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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정보-
오랜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간 회상에서 깨어난 성국은 그 동안의 자기의 행위에 대한 회한이 쌓인다.
언제나 자기들에게는 친자식보다 더 잘 해주셨던 큰아버지, 어려운 일이나 큰일이 있을 적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던 큰아버지, 그런 큰아버지의 상이 커다란 얼굴이 되어 닦아오고 고수영의 일로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자기네들에는 되도록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시던 큰아버지 그런 큰아버지를 고수영 사건 후 큰아버지가 자기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 같고 그런 필상을 보는 자기들도 거북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또 그 일로 해서 성수와 성호가 자기들을 원망하고 미워한다는 확인도 되지 않은 이유로 어쩜 그런 자격지심 같은 이유로 그런 큰 사랑을 외면하고 살아온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자기가 가장이 되어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자기가 큰아버지와 같은 입장이 된다면 큰아버지가 자기들에게 하였던 것같이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그렇게 못할 것이다.
그런 분을 이제까지 잊고 살았다. 아니 일부러 자기의 의식에서 몰아내며 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잊어가고 있던 그분을 이 며칠 전 갑자기 적성 시절의 꿈을 꾸고 나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꿈에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적성에서 있던 논에서 서로 도와가며 벼를 베다가 점심때 논 가 둔덕에 앉아 식사 도중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환하게 웃으시는 꿈을 꾸고 나서 지난날 다정했던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 꿈이 배은망덕한 자기를 깨우쳐 주기 위해 아버지가 꾸게 한 꿈처럼 생각되며 큰아버지가 그리워지고 그동안의 자기의 무례를 반성하고 일간 찾아뵙고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 아들 아니 자기가 어려서는 친동생처럼 사랑하던 성호가 그래도 옛정을 생각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왔다. 건설회사 명함을 들고.
도와달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건설회사 명함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아마 이번에 발주되는 00도로 건설공사 수주 관련해서 수주정보 때문에 도와달라고 찾아왔을 것이다.
생각에 작은 건설회사이니까 자기가 직접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누구의 부탁을 받고 왔을 것이고 그런 부탁을 하면서 성호에게는 하도로 공사를 주거나 아니면 다른 커미션을 준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가능하면 도와주어야 하겠다.
혹시 그것으로 자기가 잘못되는 한이 있어도 큰아버지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의 아들 성호를 돕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아니 도와주고 싶다.
이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옛날에 큰아버지가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도와주시었던 것처럼
그래서 다시 큰아버지네와 우리 집안이 옛날에 우의를 회복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물론 이번 일 하나만으로 지금처럼 소원해진 사이가 한꺼번에 가까워질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계기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이 잘되면 성호와 관계회복을 하고 그러면 성호를 통해 큰아버지를 다시 찾아뵈고 그동안의 무례를 용서 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이것만 생각하자.
그러면서 이 나이가 돼서야 그렇게 큰 큰아버지의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고 있으니 이제야 철이 나는 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이틀 후 저녁 안성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00음식점에서 만나고 싶다며 형편이 어떠냐고.
물론 약속을 했다. 그러마고.
너무 쉽게 박국장이 약속에 응하니 성호는 조금은 쑥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초대에 응해주는 박국장이 고맙게 생각됐다.
전화를 걸면서 00도로 건설공사 입찰이 끝나면 만나자고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고 그렇게 되면 만나는 의미가 훨씬 반감되기 때문이다.
00음식점은 언젠가 성국이 어느 건설회사 사장의 초정으로 한번 갔던 곳으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양평 남한강가에 자리 잡아 청평호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전망이 좋고 음식도 깔끔하며 맛이 있고 서빙하는 아가씨들도 모두 한복을 입은 늘씬하고 미인 측에 드는 곳으로 따라서 밥값도 꽤나 비싼 곳이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박국장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에다 차를 놓아두고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간다.
되도록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박국장은 먼저 나와 있는 성호와 기철을 만났다.
그러고 보니 이 음식점은 기철이 다니는 대영건설 사장의 초대로 같이 왔던 곳인 것이 기억된다.
성호가 다른 기업체 임원과 같이 나오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사람이 기철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다소 당황했다.
대영건설이 00도로 건설공사와 관련 경기지방 국토관리청 관리 담당을 최영식 상무에서 기철로 바꾼 것을 보고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나 대영에서는 이번 수주 경쟁에 적극적이 아닌가 보다는 생각에 자기를 방문한 다른 회사 임원들보다 기철에게는 더 소홀히 대하였는데 성호를 끌어들인 사람이 기철이라니 그 의외성에 또 대영건설의 용의주도함에 다소 놀래고 당황한 것이다.
