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존재(存在)인가 <2>
<말선18-334> 역사(歷史)를 모르는 사람은 현실(現實)을 알 수 없고, 현실(現實)을 모르는 사람은 미래(未來)를 알 수 없다. 과거(過去)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오늘의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말선5-69> 역사(歷史)를 살펴보면 원시시대(原始時代)에는 모계(母系)를 중심(中心)한 씨족사회(氏族社會)였습니다. 이것은 맨 먼저 해와 즉(卽), 어머니가 사탄을 논의(論意)하던 연고(緣故)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족사회(部族社會)를 거치면서 부계중심(父系中心)한 역사(歷史)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시대(民主主義時代)에 들어와서는 형제(兄弟)를 중심(中心)한 형제주의시대(兄弟主義時代)가 된 것이다.
<말선50-264> ‘나’라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결합체(結合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어머니 아버지의 배후(背後)로 엮어진 인연(因緣)을 이어받은 것이다.
<말선47-214> 여러분들이 선조(先祖)로부터 지금까지 쭉 내려온 여러분의 씨족(氏族)을 대표(代表)하여 세상(世上)에서 맞았다는 것은 억천만금(億千萬金)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 가치(價値)를 두고 보면 이 한국(韓國)땅에 버금가는 다이나몬드를 준다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의 조상(祖上)을 한꺼번에 꿰어 산적(山積)으로 만들어가지고 제사(祭祀)를 드리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알겠어요?
<말선50-261> 자기(自己) 몸(肉)이 이 시대(時代)에 아무개 아들로 태어났지만 ‘나’라는 것은 이 시대(時代)에 평면적(平面的)으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다. 여러분 자체(自體)에는 수(數)많은 선조(先祖)들 즉(卽)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피(血)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한 4 백조(四百兆)가 되는 여러분의 세포(細胞)는 여러분 선조(先祖)들의 세포(細胞)와 연결(連結)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있어서 여러분이 어떠한 성씨(姓氏)의 소성(素性)을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성(素性)을 많이 받고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問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보더라도 그 할아버지가 조씨(趙氏)라면 순(純) 조씨계통(趙氏系統)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박씨(朴氏)라면 그 할아버지에게는 박씨(朴氏)의 소성(素性)을 닮아난 부분(部分)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그재그로 섞여가지고 전부(全部) 종합(綜合)되어 가지고 오늘의 ‘나’라는 한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말선58-304>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自己) 혼자만이 아니라구요. 우주(宇宙)의 공동적(共同的)인 인연(因緣)을 종합(綜合)해가지고 결실체(結實體)로 나타난 것이 인간(人間)이 아니에요. 이런 인간(人間)에게는 만물(萬物)의 종합상(綜合像)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요. 우리의 선조(先祖)로부터 이어받은 수많은 선조(先祖)들의 모든 소성(素性)들이 전부(全部)다 투입(投入)된 거라구요. 김(金)아무개 하면, 그 아무개 하나가 아니라구요. 그에게는 식물(植物), 광물(鑛物), 동물(動物), 모든 만물(萬物)의 형태(形態)가 다 들어가 있다구요. 얼굴은 지금 자기(自己) 얼굴같이 느끼고 있지만, 그 얼굴이 될 때까지는 수만년(數萬年)의 역사(歷史)를 거쳐왔다구요.
수만년(數萬年)에 걸쳐서 선조(先祖)들의 피(血)를 이어받아 가지고 그렇게 생겨난 것이라구요. 그것은 기적적(奇蹟的)인 실체(實體)라구요. 그뿐만 아니라 그 배후(背後)에는 하늘의 인연(因緣)이 따라왔기 때문에 그가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인연(因緣)을 두고 볼 때 무한(無限)한 곡절(曲折)의 인연(因緣)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의 자기(自己)를 이루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됩니다. 만물(萬物)의 모든 관계적(關係的) 존재(存在)가 투입(投入)되고 투영(投影)된 실체(實體)가 자기(自己)라는 것입니다.
부모(父母)의 얼굴을 닮지 않은 어린 사람들은 옛날 선조(先祖)를 닮은 것입니다. 자기(自己) 머리칼이나 세포(細胞) 한 부분(部分)에 자기(自己) 몇 천대(千代) 선조(先祖)의 분자(分子)가 전부(全部)다 투입(投入)돼 있다는 것이다. 우주(宇宙)가 움직여가지고 나 하나 조성(造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歷史)를 움직여 가지고 ‘나’ 하나를 형성(形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게 될 때 ‘나’라는 것은 오늘날 여러분이 제한(制限)된 입장(立場)에서, 상습화(常習化)된 자기(自己) 입장(立場)에서의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공동목적(共同目的)을 대신(代身)할 수 있는 주체적(主體的)인 입장(立場)에서 자아(自我)의 자각(自覺)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선38-254> 사람이 우주(宇宙)에 맞추게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宇宙)가 사람에게 맞추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宇宙)는 나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다.
