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학교 길잡이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지음 | 성바오로딸수도회 옮김
9.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위한 첫걸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개념에 상당한 혼란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심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인간의 내면, 곧 존재의 숨겨진 부분으로 바로 그곳에 존재의 충만함이 있으며, 이곳에서 인간과 하느님이 만난다.
마음은 존재에게 있어서 생명의 근원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마음은 인간 존재의 중심이고, 지능과 의지의 활동적 기능의 근본이며, 모든 정신적 생명이 흘러 나오고 모아지는 지점이라고 한다. 인간의 심리적이고 정신적 삶이 솟아나오는 불명료하지만 심오한 원천이며, 인간은 마음이 있어 생명의 원천과 가까워지고 통교하게 된다.” (E. Bhr-시겔)
우리가 '마음'에 대해 좀더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각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례를 통해서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는 '신적인 섬광'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과 직접적인 만남에 들어갈 수 있다.
'신적인 섬광'은 성 토마스가 '주부적(注賦的) 덕행'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덕행은 힘과 능력과 효과를, '주부적'이란 우리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의미한다.
성 토마스에 따르면 주부적 덕행은 신덕, 망덕, 애덕이며, 세례성사를 통해 받게 되는 '초자연적 생명'으로 이해된다.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것을 갖출 수 없으나 성장시킬 수는 있다. 초자연적 생명은 하느님과 통교하도록 우리를 돕는다.
이것이 대부분의 영적 스승들이 말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기도 안에서 우리 존재의 가장 심오한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는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신적인 섬광이다.
개념을 명확히 하였으니 이제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곧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란 깊은 내적 침묵 가운데 말과 생각과 상상을 한쪽에 놓아두고, 우리 존재의 깊은 내면을 하느님께 열어 보이며 오직 그분만을 사랑하면서 그분 앞에 단순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단순하다. 이 기도는 복잡한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으며, 세심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교만한 사람들(자신의 교만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다.
깊은 내적·외적 침묵이 요구된다. 모든 말과 모든 정해진 문구들을 추방하고 상상을 멈추어야 한다. 내적 침묵의 혼란은 마음의 침묵을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랑 안에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아마 누구도 명확히 규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천 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떤 것 하나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기도 후에 알게 된다. 그러나 기도 중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약혼자들에게 연애편지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연애편지는 연애편지지요.” 그들이 쓰는 모든 말마디는 사랑을 발산한다. 연애편지는 아주 단순한 말로 쓰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모든 것이다.
좀더 단순하게 정의해 보겠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완전한 내적 침묵, 사랑의 침묵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엄마가 자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엄마의 모습이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엄마가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모습이 얼마나 아기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가!
사랑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의 세 번째 정의는,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께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허용하다':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목표는 언제나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가 승락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사랑의 풍요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물을 긷는 사람이 없어도 샘물은 솟아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물을 길어야 비로소 그 샘물은 ‘우리를 위한 것'이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끊임없는 역사(役事)에 참여하는 것이며 사랑하도록 그분을 놓아드리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기도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사랑으로 친밀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우리 성향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도움이 되도록 하며,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께 대한 우리의 가난한 사랑의 정감어린 교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가난한 사랑은 성령의 무한한 사랑 안에 접목된 후에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게 된다.
푸코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경지를 표현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면서 나를 바라보시고 나는 그분을 사랑하면서 그분을 바라본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에 관하여 언급할 때 불행하게도 용어 사용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두어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성서처럼 그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많은 성인들이 해온 것이다. 사막의 교부들은 이 기도의 전문가들이었고 그 중에 몇몇 성인은 이 기도의 위대한 전파자였다. 이 기도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왔다.
- 단순함의 기도
- 침묵의 기도
- 단순히 바라봄의 기도
- 내적 기도
- 사랑의 기도
- 관상기도
사막의 교부들 외에도 이 기도를 확산시킨 성인들 중에는 아빌라의 성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리지외의 성 데레사, 삼위일체의 복자 엘리사벳 그리고 푸코 신부가 있다. 러시아 수도원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바쳐 왔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이를 '예수의 기도'라고 칭하는데, '머리에서 마음으로' 옮겨가면서 계속 기도하는 것을 일컬어 '예수의 기도'라 불렀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본질적으로 우리 안에 계신 성삼위의 생명에 응답하는 것이다.
"피조물에게 애착하는 것과 하느님이신 빛에 이끌리는 것은 두 가지가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서로간에 어떤 유사점이나 접점이 전혀 없다."
- 십자가의 성 요한, 「가르멜의 산길」에서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지음/ 성바오로딸수도회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