대영에서 어떻게 나와 성호의 관계를 알았을까?
아니 이것은 대영의 용의주도함이 아니라 어쩌면 우연일 것이다.
성호와 나와의 관계를 대영에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이제 성호가 누구와 같이 나왔고 그것이 계획적이던 우연이던 일단 성호를 돕기로 하였으니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기철은 박국장과 약속이 되었다는 성호의 말을 듣고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전화를 건 성호도 박국장이 그렇게 쉽게 약속에 응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 성호와 박국장과의 관계를 모르는 기철로서는 그렇게 깐깐하고 도도하게 굴던 박국장이 성호의 한마디에 약속장소로 나온다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국장이 그냥 성호와 저녁이나 먹는 자리로 알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됐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성호가 박국장을 만났다면 명함을 주었다고 하고 그 명함에 태양토건이라는 건설업체 명이 있으니 누가 보아도 성호가 한 저녁 약속은 00도로 건설공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어있다. 그런데 누구보다 그런 것에 민감한 박국장이 그것을 모르고 그 자리에 나온다고 하니 믿어 지지가 않아 기철은 음식점으로 가면서도 긴가? 민가? 하는 상태이다.
00음식점에 도착하여서도 정말 박국장이 오기로 되어있느냐고 성호에게 확인하면서도 뜨악한 표정을 하고 있던 기철은 박국장이 들어서자 ‘정말 이 사람이 왔네.’ 하는 생각에 어리둥절했다.
성호가 어색한 분위기를 의식하며 박국장에게
“형님! 대영건설의 박기철 상무 아시죠? 박상무님도 박국장님 잘 아시고?”
하고 말을 건넨다.
오랜만에 아니 자기가 사회생활을 하고 나선 처음으로 성국을 만나는 자리에 기철을 같이 만나게 한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생각되지만, 이왕에 수주정보에 대한 이야기도 하여야 하는데 두 사람을 따로따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전하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다 같이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조금은 무리가 되더라도 성호가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다.
박국장에게는 나중에 따로 이해를 구하기로 하고
기철은 안성호가 박국장을 형님으로 부르는데 더욱 놀라며 ‘그럼 두 사람이 이종 간이란 말인가 그래서 박국장이 성호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모양이군.’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국장님 안녕하셨어요?”하고 인사를 했다.
“네! 박상무님도 안녕하시죠?”
화답한 박국장이 손을 내밀어 기철과 악수를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 손을 잡은 기철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박국장은 기철을 대하였던 태도가 또 기철은 박국장에게 받은 대접이 서로를 어색하게 만든다.
자리를 잡고 앉으며 성호가 박국장에게는 자기가 대영건설에 협력업체라는 것을 알리고 기철에게는 박국장이 집안 형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구나, 내 생각대로’하고 생각하던 기철은 ‘그런데 박국장이 가까운 친척이라면 성호가 며칠 전까지 박국장이 경기지방 국토관리청 시설국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또 동네에서 같이 살았던 그냥 아는 사이라면 박국장의 그동안에 행태로 보아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텐데 대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 하며 의문을 갖지만 털어놓고 물을 수도 없는 입장이여서 성호의 말에 고개만 끄덕인다.
수인사가 끝나고 밥을 먹기 전 술상이 차려지는 동안 기철은 가벼운 흥분을 느끼고 박국장은 조금 어색해하고 성호는 이상한 감회에 젖는다.
그리고 성호도 자기 그렇게 만든 자리이긴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지내다가 느닷없이 찾아가 만났던 사람을 불편한 술자리에 불러내었으니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술을 마시며 기왕에 성호를 도와주기로 마음먹고 나왔으니 그러지 말자고 해도 그렇게 철저하던 자기가 성호의 한마디에 무너진 것을 기철에게 보여주는 것 같아 기철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하는 생각에 미치면 박국장은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아가씨가 따르는 술잔에도 흥이 나지 않고 또 필상이 그렇게 되어 대구로 내려가고 난 후에도 자기는 건설부에서 승진하며 업자들에게 늘 이런 대접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는 것으로 성호가 이해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한편 기철은 잘하면 성호의 도움으로 00도로 건설공사에 대한 수주정보를 얻고 더하여 공사도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가씨들이 따라주는 술이 꿀같이 맛있다.
그래서 조심을 하려고 해도 너털웃음이 저절로 난다.
