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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약속 장소에 간 성숙은 성국이 먼저 나와 기다리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오빠!” 하며 뛰어갔다.
성국도 성숙을 반갑게 맞는다.
가까운 다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성국이 먼저 입을 연다.
“너도 참 고집이 세구나. 오빠 말도 듣지 않고 이렇게 올라오다니 만약 오빠가 마중을 안 나왔으면 어쩔래?”
성국의 그 말을 듣고 성숙은 뽀로통해서
“나 혼자라도 서울을 헤매서 양재학원을 찾아다녔겠지. 나는 양재 기술을 배울 거야. 그래야 장래성도 있잖아.”
“그래! 양재 기술을 배우면 장래성이 있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을 보고 배울 것을 골라야지. 큰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서울서 양재학원을 보내냐?”
“보낼 만하시니까 알아보라고 하시잖아?”
“큰아버지는 늘 그러셨어. 형편이 어려워도 우리가 원하면 다 들어주셨지. 어려서는 몰랐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가정형편을 다 아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 하고 싶은 대로만 하냐?”
“그래도 나는 양재를 배우고 싶어.”
성숙은 의사를 굽히지 않는다.
“내가 네 전화 받고 오늘 몇 군데 전화해서 알아보았는데 양재학원에 다니려면 한 달에 학원비가 30만 원 정도 들고 네가 자취를 하더라도 방세랑 해서 40만 원은 있어야 하고 용돈도 교통비랑 합쳐 5만 원은 들어야 하는 데 시골에서 한 달에 75만 원을 무슨 수로 만드시냐? 더욱이 큰아버지 형편에. 거기에 성호의 교육비까지 하면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넘게 드는데 생각 좀 하고 떼를 써라. 더욱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리려고 큰아버지가 밭까지 파셨는데 우리도 염치를 차려야지.”
“오빠들은 다 대학 나오는 데 나만 고등학교도 못 나오게 생겼잖아.”
화가 난 성숙이 때아닌 학교 타령을 한다.
“학교는 네가 엄마를 생각해서 그만둔 것 아니냐? 그래서 이 오빠는 너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 말리지 마라. 고등학교도 못 나오면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지 않아.”
“그래! 그것은 좋은 생각인데 기술을 꼭 서울에 와서 양재학원을 다녀야만 하나?”
“아무 기술이나 배우면 돼? 유용하고 장래성이 있는 기술을 배워야지.”
“우리 마을에는 그런 기술 배울 데가 없니?”
“오빠는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런 데가 어디 있어? 그리고 시골에서 그렇고 그런 기술 배우려면 무엇 하러 배워. 그건 정말 돈 낭비 시간 낭비지.”
성숙의 말소리가 높아진다.
“그래서 너는 꼭 양재 기술을 배우겠다는 말이냐? 그것도 서울에 와서?”
“기왕에 배우려면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말이야.”
성숙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던 성국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냐?” 하고 묻는다.
“어떻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만 참아라.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 네가 하고 싶은 것, 다 시켜 줄게. 그때는 검정고시를 보아 대학을 가든지 학원을 가든지 너 좋은 대로 하게 할 테니 이번에는 참고 집에서 가사를 도와드리도록 해라”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앞으로 2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재수하는 심 잡고 집에서 공부하면 되지 않니.”
“그럼, 기술도 배우지 말고 집에 있으란 말이야.”
“그냥 집에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공부를 하던지 기술 잡지를 보면서 기술을 익히든지 하면 되잖니.”
“그렇게 해서 기술을 어떻게 익혀? 기술을 익히려면 실습도 해야 하는데.”
“본격적인 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잖니. 그렇게 하면서 내가 대학을 나와 취직할 때까지만 기다리면 그 후에는 무엇이든지 너 하고 싶은 것 하도록 오빠가 도와줄게.”
“오빠가 나중에 딴소리하면 그때 난 어쩌라고.”
“네가 이 오빠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냐. 언제 오빠가 약속한 것 안 지킨 것 있냐? 그리고 네 말대로 기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서울에 와서 배워야 하는데 우리의 어려운 형편을 도와주시느라고 큰아버지 네가 지금 상당히 어려워지셨는데 네가 또 큰아버지의 신세를 지면 되겠니?”
“오빠 정말 약속할 수 있어?”
“그래! 앞으로 2년만 참아, 오빠가 대학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만. 오빠가 꼭 약속 지킬게.”
“참 오빠는 군대 안 가나. 그렇게 되면 언제가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기다려. 안 되겠다.”
