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낳고 자란 박씨는 마흔이 다 돼 정식가수로 데뷔했다. 요즘 연예인들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본인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엔 실버가수로 데뷔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 100세 시대잖아요. 환갑 넘어서 앨범을 내는 사람도 많아졌답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은행에 다녔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을 했고, 3명의 자녀를 뒀다. 은행을 그만두고 나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오랜 객지 생활 끝에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냈고, 30대 중후반이 돼서야 청주로 돌아왔다.
"제가 워낙 활동적이에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교회 성가대로 활동했는데, 이 때 양로원 같은 곳으로 봉사를 많이 다녔죠. 가서 노래도 불러드리고. 그러다보니 노래가 점점 좋아지고, 가수를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고향인 청주로 돌아오면서 결심했죠. '나도 가수다'라고."
무대에 서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작은 행사장에서 몇 번 부른 게 고작인데, 그 실력을 눈여겨본 작사가가 연락을 해왔다. '직지'란 노래를 불러보지 않겠느냐고.
참 좋은 제안 같았다. 마침 청주시가 세계직지추진단이란 부서를 만들어 직지를 브랜드화 하기 시작할 때였다. 내 고향 청주의 자랑, 직지를 시민들 나아가 전국에 알려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왠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다.
"1집은 주로 직지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을 다뤄 너무 불교적 색채가 짙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2집 '내 사랑 직지'에선 최대한 종교적 내용을 빼고 대중들에게 친숙한 트로트풍을 도입하게 됐죠. 2집부턴 전국적 인기도 꽤 얻었는데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마다 하도 '내 사랑 직지'를 불러대니 PD들이 그러더라고요. 직지 말고 다른 노래를 부르면 더 뜰 것 같다고. 단칼에 거절했죠(웃음). 제가 언제 인기가 필요해서 직지를 불렀답니까?"
직지는 나의 사랑이자, 내 삶의 활력소라 믿는 박정현. 요즘은 대학 평생교육원 등에서 후배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후배 가수들이 노래를 잘하고 좋은 무대에 서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발전시키는 또 다른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자, 박정현씨. 준비됐죠? 슛 들어갑니다."
"서원 고을 흥덕사에 범종 소리 들려오면 못 다 이룬 첫사랑에/ 눈물짓는 아낙네도 두 손 모아 비는구나/ 서기 어린 직지의 뜻 진리 따라 빌고 빌어 선의 길로 인도할 때/ 속세의 슬픔도 거품인 양 사라지고 내 마음을 밝혀주네"(박정현 1집 '직지' 중에서)
임장규기자
첫댓글 고생끝에 낙이라는 말 선생님 정말 장하심니다 .
저녀셋 키우며 가수하겠다는 집념 뜻이 있는 곳에 길이있다는 말 선생님께 잘 어울리는 말 같아요
어느가수보다 우리에 유산 직지가수가 된게 보배롭습니다 .
언제나 소녀같은 모습으로 직지노래 불러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건강 유의 하시구요^수욜날^^^만나요♥♥♥
사연이많았다던 직지노래 이야기를듣고 황당했습니다
굳굳이 잘지키고 보전,보급하신선생님 존경합니다~~~
반갑습니다^^^추위에 고생 많으십니다.항상 열심히 생활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갑오년 새해엔 더욱더 힘 내셔서 좋은일만 있기를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