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상환(上環)에 있는 홍콩대 부속병원. 산부인과 진찰실 앞에서 5명의 임신부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중국 여성이 홍콩 신분증(ID) 대신 중국인이 갖고 다니는 홍콩.마카오 방문증(통행증)을 내밀었다. 그는 출산 시기를 묻자 "5월 말"이라며 자리를 비켰다.
임신 중인 20대 한국 여성은 "종합병원에서 푸퉁화(普通話.중국 대륙의 표준어)를 쓰는 중국 여성을 많이 만난다"고 말했다.
중국과 가까운 신제(新界)지역에선 중국 임신부들을 홍콩 병원으로 호송해주는 불법 조직까지 생겼다고 한다. 중국 임신부들의 원정출산 붐이 뜨겁다. 홍콩의 의료 기술.서비스 수준이 높은 데다 아이가 커서 홍콩 신분증을 받는 데 유리하다는 소문 때문이다.
홍콩의 신생아 숫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감소했으나 지난해 6.2% 늘어난 4만9796명을 기록했다. 홍콩 여성이 많이 낳아서가 아니다. 중국 여성들이 전체 신생아의 25.9%(1만2915명)를 낳은 덕택이다.
그중 '홍콩 아빠, 중국 엄마'를 둔 신생아는 9285명이었다. 부모 모두 중국인인 신생아는 3630명. 이는 2001년(169명)보다 20배나 급증한 것이다.
이 바람에 홍콩 정부는 울상이다. 중국 임신부 때문에 병원 수지가 나빠져서다.
정부 관계자는 "종합병원에서 정상 분만시 1만5000홍콩달러(약 200만원), 제왕절개시 3만~4만 홍콩달러의 비용이 든다"며 "하지만 중국인 산모가 내는 돈은 이틀간의 입원비 6600홍콩달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입원비를 아끼기 위해 자정을 넘겨 처치료가 100홍콩달러인 응급실로 직행하거나 입원비를 내지 않은 채 야반도주하는 사례마저 적지 않다. 급기야 저우이위에(周一嶽) 위생.복지.식품 국장이 최근 "홍콩 ID가 없는 산모에겐 일괄적으로 2만 홍콩달러의 출산비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홍콩인 아닌 입원 환자에 대해선 사전예치금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중국인이 정부병원에 내지 않은 각종 치료비가 지난해 5950만 홍콩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여성의 원정출산을 바라보는 홍콩 사회의 시선은 아직 싸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