“성도 형이 있잖니. 형하고 협의하면 어쩜 더 빨리 될 수도 있지. 성도 형은 이제 장교니까 잘하면 지금도 너를 도울 수 있을 거야. 내가 형하고 협의해서 2년 안에 꼭 너 하고 싶은 것 하게 해줄게. 대신 너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 생각을 오빠에게 알려줘. 형이랑 협의해서 꼭 이루도록 해줄게”
“성도 오빠에게 말해서 일 년 안에 할 수는 없을까?”
“그것은 형과 협의해 봐야 알겠지. 하지만 2년 안에 하는 것은 이 오빠가 장담한다. 꼭 약속을 지켜 줄게.”
“정말? 어떻게?”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받는 돈에서 용돈을 줄이고 성도 형에게 얼마간 도와달라고 하여 그것을 저축하여 모으면 이 년 후에는 너를 가르칠 수 있는 돈은 모을 수 있을 거야. 아니 성도 형과 내가 한 달에 얼마씩 너에게 보내줄 테니 네가 모아서 나중에 학비든지 학원비든지 네 마음대로 해. 성도 형이 좀 많이 도와주면 어쩜 일 년 안에 될 수도 있지.”
이렇게 말하며 성국은 이제는 우리도 철이 들 만큼 컸으니 되도록 큰아버지에게 폐가 되는 일을 줄어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한편으로는 성도와 진지하게 성숙의 문제를 협의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성숙이
“알았어. 나도 생각 좀 해보고 결정할게.” 한다.
“그래. 잘 생각해 보고 현명한 결정을 해라.”
그렇게 하고 오빠와 같이 여기저기 다니며 서울 구경을 하고 이른 저녁을 같이 먹고 저녁때 오빠와 헤어져 적성으로 내려오며 성숙은 오빠의 말을 기억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필상이 자기 가족에게 베푼 일들!
자기 가족이 필상이네 집에서 같이 살면서 입은 은혜, 오빠들과 자기가 학교 다닐 때의 일, 자기 가족의 분가 때 필상이 한 행동, 아버지가 다쳤을 때와 돌아가셨을 때 필상이 헌신적인 모습, 어머니를 입양시키기 위해 필상이 자기 밭을 판 일 등을 생각하니 자기네가 너무나 많이 필상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또 자기 때문에 필상에게 어려움을 끼친다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준 오빠가 고맙고 오빠의 말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 섰다.
집으로 돌아온 성숙은 필상에게 성국과 나눈 이야기를 대강하고 집에서 가사를 돌보며 틈틈히 공부를 하여 검정고시를 보아 대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필상은 성숙의 말을 듣고 아이들이 가정경제를 걱정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것에 대하여 기특하게 생각하고 성숙의 마음이 예쁘고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도 미안해서 “성숙아 네가 그렇게 이 큰아버지를 생각해주니 고맙고 미안하구나, 그리고 네가 대학을 갈 때는 큰아버지도 한 몫 단단히 하겠다.”라고 약속을 했다.
성숙의 입장 생각해서 학교를 가든지, 기술을 배우라고 했고 학교를 다닌다고 하면 성호와 같이 있으면서 육성회비만 준비한다면 크게 걱정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숙이 군청소재지로 나가 기술을 배운다고 한다면 있는 곳은 성호와 같이 있게 하더라도 학원비로 월 20만 원 내지, 30만 원은 들 것이라고, 생각해 그 비용 마련할 궁리를 하였는데 서울에 가서 양재기술을 배우겠다는 성숙의 말을 듣고 만약 성숙이 서울로 간다면 많은 비용이 들텐데 자기가 한 약속을 깰 수도 없어 걱정을 많이 했다
이때 영우네 명의로는 논 다섯 마지기뿐이 없고 필상 자신도 그동안 영우와 영우 처 병원비와 영우 장례비용 그리고 영우 처 요양원 비용을 영우의 하루갈이 밭을 팔고도 모자라 필상의 밭도 반나절 갈이를 팔아 밭 반나절 갈이와 논 일곱 마지기뿐이 없었다. 그런데 성숙이 서울로 올라가서 양재학원을 다니겠다고 했을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걱정이 태산이던 것이다.
지난번 영우의 처를 입원시키기 위해 밭을 판돈이 얼마간 남아있으나 얼마나 갈지, 모르는 영우의 처 요양비로 추가의 목돈이 필요할 것이고 내년에는 성호가 대학을 갈 텐데 그 교육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려갔고 영우가 죽고 영우의 처가 요양원에 들어가는 큰일을 겪고 난 후 삼 년여 간을 지나며 생활이 안정되어 가는 것 같았다.
