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늙어 80이 다된 처지에도 필상은 처에게 그렇게 공들여 영우네를 돕더니 그 자식들이 참도 당신에게 잘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됐고 그럴 적마다 필상은 한숨을 쉬며 회한을 참아야 했다.
성수는 결국 효식의 막내딸과 결혼해서 농장을 맡게 되고 따라서 자기의 부모는 물론 효식의 부부까지 모시고 살게 되었다.
성수의 노력으로 농장은 효식 때보다 많이 성장하여 농장도 많이 늘리고 대구에서는 알아주는 유능한 영농인이 되었고 성호는 대학교 토목과를 나온 후 서울에서 건설회사를 다니다가 성수의 도움으로 대구에서 자기 회사를 차렸고 회사가 커지면서 부산으로 이전했다.
양재 기술을 배우겠다고 하는 성숙을 설득시켜 2년 뒤에 꼭 대학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성국이 성도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고 2년 뒤 성숙의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우리가 마련해 보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자기 동생의 일이라 외면하지 못한 성도가 2년여 동안 월급 중 일정액을 성국에게 보내주더니 2년이 되자 그 송금도 끊기고 나중에는 자기 동생들과도 소식도 끊고 지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적성 근처 25사단 70연대 2대대장으로 배속을 받아 와서 그동안 찾아보지 못한 아버지 묘에 가느라 적성을 지나다 어린 때 친구를 만나 필상이 고수영의 사건으로 적성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대구로 내려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도가 사건의 전 말을 좀 더 확실히 알고 또 대구의 필상의 주소를 알기 위해 성국에게 연락을 했다.
성국에게 필상의 대한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은 후 성도는 한번 대구로 필상을 찾아가 고수영의 일로 큰아버지께 곤욕을 치르시어 죄송하다는 말로 위로를 한 후 그것으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자기의 도리를 하였다고 생각하곤 그 후론 그림자도 안 비쳤다.
성도는 이렇게 필상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 별로 없다.
아니 필상에게 너무나 많은 신세를 져서 그것이 버거워 늘 마음에 짐처럼 부담되는 것이 싫었는지 모른다.
성도가 대구를 다녀와서 얼마 안 돼 동생들을 불러서 데리고 요양소로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일이다.
이때 영우의 처는 상태가 많이 좋아져 한두 달 후에는 출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병원에서 말하고 있을 때었다.
아이들을 맞아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이제는 곧 퇴원하게 된다고 좋아하던 어머니가 큰어머니 큰아버지가 본 지가 오래되었는데 어째서 오시지를 않는지 모르겠다며 안부를 물었다.
전에 성국과 성숙이 들이 찾아왔을 때에도 같은 말을 해서 사실대로 말하면 어머니에게 충격이 될까 봐 곤란한 성국이 농사일로 바쁘시다든지 암소가 새끼를 낳았다든지 하는 말로 얼버무렸는데 또 같은 말을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성도가
“어머니는 왜 늘 그 사람들만 생각하세요?”
하는데 그 말소리에 불만이 많이 들어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분들이 없었으면 우린 모두 죽었어.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네가 어째 그런 소리를 하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도 아니 아버지 어머니는 충분히 보상했어요. 아버지는 거의 그 집의 머슴살이를 하셨어요.”
“어째 아버지가 머슴살이를 해.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친 동생으로 생각하고 대하여 주셨다.”
“아버지 어머니만 그렇게 생각하시지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머슴집 사람으로 봤어요.”
“쓸데없는 소리. 그런 적 없어. 그분들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푼 분들이야.”
“처음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나중에는 우리의 덕을 더 많이 보았잖아요?”
“너 그러는 것 아니야. 그분들의 은혜를 모르면 안 된다.”
어머니의 말 속에는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어머니의 굽히지 않는 주장에 화가 난 성도가 마침내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그 집 때문이 아니에요?”
하고 극단적인 말까지 한다.
“너 그게 무슨 말이냐. 누가 그런 끔찍한 말을 하던? 너 그런 소리 하면 천벌 받는다.”
어머니의 말에 노여움이 깃든다.
“그 집이 아니면 아버지가 그렇게 많은 나무를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 집의 땔감도 마련하느라 많은 나무를 해서 가져오시다 사고를 당하신 것 아니에요?”
“참으로 답답한 애구나. 아버지가 나무를 하면 큰집 나무까지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큰아버지는 늘 그러셨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시면 꼭 우리를 생각하셨어. 사고가 난 것은 너희 아버지가 일 욕심에 한꺼번에 나무를 나르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 큰댁 탓이 아니야.”
어머니의 말에는 노염과 울음이 섞이어있다.
