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Course in Miracle (기적수업) 3:30 – 3:37
V. Perception Versus Knowledge
V. 지각 대 앎
30 We have been emphasizing perception and have said very little about cognition as yet because you are confused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them. The reason we have dealt so little with cognition is because you must get your perceptions straightened out before you can know anything. To know is to be certain. Uncertainty merely means that you do not know. Knowledge is power because it is certain, and certainty is strength. Perception is merely temporary. It is an attribute of the space-time belief and is therefore subject to fear or love. Misperceptions produce fear, and true perceptions produce love. Neither produces certainty because all perception varies. That is why it is not knowledge.
30 그동안 지각을 강조하면서 인지cognition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네가 그것들의 차이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지를 그렇게 조금만 다룬 이유는, 네가 무엇이든 알 수 있으려면 먼저 지각을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곧 확신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란 단지, 네가 알지 못함을 의미할 뿐이다. 앎이 곧 권능인 이유는 앎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성은 곧 힘이다. 지각은 일시적일 뿐이다. 지각은 시공간 믿음의 한 속성이며, 따라서 두려움이나 사랑의 지배를 받는다. 그릇된 지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참된 지각은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둘 중 어느 것도 확실성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모든 지각은 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지각은 앎이 아닌 까닭이다.
31 True perception is the basis for knowledge, but knowing is the affirmation of truth. All your difficulties ultimately stem from the fact that you do not recognize or know yourselves, each other, or God. To recognize means to "know again," implying that you knew before. You can see in many ways because perception involves different interpretations, and this means that it is not whole. The miracle is a way of perceiving, not of knowing. It is the right answer to a question, and you do not ask questions at all when you know.
31 참된 지각은 앎의 기반이지만, 안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확인이다. 너희의 모든 어려움은 궁극적으로 너희가 자신을, 서로를, 그리고 하느님을 인식하거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인식한다는 것은 “다시 안다.”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네가 전에는 알았음을 함축한다. 지각은 여러 다른 해석을 포함하기에 너는 많은 방법으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은 곧 지각이 온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기적은 아는 방법이 아니라, 지각하는 방법의 하나다. 기적은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이지만, 네가 알 때는 전혀 질문하지 않는다.
32 Questioning illusions is the first step in undoing them. The miracle, or the "right answer," corrects them. Since perceptions change, their dependence on time is obvious. They are subject to transitory states, and this necessarily implies variability. How you perceive at any given time determines what you do, and action must occur in time. Knowledge is timeless because certainty is not questionable. You know when you have ceased to ask questions.
32 환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환상을 무효화하는 과정에서 첫 단계다. 기적, 즉 “바른 대답”은 환상을 교정한다. 지각은 변하므로 명백히 시간에 의존한다. 지각은 일시적인 상태를 면치 못하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가변성을 함축한다. 네가 특정한 시간에 지각하는 방법이 너의 행위를 결정하며, 행위는 반드시 시간 안에서 일어난다. 앎은 초시간적이다. 왜냐하면, 확실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질문하기를 멈췄을 때, 너는 안다.
33 The questioning mind perceives itself in time and therefore looks for future answers. The unquestioning mind is closed because it believes the future and present will be the same. This establishes an unchanged state or stasis. It is usually an attempt to counteract an underlying fear that the future will be worse than the present, and this fear inhibits the tendency to question at all.
33 질문하는 마음은 자신을 시간 안에서 지각하며, 따라서 미래의 답을 구한다. 질문하지 않는 마음은 미래와 현재는 똑같을 것이라고 믿기에, 닫혀있다. 이는 변하지 않은 상태, 혹은 정체 상태를 확립한다. 이것은 대체로 미래가 현재보다 나쁠 것이라는 저변의 두려움에 대응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두려움은 질문하려는 경향 자체를 억제한다.
34 Visions are the natural perception of the Spiritual eye, but they are still corrections. The Spiritual eye is symbolic and therefore not a device for knowing. It is, however, a means of right perception, which brings it into the proper domain of the miracle. Properly speaking, "a vision of God" is a miracle rather than a revelation. The fact that perception is involved at all removes the experience from the realm of knowledge. That is why visions do not last.
34 비전은 영안의 자연스러운 지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교정이다. 영안은 상징적이며, 따라서 앎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영안은 바른 지각의 수단이며, 바른 지각은 영안을 기적 본연의 영역으로 데려간다. 제대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비전”은 계시라기보다는 기적이다. 지각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경험을 앎의 영역에서 제거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비전은 계속되지 않는다.
