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하던 할머니의 요양원 길
며칠 전 아침을 먹고 나서 둘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 요양보호사가 왔다. 차 한 잔 함께 하며 요양보호를 다니는 다른 집 할머니(83) 할아버지(87)는 요즘 좀 어떠시냐고 물어보았다. 요양보호사는 말문을 바로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더니 ‘할머니 어제 요양원으로 가셨어요!’, 한마디 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했다.
할머니는 얼마 전 집 안 화장실에 다녀오시다 넘어져 고관절 골절이 됐다. 진료를 한 대전의 대학병원 의사는 곧 입원할 것을 강력히 권하고 아들도 자신이 교수로 근무하는 대학의 대학병원에 입원하길 바랐으나 ‘나는 괜찮다’며 입원하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시어 재가 요양에만 주력해 왔다. 집 안에서는 가만히 누워 있거나 도움을 받아 휠체어나 보행기에 의지해 가까스로 움직였다.
할머니는 자신도 도움을 받아야 할 병고 중이신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거나 오후에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의 손길만 기다리며 투병 생활을 해오던 나날이었다. 문제는 요양보호사가 돌아간 후에 밤이 되면 도움이 더 필요한 할머니는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곁에는 대학 교수를 하며 함께 사는 딸이 있으나 말로만 함께 살 뿐 집(딸의 집)은 딸이 이용하는 여관일 뿐이며 자신이 밥상 차려 부모와 함께 밥 먹는 것을 한 번도 보질 못했다는 주변의 입과 눈이다. 같은 집에 사는 딸은 출근할 때나 퇴근해서도 부모에게 인사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따님으로부터 다니는 요양보호사에게 전화,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가기로 하셨는데 가까이에 아는 요양원 좀 알아보아 달라’는 것. 오후 요양보호를 위해 갔던 보호사는 가장 궁금히 여기는 것을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요양원에는 가지 않으신다더니 그 몸을 가지고 가시기로 했어요?’ 이에 할머니는 무슨 소릴 하느냐는 식의 반문하는 표정. 이어 ’난 요양원에 안 간다!‘ 누가 그런 소릴 하더냐?’.‘교수님이 그러던데요?’ 교수에게 전화를 한 요양사, ‘어머님은 요양원에 안 가신다는 데요? 자녀분들이 의견을 모았나요?’
따님은 답 없이 어물어물하면서 ‘어제 하룻밤 어머니 방에서 함께 잤는데 간병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내가 지레 죽겠다‘며 어머님 모시고 갈 차가 요양원에서 곧 올 텐데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차에 까지 모시고 나갈 사람이나 좀 불러 달라’고.
요양보호사는 가슴이 메여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없어 나왔다며 ‘따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긴 한 숨. 집으로 가는 요양사의 차로 따님의 전화, ‘아버님이 오늘 퇴원해 귀가하시면 어머님도 안 계시는데 밤늦게까지 만이라도 돌보아줄 사람을 급히 구해 달라!’는. 요양사는 ‘그런 사람, 지금 갑자기 구하기는 어려울 텐 데요’.
요양원에 가길 마다하던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시던 날은 얼마 전 위내출혈로 아들이 교수로 있는 같은 대학의 대학병원에서 입원했다가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할아버지가 폐렴으로 또 다시 그 병원에 입원진료를 받는 중에 강력하게 퇴원을 바라는 바람에 귀가를 앞두고 있던 바로 그 때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젊은 시절의 사회활동은 접어두더라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1남 4녀를 두고 모두 훌륭하게 키워 사회에 진출시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온 분들이시지만 간병하겠다고 나서는 마땅한 핏줄이 하나 없는 오늘인 것이다. (2015. 4. 8.)
첫댓글 요양원에 가기 싫어하는 어머니는 억지로 끌려가고 폐렴치료가 아직 안된 상태로 마나님이 없는 쓸쓸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심정이 오죽하겠오만 자식들이 부모를 귀찮게 여기니 더 살아서 무엇하겠나. 그런데도 우리 천주교에서는 비참한 삶이라도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니 꼭 감수하고 겪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 점에 대해 나는 늘 불만과 회의를 품고 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