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스무 살 처녀와 스물다섯 총각이 만나 내리 아들만 넷을 낳았다. 아내는 시댁 쪽에 가슴을 내밀었고 남편은 친구들의 부러움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 부자(五 父子)! 때마침 김희갑, 서영춘의 ‘오 부자’ 영화가 히트하면서 주제가인 가수 도미의 ‘오 부자 노래’가 이 골목 저 골목에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열리는 대문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으면 복이 온다, 사랑이 온다.
부르자 하늘 높이 오 부자 노래.
그뿐이던가. 번듯한 집 대청마루 기둥에는 아들이 많아야 복되다는 수복강녕(壽福康寜) 부귀다남(富貴多男)의 주련이 붙어있지 않던가. 연거푸 딸을 낳은 딸딸이 엄마가 아들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어느새 칠 공주 엄마가 되어 있더라, 종갓집 며느리가 아들을 낳지 못해 쫓겨났다는 얘기가 예사로운 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한 틀에서 구워낸 붕어빵처럼 자기를 쏙 빼닮은 아들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기를 좋아했다. 다섯 남자가 쪼르르 나이순으로 앉아 앞 사람 등에 비누를 칠하다가 됐다 싶으면 일제히 돌아앉아 역시 앞 사람 등에 비누를 칠했다. 이런 오 부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탕 내 뭇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곤 했다. 거기다 ‘참 복이 많습니다.’, ‘하나같이 다 잘 생겼네.’ 같은 덕담까지 듣고 보면 남편은 온 세상을 얻은 듯 뿌듯했다.
아내는 다섯 남자를 건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만 일가친척들로부터 ‘장하다.’라며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격려에 늘 얼굴이 환했다. 성당에서는 성모회 회장직을 맡는가 하면 성가대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아이들 공부를 챙기는가 하면 학부모 회의에도 부지런히 참석했다. 아내의 그런 활력 뒤에는 씩씩한 다섯 남자, 오 부자를 거느리고 있다는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 잘 나가던 부부 앞에 ‘아들 가진 부모는 배 타고 제주도 가고,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타고 하와이 간다.’, ‘딸 둘은 금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같은 유언비어(?)가 돈 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그럼 아들 넷은 무슨 메달일까? 부부는 괘념치 않기로 했다. 아들 없는 쪽에서 자기 위안으로 꾸며낸 말이라 치부했다. 3차 가족법이 개정되었다던가, 곧 호주제가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에도 오불관언, 천하태평이었다.
천하태평은 막내가 결혼할 때까지도 짱짱했다. 아들 가진 쪽은 갑이었고 딸 가진 쪽은 을이었다. 을은 머리를 숙였고 갑은 을을 배려했다. ‘사(師)자 붙은 사위 보려면 열쇠 셋을 준비해야 한다는데 어쩌지요?’라는 을의 걱정에 갑은 단호한 손사래로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인심을 썼다. 모든 게 남자 쪽 의중대로 일사천리, 본가 시집살이 육 개월에도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 않았다.
불과 이십여 년 전 일인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적 얘기처럼 아득함은 그만큼 세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튼 오 부자 댁과 그 집 사돈들은 혼사에 있어 남자 쪽은 갑, 여자 쪽은 을이라는 도식을 신봉한 마지막 세대인 건 틀림없어 보인다.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천하태평, 소문으로 돌던 호주제 폐지가 실제로 실현되면서 딸 가진 쪽에서는 희희낙락 목청이 높아지고, 아들뿐인 집에서는 어리벙벙 입을 다물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천지개벽의 시작이었다.
세월은 재촉하지 않아도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오 부자 댁 부부는 손주며느리를 셋씩이나 본 할배, 할매가 되어 있었다. 할배는 그동안 딸 같은 며느리를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에미야’라는 일반적인 호칭 대신 ‘경숙아’, ‘승희야’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며느리들은 할배의 그런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 본가 두 노인네를 살뜰하게 받들었다. 주말이면 정해진 순번 따라 본가 두 어른을 모시고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리 잘해주는데도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면 며느리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쩌겠는가. 할배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십여 년 전 어느 추석 명절날이었다. 왁자지껄 웃음꽃을 피우던 열여덟 식구가 오후가 되자 어른들은 처가에, 아이들은 외가에 간다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오후의 적막강산, 딸이 하나 있어 이럴 때 시끌벅적 들이닥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 후로도 가끔 친구네 딸처럼 ‘아빠, 오늘 저녁 뭘 먹었어? 오늘은 몇 걸음 걸었어?’ 조곤조곤 매일같이 물어대는 그런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동안 수굿하던 할배의 그런 생각이 요즘 들어 다시 고개를 쳐든 건 아마 할매의 궁상떠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옷 층층이 걸어두고 철 지난 후줄근한 옷에다 볼품없는 모자 쓰고 나서는 게 못내 마뜩잖았다. 비단 이불 쌓아두고 구지레한 이불 덮는가 하면 며느리가 사 온 신발 아깝다며 낡은 신발 신고 다니는 게 영 보기 싫었다. 할배가 맛집으로 이끌어도 도리질하며 만 원 미만 음식점만 기웃거리는 할매, 통장도 여러 개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도 넉넉한데 어쩌자고 저리 청승을 떨까 싶어 속이 부글거렸다.
누가 말리랴? 언제부터인가 할배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는데 대다가 자식들은 다들 효자 효부라서인지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껏 그 누구로부터도 NO! 라는 말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노마님, 그분의 뜻을 감히 누가 거스를 수 있겠는가. 혹여 ‘엄마, 안돼!’, NO! NO! 쇳소리 내는 왈패 같은 딸이 하나 있다면 또 모를까.
소매 걷어붙이고 대문 밖 나서는 엄마 붙잡아 들여 홀랑 새 옷으로 갈아입혀 내보낸다. 구지레한 이불과 옷, 모자 그리고 낡은 신발들, 할매 주변에 있는 구닥다리 허접스러운 것들 모두를 집달리(執達吏) 세간 압수하듯 주섬주섬 거두어 한아름 또 한아름 자기 차에 실어버린다. 할배 카드로 눈 나오게 비싸다는 일식집 코스 요리 일주일에 한 번씩, 석 달 치 선불(先佛) 예약증을 붉으락푸르락하는 엄마 손에 놓아주고 부르릉 떠나는, 그런 용감무쌍한 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계간 수필》 2023년 봄호)
첫댓글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스무 살 처녀와 스물다섯 총각이 만나 내리 아들만 넷을 낳았다’
동병상린(同病相燐)!?
‘스물 아홉 처녀와 서른다섯 총각이 만나 내리 아들만 둘을 낳았다’
그 당시 딸만 셋 난 친구의 부러움을 쌋던 일이 엊그제 일만 같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시쳇말로 아들 가진 부모는 딸까진 부모 비행기 타고 여행 가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도 할멈이 딸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말을 더욱 자주 쓰고 있답니다.
김윤권 선생님,
공감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