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비 산악회 2017, 해파랑길 2,000리-러브 레터
영화 한 편을 봤다.
일본영화 ‘러브 레터’(Love Letter)였다.
2017년 12월 19일 화요일인 바로 어제 저녁의 일로, 전철 2호선 강변역 인근의 테크노마트 10층 CGV 5관에서 오후 6시 45분에 상영되는 그 영화를 봤다.
거슬러, 업무가 좀 한산하다 싶은 어제 오후 시간에, 내 문득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요즈음 들어 일본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아내를 위해, 그 어떤 도움이라도 좀 줘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 끝에 떠올린 것이, 바로 일본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지금 어떤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까 해서, 인터넷 Daum사이트를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지난 1996년에 제작된 이와이 슌지 감독에 나카야마 미호 주연의 일본 영화인 ‘러브 레터’(Love Letter)가 재개봉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그 영화관을 찾게 된 것이었다.
후지이 이츠키가 산악사고로 죽은 지 2년.
그의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는 여전히 자신의 약혼자였던 이츠키를 잊지 못하고 있다.
흰 눈 쌓인 겨울 산에서 조난당해 숨진 이츠키가 차가운 그 눈 속에서 생명의 불이 꺼져가며 느꼈을 심정을 알고 싶은지, 히로꼬는 추모식에 가는 도중에 눈 쌓인 산비탈에 드러누워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추모식에서 이츠키의 어머니를 만나 함께 집으로 간 히로코는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옛 주소를 알게 된다.
이제는 그 자리가 국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히로코였다.
그러나 이츠키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히로코는 괜한 생각에 그 주소로 이츠키의 안부를 묻는 작은 편지를 띄워본다.
그런데 의외로 ‘이츠키’라는 인물이 보내준 답장을 받게 된다.
그 답장이 계기가 되어 히로코는 미지의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그렇게 묘한 편지를 주고받던 히로코, 새로 사귀는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상대의 실체에 대해 확인하러 나서게 된다.
결국 수소문 끝에 그동안 편지를 주고받던 상대가 이츠키의 중학교 여자 동창이라는 사실과, 둘의 이름이 똑 같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히로코는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학창시절의 이츠키에 대한 추억을 들려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하게 되고, 그녀는 중학교 3년 동안을 같은 반이었던 이츠키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러나 결국은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이츠키가 자신을 짝사랑했었다는 그 이야기였다.
동명이인을 혼동한 히로꼬의 실수로 잘못 전달된 한 장의 편지로 인해, 한 남자에 대한 추억여행에 빠져드는 스토리 전개가, 하얀 설경과 함께 내 가슴에 포근하게 담겨드는 시간이었다.
영화의 끝 장면이 눈물겨웠다.
산악사고로 이츠키가 숨진 그 설산을 향해 히로코가 크게 외치는 장면이었다.
그 외침, 곧 이랬다.
“오겡끼데스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영화관이 있는 그 층의 바깥 하늘공원을 찾았다.
하루 전날 폭 내린 눈이 아직 그대로인 공원이었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잠실 롯데 빌딩의 화려한 풍경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가까이 올림픽대교의 밤 풍경이 있었다.
그 풍경 속을 흐르는 한강의 밤물결도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아직 덜 얼어 찰랑이는 밤물결 너머에는, 강동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풍경이 있었다.
그 너머에는 칠흑의 밤하늘이었다.
그 밤하늘 너머로, 이제는 내 마음이 달려가고 있었다.
내 고향땅 문경이 거기 있었고, 거기 사는 내 친구들의 얼굴들이 하나둘 주마등 스치듯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걷게 될 동해 해파랑길 풍경도 파랗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또 있었다.
울산 방어진에 사는 아내의 오랜 친구인 길례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그려지는 풍경들을 향해 나도 외쳤다.
이리 외쳤다.
‘다들 안녕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