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시절 우연히 TV시청중 야구팬이 되던 시절 1991년 1992년은 한화의 전신 빙그레이글스의 초절정전성기시즌이었다.
2년연속 타격왕을 차지하며 당시 공-수-주의 3박자를 완벽히 갖추었다는 이정훈과 3년연속 홈런왕을 차지하며 당시 누구도 따라오지못했던 홈런페이스를 올린 연습생신화장종훈의 최강듀오타선은 당시 막강타선을 자랑하던 해태,삼성이 부럽지않았다.
특히 부상을 참아가며 팀을위해 악바리근성을 보인 이정훈은 빙그레가 페넌트레이스의 제왕의 길을 가는데 머리가 되었다.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당시 선수신체에대한 의학시스템이 워낙에 낙후되어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부상을 참아가며 경기출전을 하다 더큰부상으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조기마감하는 결과가 된부분은 참아쉽고 마음아픈 부분이다.
여기에 안타제조기"깡통"이강돈, 21연속도루신기록의 우익수 이중화, 공포의8번타자 황대연, 사실상 현명한 포수의 흐름이 이선수이후로 끊겼다고 봐도 무방한 김상국, 대타홈런전문 전대영,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석권한 "송골매"송진우, 교통사고를 딛고 일어선 "뺑덕엄마"한용덕등을 필두로 빙그레용사들은 똘똘히 뭉쳐 해태와 함께 양강체제를 이루던시절이었다.
당시 100원이면 행복했었던 시절, 부모님께 용돈을 더받아 200원짜리 스포츠신문을 사며 스크랩하고 야구면만 1~2시간을 정독하는 완전 야구에 미친어린이였다.
92년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하고도 한국시리즈우승을 롯데자이언츠에게 내준 빙그레는 93년 신인에 구대성이란 거물급 국가대표출신선수가 입단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외모부터가 남달리 야구를 잘할것처럼 보인 구대성..거기에 송진우를 이을 강속구 투수란 사실에 상당히 매료되었다.
당시 투수들은 145KM만찍어도 엄청빠른공을 던지는 투수로 여겨졌던 시대였고 구대성은 대학시절 153KM까지 던졌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그를 앞세워 맞수 해태타이거즈를 눌르고 우승할수 있다는 기대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93년은 마지막빙그레이글스의 시대가 암흑으로 끝을 맺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해는 기억하기 싫은 야구의 시즌이었다.
믿었던 최강듀오 이정훈 장종훈은 나란히 부상으로 전성기의 내리막길을 시작힌 시즌이었고 강속구투수신인 구대성역시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려버렸다.
고작 6경기에 출전해 2승1패 21이닝을 던지며 탈삼진은 고작 11개였다. 새로운에이스에 대한 최악의 절망이었다.
내심 선동열을 능가하며 우리빙그레에도 너만한 투수가 있다란것을 보여주길 바랬는데....
94년은 그룹의 개혁으로 인해 한화란 생소한 그룹의 이름으로 팀명칭이 변했다.
유니폼역시 오렌지스트라이프에서 초절정 촌스런빨간색유니폼으로 변했다.
빙그레에 대한 내애정심도 다소 변했다
그리고 그해에 부상에서 탈피한 구대성은 7승8패12세이브를 올리며 2점대의 방어율을찍었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야구의 끈을 잡을수있게 해준것은 무서운신예정민철과 함께 구대성이었다.
겉으로 드러난성적은 기대이하였지만 던진이닝수 대비 탈삼진이 너무 마음에쏙들었다.
121이닝을던져아쉽게 규정이닝을 채우지못했지만 128개의 탈삼진.
처음부터 잘할수있는선수가 어딨냐고 생각하며 내년시즌을 바라보고있었다
우리팀도 선동열만한 투수로 한국시리즈우승해보자!!
