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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1년 10월 15일 토요수행법회>
수행법회 후 문답
설법: 김제원 교무님
타이핑: 초벌) 남궁부 완성)김도권
질문: 김형준교우
김형준
- 그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할때는 오히려 사람들간의 관계도 없고 충돌할일도 없었는데, 또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그러한 감정이 심지어 수행할떄도 머리에서 맴돌아서.. 회사생활할 때 그런 인간관계에서의 감정을 관리할 요령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무님
- 과거에는 발심을 내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안한다던가 직업생활을 안한다던가 복잡한 생활보다는 단순한 생활로 산속에 많이 들어가고 경계를 일단 피경을 많이 해왔죠. 사실 그런것도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초반에는 그런게 필요한데 그러나 진묵 스님같은경우는 장날에 시장에 가서 마음 뽑히는걸 보는거에요. 예를들어 여자들 같은경우에 백화점에 갔다. 그럼 마음이 쭉쭉 뽑히거든요. 그 마음이 뽑힐 때 그 마음을 바라보고 또 뽑히기 전마음을 놓치않는 그게 수행이거든요.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죠. 초반에는 근데 그게 잘 안되거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정(定)공부를 하죠. 근데 정공부는 뭐하기 위해서냐면 동정을 아우르기 위해서 즉 동할 때 잘하기 위해서잖아요. 근데 정과 동은 좀 다르거든요.동 정이 골라 맞아야겠지만 정의 힘이 없으면 동시에 빼앗길 수밖에 없어요. 그럼 사회생활 하지 말라는 소리냐,그게 아니라 무시선강령에 정시에는 일심이다 동시에는 정의를 실행한느것 이랬죠, 즉 정시에는 잡념에 길들이지 않고 일심을 기르고 동시에는 옳은 일을 하는것이랬죠. 동시에 옳은일을 안하면 그 찌꺼기를 집으로 가져오는 경우를 낳거든요, 마음에는 단계가 있거든요. 표층의식 심층의식 등.. 어중간한 심층의식에 들어가면 꾸꾹 참다가 폭발하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대종사님은 자성의 정공부랬죠. 그냥 정공부가 아니라 정공부와
자성의 정공부인데 그게 어떻게 쉽게 설명할수있냐면, 풀이 나잖아요 땅에서
자성의 정공부가 아닌 정공부는 그냥 바위로 누르는것이고
자성의 정공부는 뿌리까지 뽑아버리는거에요
자성의 정공부가 아닌 정공부는 점수. 핵심을 모르는
자성의 정공부는 돈수에요. 핵심을
염불을 할때도 적적성성한 마음을 유지하는 좌선도 마음과 기운과 호흡을 단전에 주하지만 사실 적적성성한 그 자리에 주하는 것이 선이에요. 또 일을 할때도 적적성성 백화점에서도 마음이 뽑히고요 이쁜여자를 보면 마음이 뽑히고요. 즉 순간 그 마음을 놓쳐버리는거죠. 그래서 내가 뭔가 하더라도 생각에 놀아나고 감정에 속고 집착에 놀아나죠. 그러나 본래 감정이라는 것은 그런 집착 그런 생각 그런게 없죠 그대로 그냥 지켜볼뿐이죠, 근데 이게 힘이 없으면 빨려가고 그럽니다. 그래서 빨려가더라도 원래 원위치에 돌아와야 되는데 오뚜기처럼, 하지만 근데 그게 잘 안와지는거죠. 제자리에 대한 확실한 앎과 연습, 힘이 없어서 그런것이에요. 그것이 대종사님은 양성이라고 하셨죠. 그 성품을 단련하는 것. 그래서 그것을 기르지 못하면 쭉쭉 뽑혀나가고 원위치 시킬 힘이 없는거죠. 그래서 그 단련을 먼저 해야해요. 또 무시선이라고 해서 정시선이 없이 마음만 챙긴다가 무시선이 아닙니다. 원불 에서 불은 깨달음이죠. 남방불교가면 위빠사나가 있죠. 그 순간 마음을 알아채는건데 우리는 그런공부가 아니에요. 그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데 알아차리기 이전 자리를 꺠치는것이에요.
