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넛 플레이스 Connaught Place (Hindi : कनॉट प्लेस)
officially Rajiv Chowk 康诺特广场
▲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의 센트럴 파크의 분수대는 날이 새니 분출을 시작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배변과 세면을 마쳤다. 새벽녘인 4시20분쯤에 숙소를 나와서 빠하르
간지(Pahar Ganj)의 골목길을 걸어 나와 뉴델리역(New Delhi Station)을 돌아 코넛 플레이
스(Connaught Place)쪽으로 혼자서 걸어갔다. 뉴델리역에서 코넛 플레이스로 가는 길은
대로이다. 이런 대로는 차도 바로옆에 인도(人道)가 블록으로 되어 계속 이어져있고, 그
인도의 바깥쪽에는 사이클릭샤와 자전거가 다니는 작은 차도가 있다. 그런데 바로 차도
옆 안쪽 인도바닥에 그냥 노숙자가 아무 것도 덮지 않은 채 2명이 엉켜 붙어 자고 있다.
▲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 주위의 여러 건물 상가 및 볼거리들의 배치지도.
▲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로 가는 길목인 뉴델리역 부근의 새벽풍광
▲ 지독한 추위가 없는 곳인 인도노숙자는 수월하다 - 생활에 신발도 필요없고, 자는데 이불도 필요없다.
새벽녘의 날씨라고 바람이 불어주면서 시원한 것은 아니고 그냥 한낮보다 기온만 약간
낮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있지 않아 공기가 좀 깨끗하면서 따가운 햇볕이 내
려쬐지 않을 뿐이다.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에 도착하였더니 아직도 약간 어두
움이 남아있다. 경찰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으면서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
다. 외국인으로 내역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너무 불친절하다고 항의했더니 들어가는 길
을 안내해 준다.
▲ 새벽 4시 40분경의 코넛 플레이스 주위에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고 몇 명의 경찰들만 지키고 있다.
▲ 새벽녘의 코넛 플레이스 주위에 있는 거리 및 상가와 관공서 모습.
▲ 이 청소년들은 코넛플레이스의 센트럴 파크에서 자다가 필자가 들어가니 일어나 사진을 찍어달랜다.
이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를 경계로 뉴델리와 올드델리로 나누어지고, 영국통
치시절 수도를 캘커타(Calcutta)에서 델리로 옮기면서 당시의 인도 총독이 기획하고, 건
축가로서 인도문(印度門)을 세운「에드윈 루티엔스 경(Sir Edwin Lutyens : 1896~1944)」
이 디자인하였다. 그 때의 영국국왕은 현 엘리자베드2세 여왕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
(King George V ; 1865~1936)였는데, 영국 왕실의 코넛 공(The Prince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 ;1850~1942)이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붙
여 광장이름을《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라고 지었다.
▲ 필자의 항의를 받은 경찰한명은 공원안에까지 따라 들어와 필자의 사진도 찍어주고 공원안내도 한다.
▲ 코넛플레이스의 센트럴파크 안의 잘 가꿔진 잔디밭과 주위의 현대식 건물.
코넛플레이스(Connaught Place)는 델리 최대의 금융상업 및 비즈니스센터로 흔히 CP라
고 말하는데, 주위에는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인도의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
으며, 몇몇 유명한 회사의 본사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코넛 플레이스(CP)는 델리의
특색을 살려서 <상업중심지구> 로 돋보이게 개발하였으며, 192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33년에 마무리하였다.
▲ 코넛플레이스의 센트럴파크 안에는 미니잔디 축구장을 비롯한 몇가지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다.
▲ 코넛플레이스의 센트럴파크 안에는 잔디와 나무가 잘 자라고 거니는 오솔길을 만들어 두었다.
▲ 코넛플레이스의 센트럴파크 안에 있는 잔디밭과 나무 및 오솔길 모습.
인도가 독립하고, 라지브 간디(Rajiv Gandhi)가 인도의 수상이 되고나서 공식명칭은 라지
브 초크(Rajiv Chowk) 로 개칭하였으나, 아직도 일반적으로는 코넛 플레이스(CP)라고 부
른다. 오늘날의 코넛 플레이스(CP)는 델리에서 가장 활기찬 상업지역의 한 곳이지만, 역
시 정부의 독단적이고 무계획적인 도시개발로 인하여 개인의 재산권을 잠식해 들어가는
문제라든가 교통 혼잡을 유발하는 일 등 여러가지 부수되는 문제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
이다.
▲ 센트럴파크의 중앙에 서서 정부청사로 향한 거리를 배경으로 한번 찰칵
▲ 코넛플레이스의 센트럴파크에서 남쪽을 향한 시내거리 모습
▲ 센트럴파크의 한쪽에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 화단이 있어 사진을 찍어보았다.
겹으로 둘러쳐진 원형건물군은 마치 그리스의 신전과도 같은 모습으로 웅장함이 드러나
며 건물군의 가운데에는 잘 가꿔진 녹지를 이루는 센트럴파크를 조성해 두어 쇼핑, 비즈
니스, 휴식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설계이다. 원형건물군은 방사형 도로에 의해 각 구획
이 구분되고, 각 구획은 블록을 이룬다. 안쪽 건물군 이너서클(inner circle)은 A~F블록을
이루고, 바깥쪽 아우터서클(outer circle)은 G~N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인도의 국기와 I love INDIA 가 새겨져 있는 하얀 인도의 기념 면티를 사서 입었다.
