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그림같은 섬에서 동백을 그리며...
네, 동백이라는 말에 꽂혔습니다.
동백이라니 당연히 겨울에 지천일테고
더구나 보길도라니요.
망설일 이유도 고민할 필요도 없었지요.
헌데 핏빛처럼 붉은 입술을 하고
도도하게 맞아줄 줄 알았던 동백은 자취도 없고
아직 검푸른 이파리들만 무성할 뿐이었지요.
너무 이른건지 너무 늦은건지 알 수 없었지만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았던 이유는
그 곳은 섬이었고 바다가 있었고 섬이라서 느낄 수 있는 달짝지근한 바람이 있어서였습니다.
-파래다~!
-아니야 매생이야.
-파래같은데?
-파래는 좀 거칠고 매생이는 훨씬 결이 고와.
누구였는지도 모르겠고
그 말이 맞는지도 확인할 길은 없었지요.
다만, 먹을 줄만 알았지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 몰랐던 해초의 근원이
밭도 논도 아니고 바닥가 자잘한 자갈이었다는 점이 놀라웠지요.
걸음걸음 물큰 풍겨 올라오는 해초의 냄새는
잊어버렸던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 보다 세 번, 네 번 거듭할 때마다
나를 보며 웃어주는 모놀님들이 많아졌고
저 또한 먼저 말 건네고 싶은 분들이 늘었어요.
유나 출세한거지요.
이렇게 좋은 분들과 친해질 수 있는 행운이 어디 그리 흔하겠어요?
(이거 미국 간 동안 잊힐까봐 아부하는 거 절~~대... 맞음.^^;;)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녀~
배 위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전복 양식장에 탄성을 지르는 일행들에게
정색을 하며 그 정도는 암것도 아니라는 유피디님 말은
불과 몇시간 지나지 않아 눈에 질리도록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촌뜨기가 눈에 들어오는 바다 풍경을 보며
한 눈에 딱 전복 양식장이라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그 곳에는 보이는 곳 어디에라도 양식장 구획이 끝도 없습니다.
이마트에 갈 때마다 "값이 많이 내렸네?" 하면서도 선뜻 집어 들지 못하던 전복이
그 곳에서는 가는 곳마다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림에 있으나 먹을 수 없는 떡을 그림의 떡이라고 하던가요?
바다에 깔렸으나 손 닿을 수 없는 전복은 뭐라고 해야할까요?
뭐 암튼 따끈한 방바닥이 좋아 게으름 부리다 올라가니
그나마 전복은 구경도 못했으나
대신 당분간 회생각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을만큼 배불리 먹었으니 여한은 없습니다.
하룻밤 룸메이트가 된 사랑 방장님과
요시코님 예림님
겨우 하룻밤이었는데 만리장성을 너머 실크로드까지 갈 판입니다.
마치 어제도 그제도 만났던 사람들처럼
다정다감하고 조근조근한 식구들
여자형제가 없는 저로서는 한꺼번에 식구가 생긴 기분이었습니다.
일출보다 따뜻한 방바닥의 유혹에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뜨는 해라도 보길도에서 보는 그 것이 특별한 건 맞습니다만
다행히 느즈막이 나선 길에도 아주 잠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는 있었답니다.
부지런한 참새님이 어디론가 종종걸음을 치십니다.
얼덜결에 따라가보니
어제 유피디님 얘기중 잠시 들었던 것 같은
즉, 학교 운동장에 서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는, 바로 그 학교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아이들이 없는 학교 마당은 고요에 잠겨있었습니다.
교사를 바라보다 휙~ 뒤로 돌아선 순간
아..!
바다입니다.
이런곳에서 이런 풍경을 날마다 보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요?
그 아이들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많은 곳을 들르고 감동하고 머물고 싶은 곳도 있었지만
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깊이 박힌 곳은 때아닌 밧줄까지 타고 올랐던 동천석실이었습니다.
머슴들이 일일이 양식이며 일용품들을 지고 나르는 것이 안타까워
명주실을 꼬아 일찍이 리프트로 물건을 운반했었다는 윤선도 선생님.
그 때 나이가 40대 중반이었다죠.
참으로 낭만적인 분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유배라면 더는 말고 딱 한 달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
한 번 해보고 말하라구요?
^^;;;;;
서서히 보길도에서의 이틀이 마무리 되어 갑니다.
답사팀 일행이 멸치를 흥정하는 동안
산행팀 선두 주자가 두 손을 번쩍 쳐들며 활기차게 걸어옵니다.
공룡알보다 매끈한 자갈밭에 앉았습니다.
순식간에 지나버린 1박 여행이 꿈결 같습니다.
아직 배타고 나가 완도 전망대에도 가야하는데
새로산 카메라 배터리가 마치 제 임무는 거기까지 였다는 양
장렬히 전사합니다.