김형준
- 심란할 때 일부러 그래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산책을 하고 그런데 제 과거를 돌아봤을 때 자동차회사, 전자 회사 등에서 힘든 이유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와 감정적인 문제였는데요. 그래서 그런문제들로써 산책을 하고 그런데 이게 임시방편인것같아서 다른 방법이 있나 싶어서 여줘봅니다.
교무님
- 본인의 마음자리만 알게되면 노래를 불러도 산책을 해도 다 똑같습니다 . 반면 그 마음자리를 제대로 모르고 그저 외면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산책을 하고 하는 것은 그저 임시로 대치하는 것이죠. 우리는 대치가 아니라 대조이죠. 그 마음의 실체 자리에 진입하는것이죠. 대조.
김형준
- 그 특정인물과의 문제도 있지만 그 문제의 근원에는 누군가에게 지고싶지 않다는 마음인것같은데 .. 상대방보다 제가 더 정확하다는 그런 마음이 있고 . 제가 옳은데 왜그러나 하는 그런마음이 있는것같습니다. 그래서 이런건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교무님
- 우리의 마음에는 겸손해야곘다는 마음도 있고요 떄로는 자기가 잘난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죠. 이기심과 이타심이 같이 있는것이에요. 우리 마음공부는 이기심이나 이타심이 결국 생멸심이에요. 있어졌다 없어지는 마음이에요. 대조공부를 하라는 것은 이 두 마음에 속지 않는 것이에요 이 두 마음을 응용해서 쓰는것이에요. 인과적으로 보십시오, 아주 간단해요. 왜 아기를 보면 좋아해요? 기운이 맑아서 이쁘고 순수해서 이쁘고 때가 안타서 이쁘죠. 내가 마음에 우월심이 드는 만큼 무시당하는것이에요. 내가 정말 인정받고싶거든 하심을 해야합니다. 인위적 하심과 본래자리로 가버리는 하심이 있어요. 인위적 하심은 가식일 수 있어요. 반면 본래자리로 가버리는 하심은 하심하는 지 모르는 가운데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수 있는 하심이죠. 본인만 알면안되요. 바이어와의 문제에서도 상호작용이잖아요
예를들어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수염도 안하고 안씻고 옷도 더러우면,,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이 드시겠어요. 나는 똑같은 나지만 상대방은 어떻게 보여지냐가 달라지죠. 다른 사람에게 잘보이기위해서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야해요. 그래서 우리가 깔끔하게 하고 예를 지키고 이런것이죠. 꼭 사업에 성사를 시켜서야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것이에요. 내마음도 보고 말이죠. A라는 여자는 이쁘고 B라는 여자는 안예쁜데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 반응이 똑같을까요? 종원교우가 영상을 찍을때도 인터뷰 할 때 이쁜 사람만 찾는다는건 천박한 생각입니다. 원음방송을 볼 때 그 불특정다수의 시청자를 생각해서 하는것이에요. 밖의 경계는 휘몰아 칠 때 그 경계에 얼마나 중심을 잡나에 있어서 어떤사람은 버티고 어떤 사람은 밖으로 떨어지죠. 즉 본인의 균형감각에 의해서 통과를 하기도 안하기도 하는것이에요. 외부경계가 불규칙적이고 가변적인데 그것을 받아들일 때 나는 똑같이 했는데 왜 반응이 다르지 하는 것은 어리석은 거죠. 그래서 상대의 반응을 내가 컨트롤 하기는 매우 힘드니 본인이 먼저 바뀌는 것이 중요해요. 근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멘토가 필요한것이에요. 스승. 진리의 핵심은 주관과 객관이 없는것이에요. 주관과 객관을 넘어선 자리가 진정한 주관이고 객관이거든요. 나를 비우는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마음도 함께 해나가야 한다. 내가 회사를 잘해도 국가가 imf 나면 부도나죠. 그걸 일치시키려 하는 것이 기도에요. 대령자리에서 만나는. 가장 빠른길이 이제 본인을 바꾸고 상대의 마음을 아는것이에요.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마다 다 가변적인 것들이에요. 즉 무빙타겟이에요. 계속 맞춰가려는 노력을 해야하는것이에요. 계속 노력을 하게되면 원리를 알고 힘이 쌓이게 되죠.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아니죠 다 알때가 있어요. 그러나 또 노하우가 있다고 해서 항상 성공하는것도 아니고요. 왜냐면 다 변하는 세계거든요.