<말선50-258~260> 타락(墮落)한 세계(世界)를 보면 사탄세계권(世界權)에 있는 사람이 있고, 사탄권(權)과 하늘세계권(世界權)의 중간(中間)에 있는 사람이 있고, 사탄권(權)도 아니요, 중간권(中間權)도 아닌 하늘 권내(權內)에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육적(肉的) 사람이 있고, 마음(心)적 사람이 있고, 영적(靈的)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對)하면 좋은 사람이 있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 있고, 무엇인지 모르게 그냥 싫은 사람이 있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상대(相對)가 무슨 전파(電波)와 같은 파장(波長)으로서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觀點)에서 여러분이 분석(分析)을 잘해야 된다. 어떤 사람을 보아 좋다는 것은 벌써 그가 주체(主體)가 되어 가지고 나는 상대적(相對的) 입장(立場)에서 그와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척 대(對)하면 공연(空然)히 좋다, 그 사람을 처음 대(對)하는데도 마음이 끌려간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自己)보다도 심령기준(心靈基準)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自己)의 선조(先祖)들이 닦아준 기준(基準)보다도 높은 기준(基準)에 있게 될 때는 자연(自然)히 무엇인지 모르게 척 대(對)하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건 왜 그러느냐 하면 그 사람과 내가 인연(因緣)이 맺어지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손해(損害)를 보는 것이 아니라 덕(德)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선50-264> 우연(偶然)히 길거리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언젠가 본 사람이다. 야 저 사람 언젠가 봤는데 생각(生角)이 안나! 하는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인연(因緣)이 있는 사람이다.
<말선50-260~261> 어떤 사람을 척 보면 기분(氣分)이 좋다는 것은 여기에는 반드시 인연(因緣)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처음 만났지만 여러분은 박씨(朴氏)라든가 김씨(金氏)라든가 최씨(崔氏)라든가 조씨(趙氏)라든가 문씨(文氏)라든가 각(各) 성(姓)들로 헤쳐져 있지만, 여러분 선조(先祖) 끼리끼리는 인연(因緣)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過去) 우리 할아버지라든가 할머니들을 조사(照査)해 보면 조씨(趙氏)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김씨(金氏)할머니가 있었고 이렇게 시집(媤執)왔던 할머니들을 전부(全部)다 살펴보면 수(數)많은 성씨(姓氏)가 접근(接近)되었다가 떨어지고 접근(接近)되었다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쭉 선조(先祖)들을 살펴 올라가 보면 한 할아버지로부터 지금의 아버지 대(代)까지 내려오는 데는 수(數)많은 씨족(氏族)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한 것을 알 수 있다. 한 세상(世上) 살다가는 가고 또 한세상(世上) 살다가는 가고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대(對)했는데도 박씨(朴氏)면 박씨(朴氏)를 처음 만났는데도 괜히 좋다 그건 왜 괜히 좋은가 하면 자기선조(自己先祖)들 중(中)에 박씨(朴氏) 할머니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씨(朴氏) 혈통(血統)의 인연(因緣)을 많이 갖게 되면 자연(自然)히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연(因緣)이 전부(全部)다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을 척 대(對)해 가지고 무엇인지 모르게 나쁘다 하는 것은 선조(先祖)들 사이에서 원수(怨讐)가 되어 서로 상충(相衝)이 벌어져 가지고 피해(被害)를 입힌 그런 인연(因緣)의 상대적존재(相對的存在)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발(反撥)이 벌어지는 것이다.
<말선48-304> 사람은 일세기(一世紀 <100년>를 한 주기(週期)로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2000년(年)을 한 주기(週期)로 하고 있습니다. 일생(一生)을 두고 볼 때도 어떤 사람은 지위(地位)가 높고 어떤 사람은 지위(地位)가 낮고 또 저 사람은 잘사는데 왜 나는 못사느냐 하면 불공평(不公平)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공평(不公平)한 것이 아니라 공평(公平)한 것이다. 한 6000년(年)이나 3000년(年)을 한 주기(週期)로 보게 되면 전부 평등(平等)하다 공평(公平)하다는 것이다.
인간(人間)의 눈(目)으로 앞뒤를 보고 전부 같은 줄 알고 평등(平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는 길에 있어서는 평등(平等)이지만 위치(位置)에 있어서는 평등(平等)이 절대(絶對) 있을 수 없다. 다른 의미(意味)에서는 전부(全部) 평등(平等)하지만 위치(位置)는 절대(絶對) 평등(平等)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가려가지고 자기(自己)가 이런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當然)하다고 생각되면 불평(不平)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시대(時代)가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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