그리고 95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삼성의 이동수에게 끝내기만루홈런을 허용하는등 다수의 구원패를 당하며 14패나 안았다 승은 단 4승에 그치고..
구위는 정말 대단하다고는 했지만 그가 보여준 스탯은 4승14패18세이브에 그쳤다
주위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구원투수가 패가 14패가 되냐고...방어율도 3.54로 썩좋은편은 되질못했다.
하지만 그가보여준 6번의 완투는 그의 지구력과 뚝심을 보여주는 해가 되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인정안했지만 서서히 그는 닥터K, 최고좌완투수의 길을 걷고있었다.
그리고 그의 최고의 전성기이자 역대프로야구 전일무후한 구원-다승석권, 방어율, 승률등 4관왕을 차지하였다.
18승 3패 24세이브 ..방어율 1.88 그는 139이닝을 던지며 183삼진을뽑아내어 말도안돼는 삼진률을 기록하며 프로야구최초 30도루30홈런의 신인박재홍을 누르고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그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이닝보다 더많은 삼진수를 기록하였으며 1999년에는 한화이글스사상최초의 한국시리즈우승을 하는데에 큰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2000년이후 그는 2001년 오릭스 입단하였다
한화의 절망적인 구원진을 생각하면 구대성은 절대적인 필수였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한 한화와 팬들은 그의 일본행을 축하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더이상 한국에서 그를 볼수없단사실에 얼마나 큰 절망감에 빠졌었는지....
구대성은 2001년 대 다이에전 9회등판하여 1이닝무실점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하였다
그리고 리그종료후 그는 7승9패10세이브를 기록하며 일본프로야구 진출한 선수중 가장좋은 첫시즌기록을 하였다.
사실 그의 전성기가 어느정도 지난2000년대라서 그렇지 그의한창때인 95,96년 일본에 진출했다면 스즈키이치로와 함께 오릭스를 구원했을지 모른다.
워낙에 약체팀이었던 오릭스였기에 일본에서 그의 실력이 과소평가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첫시즌의 기대치와는 다르게 약체인 팀덕분에 그는 2.52의 방어율을 기록하고도 5승7패에 머물렀다
그리고 2004년도까지 그는 일본리그에서 뛰며 평균정도의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2005년엔 뉴욕메츠에 입단하며 메이져리그까지 입성하였다,
그리고 그유명한 랜디존슨으로부터 2루타->홈슬라이딩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좋지못한 성적으로 2006년 한국무대에 다시 컴백하였다.
2006년 37세이브를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한 그는 2007년에도 26세이브를 올리며 많은 나이임에도 관록투를 보여주었다
구대성이 없는 한화야구는 노른자없는 계란이었기에 그의 국내컴백은 이종범-이상훈컴백과 함께 한국야구를 한단계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역활을 하였다.
하지만 2008년 그는 부상등의 이유로 인해 2승3패세이브없이 9홀드만 기록한채 서서히 저무는 해로 평가받기 시작하였다.
고령으로 인한 노쇠화에 접어든 송진우와 고령화-부상-운동부족으로 체중관리에 실패한 정민철과 함께 한화마운드는 세대교체가 절심했으나 준비되지는 못하였다.
나자신도 작년까지는 구대성이 부상만 없다면 몇시즌은 더버텨줄것이라 예상했지만 올시즌 현저히 떨어진 스피드와 구위를 보면 사실상 이젠 그도 서서히 준비를 해야하는것이 아닌가하는생각이든다.
프로데뷔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한화이글스에 입단후 한국마운드를 점령하다가 일본-미국을 거치며 한국야구의 매서움을 보여주었던 구대성이 없는 한화는 참으로 개인적으로 아쉽고 씁쓸함으로 다가오기에 그의 부활을 다시한번 기원해본다..