질문: 김화중 교우
김화중
- 제가 요새 법정스님이 쓴 수필을 막 읽어보고 있는데요. 그 분의 필력도 되게 좋고 제가 요새 생각하고 있는 부분과 코드가 맞아서 즐겁게 읽고 있는데 제가 원불교에서 느끼는 강점중에 하나가 불법을 실천하는 것을 중요시하는건데, 근데 법정스님이 쓴 수필에도 그것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대부부분의 내용이 원불교의 교리와 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는데, 나는 원불교가 되게 혁신적이라는것에 자부심을 갖는데 제가 보니 불교와 크게 다른게 있나 싶기도 한데, 정확하게 원불교와 불교의 큰 차이점이 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무님
- 그거 한 3시간 해야하는 내용인데 ㅎㅎ 한마디로 말하면 새 불교다. 원불교는 3가지로 뭐라했죠. 그대로 배껴온것도 있고 약간 변형한것도 있고 아예 새롭게 만든것도 있고 불교같은 경우 여자분들 계문이 몇갠줄아세요? 화두는 몇갠줄아세요? 대종사님이 새 주세불로 나오셨다 했는데 거기에 대한 그 대종사님이 불교는 불교인데 어떤것을 개선했는가. 그것을 교전을쭉 보시면 한가지 한가지가 아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게 요소요소에 많이 나와요.
맨 앞에 교법의 총설에 많이 나오고요 서품에도 많이 나오고요 교의품에도 많이나오고 등등
이지만 크게 놓고보면
시대화했다
생활화했다
대중화했다
이죠.
근데요새 불교도 많이 변화를 헀죠. 불교가 고려시대때 융성했다가 많이 타락도 햇고 또 조선시대에 억압을 받고 스님을 놀리는 노래도 있고 그랫죠. 대종사님이 왜 그러면 조선불교혁신론으로 내놨다가 원불교라고 새로 개칭을 하셨는데 해외에 포교할때는 원-부디즘 으로 하죠. 저희가 유불선을 통합했지만 연원을 불교로 대셨죠. 대종사님이 금강경을 보시고 성인중의 성인이다 라고 하셨죠. 그래서 연원을 대시고요.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제가 불교에 있다면 머리를 깎아야 겠죠. 불교도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불교와 또 달라요. 요새 불교가 역사를 흘러오면서 지역마다 달라요. 그래서 대종사님은 시대성과 생활성 대중성을 다 손봐버린거죠. 경전 결혼 남녀 등등. 일단 교리부터 평등하죠.
천지. 부모. 동포,법률.
그래서 평등의 원리가 그대로 다 들어가있죠. 제가 강좌들을 다 까페에 올려놓았으니 보세요.
질문: 김용재 교우
김용재
- 친한 친구중에 머리가 굉장히 좋은데 상담요청이 왔습니다. 그 친구가 검사를 못한게 아쉽다고 할 정도로 똑똑한 친구인데 고대의대 친군데 실습을 돌다보니 그 친구가 머리 좋은게 소문이 나서 시기하는 친구도 많다고 합니다. 어떻게 상담해주는게 좋을까요.?
