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40095
여기서 이덕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일본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선조가 듣기에는 일본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그 근거로 선조실록 25년 5월 4일(양력:1592년 6월 13일)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해당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승지와 비변사 당상(備邊司堂上)을 인견하였다. 윤두수가 아뢰기를,
"중로(中路)에는 신할(申硈)·황윤용(黃允容)과 해주 목사(海州牧使) 등이 병사 1천 명을 이끌고 가게 되어 있으니 다시 대장(大將)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대가(大鴐)가 보산관에 닿는다면 매우 편하실 것입니다."
하고, 이헌국(李憲國)은 아뢰기를,
"해가 바야흐로 길어지니, 안성(安城)을 지나 용천(龍泉)에서 자고 내일 황주(黃州)에서 자면 모레는 평양에 들어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길을 가기에만 힘쓰시고 음식을 드시지 않으신다면 옥체가 상할까 염려됩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난을 당하면 임금은 마땅히 진려(振勵)해야 하고 신하는 마땅히 사직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성상께서 요동(遼東)으로 건너가실 계획을 세우지 않으신다면 신들이 어찌 감히 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신들이 천안(天顔)이 초췌함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걱정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여기서 용천이 얼마나 남았는가?"
하였다. 노직이 아뢰기를,
"저물녘에 들어가게 된다면 인마(人馬)가 다 굶게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가다가 보산(寶山)에서 묵자."
하였다. 두수가 아뢰기를,
"마땅히 황해 감사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하고, 김응남은 아뢰기를,
"지나는 곳마다 백성들이 모두 눈물짓는 것을 보니 인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고려의 현종(顯宗)은 거란의 침입을 받아 나주(羅州)로 파천하였으나 결국은 중흥을 이룩했습니다. 도성(都城)은 잃었지만 평양은 지킬 수 있습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밤이지만 용천(龍泉)까지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두수가 또 아뢰기를,
"용천까지 가면 사람과 말이 다 피곤하여 변이 있게 될까 염려됩니다."
하고, 정창연(鄭昌衍)은 아뢰기를,
"사람과 말이 지친다면 곤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갓 의논들만 할 것인가?"
하였다. 홍인상(洪麟祥)이 아뢰기를,
"황해도 인심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은 수령이 감사의 명을 잘 따랐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잘한 것이니 은전(恩典)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대동강 상류에 다른 길이 있는가?"
하니, 두수가 아뢰기를,
"삼등(三登)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하고, 이충원(李忠元)은 아뢰기를,
"평안도는 험한 곳이 세 군데 있는데 성천(成川)·평양·영변이 그곳입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우리가 한 발짝 물러서면 적들은 한 발짝 따라오기 마련인데, 신할(申硈)이 나가 싸우지 않고 그냥 왔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들로 하여금 오지 못하게 하라. 경들은 아직 경성 소식을 못 들었는가?"
하니, 충원이 아뢰기를,
"적병이 동대문으로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하고, 두수는 아뢰기를,
"역로(驛路)가 단절되었으니 사람을 보내어 탐지해 오게 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적병이 얼마나 되던가? 절반은 우리 나라 사람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
하니, 두수가 아뢰기를,
"그 말의 사실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내시위(內侍衛)나 사복(司僕)은 오로지 견마(牽馬)에 관한 일을 관리하게 되어 있는데 다들 도망치고 단지 4인만 남았습니다. 경기 감사를 시켜 잡아 보내게 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해 감사 조인득(趙仁得)은 가자(加資)하고, 이마(理馬) 김응수(金應壽)·오치운(吳致雲)은 동반(東班)에 서용하라."
하니, 충원이 아뢰기를,
"어찌 잡인(雜人)을 동반에 서용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어지러운 때이지만 명기(名器)부터 먼저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승지의 말이 옳다. 그러나 지금은 상규를 지킬 수만은 없다."
하였다.
즉 선조가 적병의 절반이 조선 사람이냐는 소문이 돌던데 그게 사실이냐고 윤두수에게 물었고,
이에 윤두수는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즉 애초에 전쟁중에 나온 일종의 뜬소문을 이덕일은 사실인양 주장했던 것이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실 기록을 봐도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일종의 뜬소문에 가까운 것을 이덕일은 무슨 사실인양 주장한 것이지요...ㄷㄷ
(사실 이덕일의 뻘짓이 이것만이 아니라는 게 더 무섭지만요..ㅎㅎ)
아니 쉬벌 뭔 개소리야 ..... 와...
이덕일이 전쟁중에 돈 뜬소문을 무슨 사실인양 주장한거죠..뭐...
@돌머리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걸 믿는 인간들도 참 빡대가리인듯
@호시노 에키 이덕일이 과연 본인이 근거로 든 해당 기사를 읽어보긴 한 건지조차 의문이지요..
해당 기사를 잘 읽어보면 애초에 그저 뜬소문에 불과하다는 걸 알 텐데 말이지요..
이덕일은 뭐 이리 무리수를 자꾸 두지...
뭐 떡사마가 무리수 둔게 어디 한두번인가효...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