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곁에 있던 사람(5) / 에바브로디도 / 빌립보서 2:25~30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빌 2: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빌 2: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빌 2: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빌 2: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빌 2: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 곁에 있었던 사람 다섯 번째로 에바브로디도 집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우들이 옥에 갇힌 바울을 도우려고 보낸 자입니다(빌4:18).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이 에바브로디도에 관하여 바울은 꽤 많은 언급을 합니다.
그만큼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바울의 인상이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에바브로디도가 어떤 인물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바울은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25절). 혈육을 의미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주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에서 형제입니다. 이는 에바브로디도가 믿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임을 증거해 줍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한 자입니다. 예수를 주라 고백한 자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형제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초대 기독교의 대사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지역 교회의 목자입니다.
나이도 바울이 휠씬 더 많습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많은 나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형제로 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나 형제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대통령도 예수님을 믿고 수위도 예수님을 믿으면 둘 다 하나님 안에서 형제입니다. 기둥이는 나의 아들이고, 나는 기둥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기둥이와 나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형제 된 자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2. 바울은 함께 수고한 자라고 합니다.
“함께 수고하고”(25절). 즉 동역자(fellow worker)를 의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함께 힘을 모은 동역자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방향을 향하여 힘껏 노를 젓는 동역자입니다.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에바르보디도는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데 전력하였습니다. 동역자란 함께 수고하는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동역을 기뻐했던 자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수고한 자라고 합니다. 함께 수고한 자는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리 훌륭한 자일지라도 혼자서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바울의 부족함을 도와주었습니다.
3. 함께 군사 된 자라고 부릅니다.
“함께 군사된 자요”(25절). 싸움을 위해 존재하는 자가 군사입니다.
신앙은 영적 전투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에바브로디도 역시 그리스도의 군사였습니다.
바울과 함께 기꺼이 영적 전투를 누볐던 용맹스러운 십자가의 군사였습니다.
군사된 자는 영적인 싸움을 함께 싸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특히 전쟁에서 전우애로 만난 사람은 관계가 깊습니다. 함께 목숨을 내놓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단과의 싸움을 싸울 때도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때 바울과 함께하며 목숨을 내놓고 영적인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함께 고난받은 에바브로디도가 사랑스러웠습니다.
바울과 ‘함께 군사되었다’라는 말에는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극히 담대함으로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였음을 의미합니다.
4. 너희(빌립보 교인) 사자라고 말합니다.
“너희 사자로”(25절). 본문의 사자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명자를 의미합니다.
즉 빌립보 교회에서 특별한 사명을 받고 파송된 일꾼을 의미합니다.
이는 에바브로디도가 맡은 일에 충실한 자임을 보여줍니다.
5.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합니다.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25절). 그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울을 힘껏 도왔습니다.
'나의 쓸 것'이란 말에서 우리는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실제적인 필요들을 채워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웃 사랑의 실천자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현재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바울은 누군가의 섬김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에게 음식이나 옷을 차입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바울과 다른 교회와의 연락할 자도 필요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런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병들었거나 감옥에 갇힌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많은 수고와 내면성이 필요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이상을 섬기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이렇게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섬기듯이 바울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형제 된 자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난받으며 영적 싸움을 싸우고 우리의 필요를 돕는 자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자,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자, 고난의 때에 고난을 함께 한 자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룻은 동서가 홀어머니를 떠나도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함께 하며 모셨습니다.
자기의 일보다 시어머니의 일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룻을 귀히 여기고 다윗의 증조할머니로 삼아주셨습니다.
어떤 며느리는 시부모님을 모셨습니다. 시아버지는 자신을 가까이 모신 자식은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끔 와서 용돈이나 주고 좋은 말해주는 자식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유산도 함께 한 자식에게 주지 않고 멀리 있는 자식에게 주었습니다. 시어비지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만 남자 시아버지를 모신 며느리에게 냉대를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 사시공부할 때 열심히 뒷바라지 해주었더니 사시에 합격하고 나니 다른 사람으로 갈아타는 이야기들이 흔히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우니 고우니 하여도 우리와 항상 함께하는 가족들, 지금까지 오랫동안 함께 한 교회의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귀한 사람은 평생을 같이하는 부부입니다. 부부는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가난하고 힘들 때 옆에 있어 준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조강지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교회에 정말로 필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