영우의 처는 조금씩 나아지더니 지금은 많은 차도가 있었고 성수는 대구 농장에서 이제는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 농장의 일을 거의 다 책임지고 있으며 성호는 그런 성수의 도움을 받아 대학교 2학년이 되고 성국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는 병원에 있는 어머니 덕에 의가사 제대를 하여 건설부에 공무원으로 취직하고 성숙도 성도와 성국 오빠의 도움으로 늦었지만, 서울에서 대학에 1학년이 되었다.
장교로 임관하여 군에 들어갔던 성도는 어머니가 요양소에 들어가기 전 한 번 적성에 다녀가고 군대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적성에 나타나지를 않는다.
소문에는 군에서 제대하지 않고 직업군인이 되어 전방 어디에서 근무 중이라는 말만 들린다.
이렇게 비교적 평온하던 필상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친다.
필상이 70년대 초에 사들었다, 영우가 분가할 때 영우에게 준 하루갈이 밭이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필상이 그 밭을 산지 칠팔 년이 지난 지금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필상이 사기를 당한 것이다.
원래 그 땅은 적성면 가월리에 사는 고수영이라는 사람의 것이었는데 필상에게 그 땅을 판 김재덕이 농사를 짓다가 주인 몰래 자기 앞으로 등기를 하여 필상에게 판 것이다.
고수영은 왜정시대 가월리에서 부농으로 소문이 났던 고재욱의 외아들로 고재욱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도 많지만, 왜정시대 쌀장사를 하여 더 많은 땅을 사들었다. 고수영은 고재욱이 왜정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1920여 년 전 얻은 아들로 왜정시대는 일본에 가서 살다가 6.25가 난 50년 초에 귀국하여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은 서울에서 살았다.
6.25 동란 중 부산으로 피난 갔었는데 사변 중에 피난을 가다가다 아버지가 피난 중 병을 얻어 비운에 돌아가시고 휴전이 되고 전방이 수복되고 3년쯤 지난 뒤, 뒤늦게 피난지인 부산에서 올라와 가월리로 들어와서 자기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땅을 찾아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적성에 고재욱의 땅으로 등기가 되어있는 하루갈이 땅의 등기는 별도로 보관되어 있었고 그 등기를 찾지 못했던 고수영은 가월리에 있는 땅만 자기 앞으로 이전등기를 하고 적성의 땅은 등기 이전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땅이 고재욱의 땅인 것을 알고 있던 김재덕이 피난에서 돌아와 우선 급한 김에 놀고 있는 땅에다 농사를 지었다.
가월리가 수복되고 몇 년 후 고수영이 들어와서 자기 땅을 찾을 때 그 땅에서 농사짓기가 끝난 것으로 걱정하던 김재덕은 삼사 년이 지나도 고수영이 그 땅을 찾지 않자 고수영이 그 땅이 자기 땅인 것을 모른다고 확신하고 사법서사와 짜고 그 땅을 자기 것으로 등기를 내고는 몇 년 더 농사를 짓다 아무래도 들통이 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에 필상에게 팔고 고향을 떠나버렸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고수영이 그 땅을 찾게 된 경위는 이렇다.
올해 초 가월리를 찾은 옛날 왜정시대 자기 집에서 마름을 하던 사람을 만났다.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은 마름이 35살쯤이고 수영이 일본으로 건너간 20살 안팎이었으니 이제는 수영은 55세가 넘었고 마름은 70이 가까웠다.
고재욱의 마름으로 있을 때 나누어 준 재산을 잘 관리하여 지금은 서울에서 어렵지 않게 살고 있는데 그 마름이 자기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이 고재욱의 도움이라고 하며 죽기 전에 고재욱을 모시고 살던 옛날 고향을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가월리에 왔다가 자연스럽게 고수영을 만났다.
옛날 고재욱의 시절 이야기하던 끝에 자연히 농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거기서 마름에게서 적성에 있는 하루갈이 밭 이야기를 듣게 되어 고수영이 적성에 자기 아버지의 땅이 그것도 하루갈이 밭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마름의 도움을 받아 다시 등기를 찾아보니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보관하고 있던 고서의 철 가운데서 적성 땅의 등기를 찾게 되었다.