“어쨌든 이오. 나는 그런 것이 다 싫어요. 특히 어머니 아버지가 그 집에 머슴같이 사시는 것이 싫었다고요.”
그래도 성도는 굽히지 않는다.
이렇게 성도는 필상에 대하여 버겁게 생각하고 감정에는 늘 골이 파여 있었다.
성도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어려서 특히 어려운 시절부터 두 집에 관계를 보아온 그는 필상이 자기네를 도와준 것은 고맙고, 감사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필상이 자기 아버지를 심하게 말하면 머슴으로 좋게 생각하면 청지기 정도로 취급해 집안의 힘들고 어려운 일 농사일이나 품을 파는 일 같은 것은 모두 자기 아버지에게 시키고 편하고 쉬운 일만 필상이 하고 아버지도 명목상으로는 필상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실상은 상전같이 대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었던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4,5학년 한 참 예민한 때에 못된 친구들에게 머슴 아들이라고 몇 번 놀림을 당한 후 그 생각이 굳어져 필상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자기들을 먼저 생각해 주는 척하는 것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더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쩜 필상과 영우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성도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필상이 전연 농사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격상 사교적이고 개방적인 필상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인 관계의 일 영농자금을 마련하고 농기계를 구입하고 농촌지도소와 협의 하여 농사계획을 세우고 농사 틈틈이 부업으로 하는 마을 일을 맡아오고 하는 일들을 잘한다.
반면 영우는 손재주가 좋고 힘이 좋아 힘든 일을 잘해 농사일과 부업으로 하는 마을일 같은 노동일을 많이 하게 되고 또 영우가 같이 하여야 하는 일이 아니면 힘든 일을 필상이 하는 것을 못 하게 하기 때문에 얼른 보면 필상은 상전같이 일 시키고 영우는 머슴같이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피난 직후 영우는 외지 사람이고 필상은 토박이라 필상이 동네를 다니며 담장을 고치고 구들을 고치는 등의 일을 얻으면 그 일들을 주로 영우가 했을 뿐만 아니라 간혹 일이 끝나고 나서 삯을 영우에게 주면 영우가 필상을 예우하느라 그 삯을 받지 않고 필상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은 필상이 영우를 너무 심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쑤군거려 필상과 영우의 우의를 몰랐던 사람들 사이에 한때 필상이 영우를 머슴처럼 대한다는 나쁜 소문도 있었다.
어른들의 그런 소리를 들은 어린이들이 성도에게 머슴아들이라고 놀렸다.
어쩜 성도가 이런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필상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성국과 성숙은 필상과 영우의 관계가 마을에 많이 알려져 마을에서 두 사람에 대해 친형제 이상이라며 상당히 호평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부러워하던 때 어린 시절을 보내 큰아버지와 아버지와 관련해 나쁜 말을 대신 좋은 말만 듣고 자라 성도처럼 마음에 그늘이 없었다.
성도도 나중에는 필상과 영우의 관계를 어느 정도 이해를 했지만 마음이 넓지 못한 성도에는 어려서 심하게 받은 마음의 상처와 필상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의 짐 때문에 필상이네와 관계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 후 요양소에서 퇴원해서 성도와 같이 의정부에서 살게 된 영우의 처가 적성으로 형님을 만나러 갔다는 것을 성도가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다고 멀리 못 간다고 반대하여 못 가고 또 성도가 일체 필상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아 모르고 지내다가 가까운 곳은 나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들이를 하면서 소문으로 필상이 대구로 이사 같다는 말을 듣고 불이 나게 적성에 거서 필상네가 고수영의 일을 당하고 대구로 가서 산다는 말을 듣고 와서 눈물을 흘리며 성도에게 필상에게 데려다 달라고 몇 번 졸랐지만, 성도가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이때쯤은 성국과 성숙도 이미 필상네와 소원해진 후라 다른 애들도 어머니의 말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듣지 않아 70이 넘은 노인 그것도 여자가 혼자 대구로 갈수 없어 끝내 필상을 찾아보지 못했다.
적성에 남아있는 다섯 마지기의 논도 이제는 성도가 관리하고 있다.
그것은 필상이 고수영이 일로 그렇게 어려움을 겪을 때 성국이 필상에게 도움을 주려고 내놓았지만, 필상이 원치도 않았고 또 소유권이 있는 영우의 처는 아직 정신이 맑지 못하고 상속권이 있는 성도는 연락이 되지 않아 팔지 않고 아직까지 영우의 처 소유로 남아있는 농토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이초롱님!
감사합니다. 3월도 중하순입니다.
개나리 목련 꽃이 피려고 몽우리를 맺혔습니다
봄꽃 처럼 화사한 봄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이이리 변하나 ㅡㅡㅡㅡㅡㅡㅡ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