▲ 맑은 아침공기를 마시며 뉴델리의 중심인 코넛플레이스의 센트럴파크를 거니는 기분은 좋다.
▲ 현대의 인도 젊은 남녀는 이렇게 아침공원을 함께 산책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델리남부에 새로운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많이 생겨나 CP의 명성은 과거에 비
해 조금씩 퇴락하지만, 아직도 코넛 플레이스를 대체할 만한 번화가는 없다. 델리남부지
역에 비해 훨씬 유리한 교통편에다가, 뉴델리의 시작과 함께 했다는 역사적 상징성 그리
고 인도의 중심가에 속하는 여러 정부기관이 가까이 있는 점 등이다.
▲ 지저분하기로 유명한 인도에서 도심 가운데 이렇게 깨끗한 공원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 세계 어디를 가도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이다.
▲ 센트럴파크를 나와 코넛플레이스를 거니는데 역시 우리의 현대자동차 모닝이 서있다.
필자는 코넛플레이스를 센트럴파크안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는 공원 바깥으로 나와서
길거리를 따라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주위의 건물과 중요 상점들을 눈여겨 보았
다. 아직도 아침 이른 시간이라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침 운동하
는 사람도 모여들고, 젊은 청년들이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몰려든다. 그냥 남서남 방
향의 P블록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외국의 도시유람은 조금 힘들어도 가장 좋은 관광
방법으로는 천천히 걷는 것이다. 조금 걸으니 그 유명한「잔타르 만타르」천문대가 나
온다. 그러나 아직 문은 열지 않았다.
▲ CP의 아우터서클에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지반 바라띠 건물(Jeevan Bharti Building)」
▲ 코넛플레이스의 지하상가인「팔리카 바자르(Palika Bazar)」로 들어가는 입구문.
▲ 코넛 플레이스에서 바라본 임피리얼 호텔 입구의 유명한 야자수나무(The Imperial Hotel)
▲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자 차량과 사람들이 다시 붐비기 시작하는 코넛 플레이스의 이너서클쪽 거리.
◆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 Jantar Mantar or Jantra Mantra (Astronomical Observatory
of Delhi 德里古天文台 or 天象观测所 (疆塔尔曼塔尔)
▲ 델리의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의 전체 모습인데, 외형상으로는 아름다운 공원모습을 하고있다.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는 산스크리트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수단과 공식’
혹은 ‘마법의 장치’라고 말하고 있다. 인도의 라자스탄에 자이푸르(Jaipur)를 세운「마하
라자(Maharaja=왕) 자이 싱 2세(Jai Singh II)」는 천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히 높은 사람
이었다. 천체관측에 남다른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인도의 달력을 개량하기 위하
여 학자들을 외국으로 보내 그 나라의 천문대를 연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델리(Delhi)、
자이푸르(Jaipur)、바라나시(Varbnasi)、마투라(Mathura)와 우자인(Ujjain) - 이렇게 5곳에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를 만들었다.
▲ 델리의 <잔타르 만타르>는 넓은 녹지대를 이뤄 델리시민들이 와서 구경하고 놀기 좋은 곳이다.
인류의 문명과 함께 발달해 온 천문학은 천체현상을 신의 계시로 해석하려 했던 고대인
들의 의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서 종교적의식을 치르기 위한 시기를 결정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언했다. 물론 하
늘을 관찰하며 얻은 지식은 농사를 짓는 데에도 이용하였지만, 고대의 천문학은 신화 및
주술적 색채가 더 강했다.
인도의 천문학은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를 연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
는데, ´신(神)의 나라´라 불릴 만큼 많은 신(神)을 믿는 인도에서는 종교의식을 대단히 중
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정확한 시기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해와 달·별 등의 움직임을관
찰했고 춘분·추분·동지·하지·일식·월식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이용하여 달력을 만들고 별자리를 그렸다.
거기에 그리스·로마의 천문학이 전해지면서 인도의 천문학은 외래의 지식과 고유의
특징이 융합된 독특한 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천체를 실제로 관
측하기 위한 천문기구를 개발하고 만드는 일에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자이 싱 2세(Jai Singh II)」가 건설한 5개의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자이푸르와 델리에 있는 것인데, 규모가 가장 컸던 자이푸르의 것은 제
대로 복원돼 있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724년에 완성된 델리
의 것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으나, 1910년에 델리의 천문대 구조물을 지금의 장소에
서 복원하였다. 13개 분과의 천문학을 연구하기 위한 건축시설로 편성되어 있는데, 주
된 목적은 천문수치를 편성하고, 시간을 예측하고, 태양과 달 및 행성의 움직임을 관측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의 많은 부문이 오늘날에는 천문학으로 분류된다.
▲ <잔타르 만타르>의 외부모습.
돌과 대리석을 이용하여 만든 기묘한 모양의 건축물들은 언뜻 보기에는 커다란 예술작품
같지만, 모두 천체 관측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해시계와 적도시계를 비롯하여 일식과
월식, 별자리와 계절풍을 관측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들은 천체 관측소라기보다는 특이하
게 설계된 조각공원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잔타르 만타르>에는 우주공간을 형상화하여 건물은 멋있는 조각을 이룬다.
수준 높은 천문지식과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잔타르 만타르>는 이
제 더 이상 하늘의 신비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인류는 언제나 현재의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지식을 추구해 왔고, 또 인류의 창조성과 예술성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한
지적(知的) 호기심과 능력이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 델리의 <잔타르 만타르> 주위에는 잔디밭으로 형성되어 있으면서 푸른 식물을 잘 가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