배시간 맞추느라 숨가쁘게 달리던 버스 앞좌석 손잡이를 손에 땀나도록 부여잡았던 일도
완도에서 제일 높다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한 준에 바다를 내려다 보던 기억도
모두 보너스가 된 기분입니다.
남도에도 봄은 아직 먼 것 같은데
햇살만큼은 봄의 그 것처럼 화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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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3월 답사를 기다릴 시점에
늦어도 너무 많이 늦은 후기였지요?
답사 다녀온 다음날부터 짐 싸서
그 다음주에 지금 이곳, 일산으로 이사를 했어요.
이사하고 바로 월요일부터
과천에서 미처 마치지 못한 나머지공부를 하느라
날마다 새벽 6:30분 강남행 9700번 버스를 타는 일정의 연속이었어요.
이제 4일만 더 하면 끝나는 시점에서 그 간 열어보지도 못했던 사진 파일을 정리했어요.
네~
게으른 후기에 대한 핑계랍니다.^^;
첫댓글 유나님~~ 너무도 조용하신 분.... 지난번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유나님의 글로 보길도에 못간 저의 마음을 대신 위로 받게 되네요....감사합니다...^^
송년회 때 다정하게 말 건네주셔서 어찌나 고마웠던지요.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네. 맞아요 유나님. 하교길 교문을 나서면 확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며 유년기를 보니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ㅡㅡㅡ 생각만으로도 뻥~~ 하고 소통이 되는 기분입니다.
나도 아메리카 어디라도 좋으니 한 일년쯤 유배되면 울매나 좋겠노 ㅡ미쿡을 단 한번도 못가본 국산참새
ㅎㅎ
역모를 하세요 ㅋ
토요일 장봉도...가면서..백령도 ..진도...보길도...모놀 덕분에 참 좋은 곳 돌아다녔구나 생각하며 뿌듯..
이제 미국가기전에 자주 만나 사진 찍자...
네에~
이번 수업 끝나기만 목 빼고 기다리고 있어요..^^
이사하신거 축하드리구요 후기 잘 보았습니다. 참석은 못하였지만 님들 만난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축하 드리구요.후기 잘 읽고갑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나님의 후기가 올라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깔끔하고 단아한 후기!!
미국 가시느라 준비할 일도 많을텐데 팬들을 위한 서비스, 고마워요~~~
모놀에서 배운거 받은게 너무 많은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후기 밖에 없는걸요.^^
게으른 후기가 주는 추억을 곱씹는 맛이 참 즐겁고 고소합니다. ㅎ ㅎ ㅎ
지금쯤은 동백꽃이 지천일텐데 . . . 아~ 언제 가보느뇨? ㅎ ㅎ ㅎ
유나님~ 이사하느라 수고 많으셨을텐데 이리 시간내서 후기도 올려주시고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미국 가실 준비도 차근차근 잘하시길 바랍니다. *^^*
아휴~
이래저래 동백꽃은 저와 인연이 아닌가봐요.ㅜ.ㅠ
동천석실이 저도 썩 맘에 들었습니다...저 꼬마눈사람 찍으셨네요...ㅎㅎㅎ
손이 무척 시렸을텐데 눈사람 커풀을 만드시는 고운님 모습이 참 고왔어요.^^
조용 조용한 모습의 유나님
글도 사진도 조용조용...
봄의 바닷가 밀물진 어디쯤
내 지나는 길에 본
기둥을 물에 담그고 있던 그 집
벽도 문도 없이
지붕만 덮여있던 물가의 정자
거기 바람을 불러들여
살면 좋겠다
사글세로 딱 한 달만...
조용미 시인의 시 '물가의 집' 이 생각나게 하는 후기입니다.
덕분에 감사히 감상하고 갑니다...
물가의 집,
저도 그런 집에 더도 말고 딱 일주일이라고 살고싶네요.
유나님,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섬세한 감성이 더욱 마음을 끌리게 하는 유나님,
이사에 공부에 바쁠텐데 잊지 않고 올려준 후기 넘 좋아요~^^
조근조근 정겨운 향기야님의 말소리가 늘 좋아서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아닌데도 넋놓고 쳐다보곤 했어요.
그런 언니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단히 죄송하게도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사진으로 느껴지는 품성은 참 조용하신 분인듯 합니다.
저만 기억하고 있었군요?ㅎ
항상 맨 뒷줄에 개량한복 입고 앉으셨던...
요즘은 작은행복님이 갑장이라며 여러번 얘기해서 기억 못할 수가 없지요.^^
ㅎㅎ 그말이 맞는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제가 밷은말을 들으셨군요?ㅎㅎ
미쿡가서도 모놀이랑 함께 놀아요~~
이렇게 꼬리 달면서...ㅋㅋ
네에~ 그러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