 없지요.
그만큼 골드훅님이 소통 대장이란 뜻입니다.ㅎ
대문 없는 집을 굳건히 지키던 복실이
갈색 털에 두 눈두덩 위에
검은 점이 박힌 꽤 영리하던 그 녀석
어느 산 언저리에서 잡았는지 토끼 한 마리를
부엌 앞에 잡아다 놓고 엄마를 바라보던
토끼 볶음을 해서 큰 양푼에 복실이 몫을 퍼주고도
온 가족이 나누어 먹었던 두어 번의 기억
한여름 마당에 돗자리 깔고
웃고 떠드는 우리 옆을 지키던 복실이
그날 밤 쏟아질 듯 빛나던 별처럼
아직도 살아있는
시를 사랑함은 명치 저리면서도
멈추지 못할 배 한 척 띄우는 것
생명체를 사랑하는 것 또한
허공에 그리움 한 덩이 매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추천 꾹
동연님의 강아지 이름이 복실이였다니 우리 복구와 항렬이 같은 이름이라 반갑습니다.
산토끼까지 잡았다니 사냥개 실력을 발휘한 셈이네요. 복구가 토끼는 못 잡았으나 광에 드나드는 쥐는 가끔 잡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를 사랑함은 명치 저리면서도 멈추지 못할 배 한 척 띄우는 것이란 문장에 오래 눈길이 머뭅니다.
동연님의 시를 향한 마음 또한 범상치 않음을 알게 합니다. 공감 백배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