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펠.” 26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보낸 ‘지펠’ 냉장고가 사다리차에 실려서 떠나갔다. 마지막으로 ‘지펠’을 안아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깨끗하게 청소해서 보내주었다. 더 이상의 연명 치료는 안 했다. 이제 편안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면 된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오래 함께 지내면 감정이 생겨서 헤어질 때는 늘 서운하다. 나의 삶에 소중한 추억을 한 줄 또 쓰고 있다.
현관문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베란다를 통해서 사다리차를 타고 들어왔다. 직원들이 숙련된 분들이라 생각보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사용하던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물을 전부 꺼내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 냉장고를 주문하면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청소했다. 한꺼번에 하면 힘도 부치고 차분하게 정리가 안 된다. 틈틈이 버릴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과감하게 정리했다. 냉동실 음식도 일일이 손질해서 정리했다. 음식 재료를 쌓아놓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다지 냉동실에 버릴 것은 없었다. 신혼살림처럼 소박한 살림을 꾸리면서 살아간다.
‘지펠’ 냉장고는 사랑스러운 천사 이미지였다면 새로 가족이 된 ‘삼성’ 냉장고는 멋진 청년처럼 듬직하다. 짙은 회색의 쓰리 도어를 장착한 잘생긴 청년이다. 지금도 건장한 남자 셋이랑 살고 있는데 아들 하나 더 생겼다. 참으로 아들 복이 많은 사람이다. “우리 집으로 와줘서 고마워요, 새봄에 우리 가족과 만나서 반갑습니다.” 첫인사를 나누었다. 이제부터 함께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자고 했다. ‘좋으시겠어요?’직원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환하게 웃어준다. “네, 너무 좋아요. 선생님도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생기세요.” 아침부터 애써주신 분들에게 밝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2024년3월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