35 The Bible instructs you to "know yourself" or be certain. Certainty is always of God. When you love someone, you have perceived him as he is, and this makes it possible for you to know him. However, it is not until you recognize him that you can know him. While you ask questions about God, you are clearly implying that you do not know Him. Certainty does not require action. When you say that you are acting on the basis of knowledge, you are really confusing perception and cognition. Knowledge brings the mental strength for creative thinking but not for right doing. Perception, miracles, and doing are closely related. Knowledge is the result of revelation and induces only thought. Perception involves the body, even in its most spiritualized form. Knowledge comes from the altar within and is timeless because it is certain. To perceive the truth is not the same as knowing it.
35 성서는 “너 자신을 알라.” 혹은 확신하라고 가르친다. 확실성은 언제나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네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를 있는 그대로 지각한 것이며, 이로 인해 너는 그를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너는 먼저 그를 인식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네가 하느님에 대해 질문하는 동안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확실성에는 행위가 필요 없다. 네가 앎을 기반으로 행동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는 지각과 인지를 혼동하는 것이다. 앎은 정신적인 힘을 바른 행위를 위해 동원하지 않고, 창조적인 생각하기를 위해 동원한다. 지각과 기적과 행위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앎은 계시의 결과이며, 오로지 생각만을 유발한다. 지각은 가장 영적인 형식을 취할 때조차 몸과 관련이 있다. 앎은 내면의 제단에서 나오며, 또한 확실하기에 시간을 초월한다. 진리를 지각하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과 같지 않다.
36 If you attack error in one another, you will hurt yourself. You cannot recognize each other when you attack. Attack is always made on a stranger. You are making him a stranger by misperceiving him so that you cannot know him. It is because you have made him a stranger that you are afraid of him. Perceive him correctly so that you can know him. Right perception is necessary before God can communicate directly to His own altars which He has established in His Sons. There He can communicate His certainty, and His knowledge will bring peace without question.
36 너희가 서로의 잘못을 공격한다면,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될 것이다. 공격할 때 너희는 서로를 인식할 수 없다. 공격은 언제나 낯선 자에게 행해진다. 너는 그를 알 수 없도록, 그를 그릇되게 지각하여 낯선 자로 만든다. 네가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를 낯선 자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네가 그를 알 수 있도록, 그를 바르게 지각하라.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들 안에 확립하신 당신의 제단들과 직접 소통하시려면 바른 지각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확실성을 전해주실 수 있고, 그의 앎은 물을 필요도 없이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37 God is not a stranger to His Sons, and His Sons are not strangers to each other. Knowledge preceded both perception and time and will ultimately replace them. That is the real meaning of the Biblical description of God as "Alpha and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 It also explains the quotation, "Before Abraham was I am." Perception can and must be stabilized, but knowledge is stable. "Fear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should read "Know God and accept His certainty." There are no strangers in His creation. To create as He created, you can create only what you know and accept as yours. God knows His Children with perfect certainty. He created them by knowing them. He recognized them perfectly. When they do not recognize each other, they do not recognize Him.
37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들에게 낯선 분이 아니시며, 아들들은 서로에게 낯선 자가 아니다. 앎은 지각과 시간보다 먼저 있었고, 궁극적으로 그것들을 대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고 묘사한 성서 구절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것은 또한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다.”라는 말을 설명해준다. 지각은 안정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안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앎은 정녕 안정적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라.”라는 말은 “하느님을 알고, 그의 확실성을 받아들여라.”로 읽어야 한다. 하느님의 피조물 안에 낯선 자들이란 없다. 네가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 창조하려면, 오로지 네가 알고 너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만 창조할 수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더없이 확실하게 아신다. 하느님은 그들을 아심으로써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은 그들을 완벽하게 인식하셨다. 그들이 서로를 인식하지 못할 때, 그들은 하느님을 인식하지 못한다.
[출처] [2월 1일] 텍스트 3:30 – 3:37 (한국 기적수업 공부 모임) | 작성자 도서출판 기적의 향기
첫댓글 The miracle is a way of perceiving, not of knowing.
The miracle, or the "right answer," corrects them(illusions).
You know when you have ceased to ask questions.
While you ask questions about God, you are clearly implying that you do not know Him.
To perceive the truth is not the same as knowing it.
Knowledge preceded both perception and time and will ultimately replace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