적성 땅 등기를 찾은 고수영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김재덕이가 몰래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하여 필상에게 판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법원에 고소를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날아든 의정부 법원의 호출장을 받고 무슨 일인가 궁금도 하고 한편으로는 생전 처음 법원의 출두명령을 받고 은근히 불안한 마음으로 법원을 찾았던 필상은 법원에 출두하여 위와 같은 사실을 알고 눈앞이 깜깜하였다.
문제가 된 땅은 영우가 분가할 때 영우를 주어 영우가 등기를 해서 영우의 명의로 되었다가 영우 내외가 다친 후 병원비와 장례비로 쓰기 위해 팔려 지금은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 돌려주면 되지만 이미 두 번이나 전매가 된 땅 모든 책임은 김재덕에게서 땅을 산 필상에게 돌아왔다.
지금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확실하게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하였고 되어있고 그 사람은 필상이 아닌 영우에게서 그 땅을 샀고 영우는 죽었으니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도 있지만
땅 주인이 아닌 김제덕에게서 땅을 산 사람이 필상이이므로 모든 책임이 처음 그 땅을 산 필상에게 돌아왔다.
김재덕을 찾았지만 이미 그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숨어버린 사람을 찾을 길이 막막하다.
필상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 반나절 갈이 밭과 논 일곱 마지기를 주고도 보상이 모자랄 판이다.
이때부터 농촌에서도 비닐하우스 등 원예작물 농사가 늘면서 논보다 밭의 효용 가치가 커져 밭이 비싸졌고
더욱이 문제의 밭은 마을에서 가깝고 기름진 곳이라 땅값이 더 비쌌다.
사건이 터지고 성국의 자기 어머니 앞으로 되어있는 논 다섯 마지기를 필상에게 내어놓겠다고 했으나 영우의 처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고 상속권을 가지고 있는 장남인 성도와 연락이 잘되지 않아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수영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던 땅을 거의 다 주어버리고 얼마 남지 않은 땅으로는 농사를 지며 살 수가 없게 된 필상은 적성에서의 생활 터전을 잃게 되어 모든 희망을 버리고 나머지 재산을 정리하여 처를 데리고 대구에 있는 성수에게로 내려갔다.
그때 영우에 하루갈이 밭 판 돈에서 그동안 영우 처 병원비와 요양원비로 쓰고 얼마간 남은 것은 영우 처 통장을 만들어 거기에 넣고 통장을 성숙에게 주었다. 어머니 요양원비로 쓰라고
대구에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성수는 분하고 황당해서 눈물을 흘렸고 효식은 자기에게 도움을 청해보지 그랬냐고 하면서 차라리 잘 됐다 이렇게 식구들이 모두 함께 모여 살게 되었으니 하며 위로를 했다.
그 후에 성국과 성숙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몇 번 대구로 필상을 찾아 뵈웠지만 결혼하고 살면서는 자기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또 대구에 가서 필상을 보면 자기들은 진심으로 필상을 대하지만 고수영의 일 이후 자기의 고향인 적성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대구로 내려간 필상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아 상심이 커 보여 민망하기도 하고 필상에게 생긴 이 모든 불행이 영우로 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필상의 처를 대하면 「영우네를 그렇게 끔찍하게 위하고 베풀기만 하더니 참 좋은 결과를 얻었소.」 하는 것 같아 얼굴을 대하기가 여건 거북한 것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어릴 때 자기들에 대한 필상의 편애(?)로 성수와 성호에게 빚을 진 것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성국과 성숙은 자기들의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성수와 성호의 태도에서 은연중 우리 아버지가 너희네 때문에 이렇게 되셨다고 하는 것 같아 그들을 대하기도 또 여간 껄끄럽게 아니다.
아니 신세만 져왔던 자기네들 때문에 고향에서 파산하여 대구로 내려간 필상네를 자기들이 도울 수 없는 형편을 넘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껄꺼럽고 민망하여 이와 같은 이유를 만들어 필상네를 피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사람 마음이란 이상한 것이어서 한번 그런 것이라고 마음을 먹으면 그것에 관련된 일은 자기가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
성도는 물론 이고 성국과 성숙의 경우도 그렇다
상대방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자기의 느낌이나 판단으로 그렇게 정하여 놓고 그렇게 자기의 생각을 이끌고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필상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언제부터인가 연락도 끊고 살다보니 이십년이 넘도록 서로가 전연 모르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지키미님!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감사합니다.
산수유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좀 있으면 목련도 피고 벚꽃도 피껬지요. 피는 꽃 같이 고운 꿈 피우시길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