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골원 [유계영]
바닥의 셀 수 없는 구멍
맨홀의 셀 수 있는 구멍
쥐는 자기 대가리만 들어갈 수 있는 어떤 빈틈에라도 들어간다는데*
물처럼 물처럼
나쁜 습관도 늙어갈까
탕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탕진하고
우리에겐 더 큰 구멍이 필요하다
보기에 좋은 어깨 때문이다 구멍에서
어깨가 끌려 나옴과 동시에
삶이 시작되었듯
육체를 반으로 접어 삐뚤어진 그림자를 들키는 대신에
하루를 반으로 접어 절반의 시간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은행나무의 등걸잠
죽은 잎사귀를 한꺼번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의깊게 하나씩 양을 늘려가며 포기해야 한다
공사중을 알리는 야광봉이
가짜 인간의 팔 끝에 매달려 밤새도록 흔들린다
물이 물처럼 얼음이 되고 얼음이 얼음처럼
빙벽이 되는
자세의 거대서사
나는 골절의 경험이 없고 아직 죽음에 어긋난 적 없으니
곧 다시 오겠다 미래 시간에
* 김중식, 「참회록」에서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주)현대문학, 2018
* 접골원,이란 말을 오랜만에 듣는다.
요즘 사람들은 이 말을 잘 모를텐데 (나이 어린) 시인은 어찌 알았을까.
골절된 뼈가 어긋난 것을 바로잡아주는 의원을 접골원이라 한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왼쪽 다리를 접골원에서 바로잡고 바로잡고 했다.
오히려 그래서인지 커서는 뛰거나 걷는데 남들보다 나은 편이었다.
인생의 뼈대에도 번번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어서 바로잡아야할 때가 있다.
남이 바로잡아주든 내가 스스로 바로잡든 잡아야할 때 바로잡아야 한다.
인생의 뼈대를 바로잡아주는 접골원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