FOREVER 구대성
첫댓글 첫번째 사진 왼쪽 안경현선수인가요? ㅎㅎ
구대성선수에 대한 애착이 많고 그가 아직 현역이란게 한화에 큰 힘이 된다고 감사하는 입장이자만, 글을 보고 옛날생각을 해보니 한화에 구대성선수처럼 불쇼를 많이 한 투수도 피코타 이전엔 없었죠... 제구가 좋았지만 칠테면 처보란식으로 밀어넣은게 문제였던 것 같네요... 작년후반기에 너무 잘해준게 더더욱 아쉽고 기대를 하게 만드네요...
구대성 선수 선발 투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펜, 마무리 투수도 아니였죠. 이기고 있으면 경기 중간에 올라와서 책임져주고, 혼자서 스토퍼랑 마무리 역할을 한 투수입니다. 지금 특급 불펜이라는 임태훈, 정현욱, 권혁, 특급 마무리 오승환, 정대현, 유동훈도 구대성 선수처럼 돌리면 1~2년이면 탈납니다. 보통 불펜에서 80이닝 던지면 노예 소리 듣는데 구대성 선수는 94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00이닝 이상 던졌습니다. 그래서 가공할 투수라고 불리는 거죠. 선발 투수가 7년 연속 200이닝 이상 던졌다고 생각해보세요.
1994(121이닝), 1995(155이닝), 1996(139이닝), 1997(102 2/3이닝), 1998(123 2/3이닝), 1999(119 1/3이닝), 2000(133 1/3이닝) 던졌습니다. ㅡㅡ;; 요즘 노예라구 불리는 특급 불펜 선수들 구대성 선수한테는 명함 못 내밉니다.
그냥 이상하게 불쇼가 생각나서 피식한것뿐 구대성선수를 비난한게 아닌데 이닝수를 다 찾아다 올리실 필요가 있나싶네요. 그리고 대단한선수인건 사실이지만 블론횟수가 많았던것도 사실이죠 그당시... 그리고 이닝수와 노예이야기할때 90년대와 요즘을 비교해선 안되죠... 완봉승이 없는 이유가 요즘 투수들이 못해지거나 타자들기량이 너무 나아져서만이라고 보나요?
겉으로 들어난 성적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항도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것이에요. 1이닝 던지는 불펜 투수보다 2~3이닝 던지는 불펜 투수가 구위 저하로 인하여 방어율이 떨어지고 불쇼를 할 가능성이 크겠죠. 참고로 2006년 구대성 선수 복귀시 성적이 69 1/3이닝 던지고 1.82 방어율 이었어요. 결국 구대성 선수의 90년대 블론은 구단 특성상 팀 성적을 위한 개인 성적의 희생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90년대 구대성 선수 패수보면 보통 7~8패에 심지어14패 까지 한적이 있다보니 단순히 승패수 가지고 이야기하기엔 구대성 선수의 위대함을 설명하기 부족해서 이닝수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더우기 90년대 혹사 논란에 꺼져간 좋은 투수들 많는데 구대성 선수는 그 혹사를 몸으로 견뎌내면 거둔 성적이라 더 대단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구대성선수는 유독 3이닝 혹은 4이닝 구원도 많았습니다. 당연히 오승환등 구원투수와 비교불가죠.
전 구대성선수보단 송진우선수라고 생각하네요. 90~09년동안 201승 143패면 말 다한듯...
개인적인 차이겠죠..구대성은 선발 구원을 모두 나서며 팀을위해 헌신했던 눈에보이지않는 성적이 큰점수죠
구대성 송진우 모두 프로다운 근성이 타에 모범이네요...아 박찬호 추가
구대성선수는 투구폼이 참 인상적이에요.........뒤돌아서 던져서 타자도 헤깔릴꺼 같아요......부활해 주세요..
야구가 아무리 기록의 경기라지만, 구대성선수의 위대함은 뭐랄까 기록만으로는 다 설명 못 할듯.
역대 최고의 좌완투수라고 생각합니다.
구위로 보자면 현재 류현진 보나 낫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