성호는 박국장이 술자리에 나온 것을 보면 박국장이 자기를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으나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성국에게 수주 관련 정보 부탁을 하려고 하니 말이 잘 안 나오고 더욱이 그 부탁의 효력이 자기와 성국과의 관계에서보다 아버지와 성국과의 관계가 더 큰 영향일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도 든다.
삼 일 전 기철에게 성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자기를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고 자기네 때문에 적성에서의 생활도 접고 본의 아니게 대구에서 아들에게 얹혀살고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렇게 큰 은혜를 모두 잊고 사는 성국이 사람의 도리도 못 지키면서 건설부 국장이 되어 너무나 도도한 척하고 있다는 것이 괘심하여 성국의 변한 모습도 한번 보고 싶고 또 그 위선을 밟아주고 싶은 마음에 자기가 수주정보를 알아본다고 나섰지만 그렇게 만난 성국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정을 못 잊지 않고 있음을 충분히 보이더니 이번엔 자기의 말 한마디에 자기의 입장을 변명하거나 미루지 않고 그렇게 완강하던 태도를 바꾸고 이렇게 쉽게 응해주니 고마운 생각을 넘어 어쩐지 언짢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아가씨가 따라주는 술을 연신 마신다.
아니 성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술을 드는 속도가 빠르다.
기철은 기분이 좋아 박국장은 어색한 기분을 잊으려고 이렇게 세 사람은 같이 술을 마시며 웃고 있지만 모두 자기 생각에 빠져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어 밴드도 부르고 돌아가며 노래도 하고 하여 어색했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진 후 아무래도 오늘의 술자리를 만든 목적이 우의를 다지는 것보다 수주정보를 위한 것이 더 크고 그것을 박국장에게 이야기할 사람은 자기라는 것을 자각한 성호가 술이 많이 오른 척하며 박국장에게
“형님 기철이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 그것이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니까요.”
하고 일부러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한다.
“알았어. 자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그리고 오늘 여기서 박기철 상무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자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어.”
박국장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기철이
“국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하며 박국장의 손을 잡는다.
“나에게 갚을 은혜는 없고 갚을 은혜가 있다면 성호를 도와주십시오.”
“여부가 있습니까? 안 사장은 우리 회사 협력업체입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내일이라도 내가 성호를 통해 박상무에게 필요한 것을 보내드리리다.”
“감사합니다.”
기철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며 속으로 ‘예상은 했지만, 성호와 박국장의 사이가 도대체 어떤 관계인데 그렇게 깐깐하게 굴던 박국장이 성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쉽게 승낙하는 것인지 알 수 없군.’ 하고 생각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든 잘하면 숙원이던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으니 정말 잘됐군. 박국장도 화통할 때는 화통하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도 술자리는 오래 계속되고 마침내 박국장이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권하기도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필상에 대한 자기의 정과 미안함을 표현하여야 하는 자기가 스스로도 못마땅하여 자괴감에 연신 술을 마신 때문이다.
성호는 협력업체 사장으로 기철은 큰 회사 상무로 접대하는 술자리를 많이 했고 이 자리도 박국장을 접대하는 자리라서인지 아니면 체질적으로 박국장보다 술이 강해서인지 두 사람은 아직은 크게 취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술자리가 파한 시간은 열두 시가 훨씬 넘어서이다.
술자리를 파하고 근처 호텔에 방을 잡아 거의 정신을 못 차리는 박국장을 투숙시키며 박국장의 파트너 하던 아가씨에게 박국장의 시중을 부탁하고 박국장의 호주머니에 교통비용으로 얼마를 넣어주고 기철과 성호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이들은 박국장과 같이 심하게 취하지도 않았고 기철은 원래 여자를 밝히는 쪽이 아니고 성호도 시내에 호텔을 잡아놓아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다.
택시 안에서 기철은 성호에게 다시 고마움을 표하고
“대체 안 사장과 박국장이 어떤 관계야? 박국장이 그렇게 간단히 항복하게.”
하고 술자리 내내 궁금해 했던 것을 묻는다.
그렇지만 성호는 긴 사연을 택시 안에서 간단히 설명하기도 어렵고 또 그런 관계를 이용했다는 자격지심에 언짢은 생각도 들어 차차 알게 될 것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시내에 도착하여 기분이 좋은 기철이 어디 가서 맥주로 입가심이라도 하고 가자는 제의를 성호가 ‘시간이 늦었다. 형수님이 기다리신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호텔로 가버렸다.
첫댓글 즐~~~~감!
잘 보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무혈님!
구리천리향님
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3월 들어 가장 따뜻한 날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