교무님
- 여자들이 양다리 걸치듯이 똑같은 것이에요. 이놈이 이게 좋은데 저게 마음이 안들고
즉 .. 욕심이에요. 본인의 욕심을 못놓는것이죠. 예를들어 하은이랑 결혼을 하면 하원이의 장점과 단점은 다 떠안고 가는것이에요. 즉 선택에는 다 책임이 따라요. 제가 지금 단추를 첫단추를 잘못끼고 쭉 끼면 모양새 나쁘죠, 다른건 열심히 채웠지만 결국 첫단추의 잘못으로 이상하게 된거죠. 즉 첫단추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취사죠. 취사는 어떻게 해야해요 깊이 생각해요. 어떻게 깊이 생각하죠? 비워야해요. 삼학은 원불교롤 교리를 넘어선것이에요. 삼학을 사업에 대면 사업에 성공 운동에 대면 운동에 성공하는것이죠. 미국에 강의 잘하는 사람 원고를 받아봤는데 결국 신분의 성이더라고요. 즉 욕심의 문제고 선택의 문제죠.
질문: 송종원교우
송종원
- 청년연합법회에.. 시험기간인데 못나온다고 하는사람을 존중 해야줘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교무님
- 재수를 하면 어떤 사람은 점수가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점수가 내려가요. 신기하지않아요? 근데 60프로가 점수가 내려간데요. 재수를 선택했을 때 점수가 올라가든 내려가는게 결정되는게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했느냐 아니냐죠. 즉, 대종경에도 나오듯이 법횟날 품삯을 준대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하여 진정으로 이 법회의 중요성을 알면 미리 준비해서 이 법회를 들었을 것이라 하셨죠. 시간과 공간은 한계점이 있지만 마음은 그걸 초월할 힘이 있는것이에요. 원불교 갔으니 공부를 못한다? 아니죠. 명동성당 다니던 조정재 박사가 어떻게 하다가 교당에 가게 됬대요. 그랬는데 게송을 듣게 되는데 그 구공역시 구족이다 라는 구절을 듣고 매료되어서 교당 다니며 고시 패스했어요. 마음이라는 것은 한계를 뛰어넘는 부분이있는것이에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기도할 시간에 일해야죠. 근데 기도를 하면 묘한 것이 있거든요. 시험기간에 교당안나오는 사람은 따져보면 공부가 아닌 핑계로써 안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교당에서 출석을 봐요 . 어쩔 수 없는 결석이냐 아니면 신심이 없어서 생기는 결석이냐. 신도림동에서 교당오기 멀다는 사람이있어요, 근데 여자친구 생기니 부산은 다니더라고요. 자기 마음따라서죠. 마지막으로 질문이없으면 한마디할게요
여러분 언제가 좋으세요?
칭찬들을 떄 좋고 맛있는거 먹을 때 좋고 .. 그럴때가 좋으시나요.
근데 자기가 수행을 통해서 느껴지는 좋음 내가 나에게 목표를 잡은 것을 하나씩 하나씩 체계있게 유념있게 실천해나갈 때 느껴지는 든든함과 재미 내가 나와의 약속을 지켜나가때 느껴지는 나의 예쁨 그때 자기가 그렇게 예쁠수 없어요. 저는 여러분이 그런 재미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쉽게 말해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냥 적당히해요.. 나태심 등등 때문에...
근데 한마음내서 열심히해봐요. 에를들어 방청소 한번 마음내서 해봐요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제가 기도문 읽는데 오늘 제가 감동했어요 좋은 기도문이 어떻게 나올까요? 정성을 다해서겠죠. 정성을 다하니 모두가 기분이 좋잖아요. 내가 나태하면서 느끼는 잠깐의 쾌락보다 정성을 다했을 때 느껴지는 그 행복이 훨씬 더 좋죠. 제가 먼저 여러분이 스스로가 에뻐할수 있게 자기 일과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해나갈 때 그떄 정말 누가 칭찬안해줘도 스스로 좋을거에요. 내가 나에게 오롯하게 할 때 정말로 자기가 에쁘고 표정이 밝아지고 발전되는 모습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법횔르 오시는 것은 그런 마음이 있어서잖아요. 맑은 영혼으로 살고 싶다. 내가 내 삶의 주체자로써 살고싶다, 그런 마음이잖아요. 그렇게 자신감 있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