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도 구원에 관해서 일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거듭나는 일에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도록 인 쳐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또 성령은 우리로 주님과 동행하는 성화의 과정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비춰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도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딤후 3:16). 저자이신 성령께서 성경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고 예수를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많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는데 이는 말씀을 증거하기 위함이지 이적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마리아 사역에서는 이적이 하나도 없었고 오직 말씀만을 전하셨지만 엄청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요4). 반면에 예수님의 고향에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믿는 이가 적었습니다(마11:21). 이적이 우리를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하늘에서 날마다 만나가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만나가 그쳤는데(수5:12) 그 후에 농사지어서 먹는 것들 또한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와 같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성령이 계시고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붙들고 나아가면 문제가 없는데 기적, 방언이나 예언, 질병의 문제, 사업의 문제, 가난의 문제 등 현실적인 피부에 와 닿는 것들을 다루고 기도의 효과를 너무 강조하면 성공과 번영, 세상의 욕망 채움을 신앙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요한일서 2:16). 은사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상관없이 선물에만 매달려 타락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개통은 본문을 인용해 사람들이 믿고 구원받았지만, 성령이 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성령 받기를 기도했더니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혁주의에서는 물 침례나 성령의 침례를 동일시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는데 그때 그들은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말합니다(행19:1-7).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우리에게 침례를 주시는 분입니다(마3:11).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침례는 성령과 불로 임하는 침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령론은 구원과 관여가 되어 있습니다. 거듭남에 관한 핵심은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존재의 변화입니다(요3:6,7). 거듭나는 것은 두 번 태어나는 것으로 영으로 다시 한번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물로 포도주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변화돼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문둥병이 치유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변화되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존재의 변화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가장 큰 역사는 나를 변화시켜 자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요1:12).
존재가 변하면 행동도 변합니다. 그것을 성화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조금씩 변화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드라마틱하게 변화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영적인 입덧이 생깁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맛이 사라지고, 그렇게 재밌던 쇼핑이 재미가 없습니다. 선교가 훨씬 더 재밌고 교회 오는 것이 재밌습니다. 설렁탕이 맛있지만, 양념이나 소금이 없이는 아무 맛도 없습니다. 분리된 것을 합쳐 먹으면 소금의 중요성을 알듯이, 침례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성령의 임재가 없었던 것이 성령이 얼마나 중요한 분인 줄을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16).
예루살렘에 오순절이 있었듯이 사마리아에도 부흥이 왔습니다. 정통성에서 중요한 것이 사도성인데 사도로부터 나온 말씀이 정통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서 사도성을 보장한 것입니다. 유대나 사마리아의 부흥이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날 이후부터 어딜 가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롬10:12). 어딜 가나 예수 이름을 부르면 동일한 성령께서 함께 역사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고전3:16). 예수님을 다 믿는데 어떤 사람은 성령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있고 어떤 사람은 맹숭맹숭한 사람이 있는데 그 차이점이 성령 충만함이라고 말합니다(요3:8). 거듭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 같은 영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에는 각 사람 위에 불같은 성령이 임하셨고, 새 바람이 불었습니다. 영향력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임하시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으로 드러나고 어떤 사람은 조용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내 안에서 내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이고, 능력은 외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고전2:4). 내가 회개하고 주께 돌아와 순종하면 사명을 감당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적으로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것이 회개와 감격의 눈물이고 외적으로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것이 불입니다.
본문에 성령의 역사를 돈 주고 사려 했던 마술사 시몬이 나옵니다. 그도 예수를 믿고 영접했지만 성령의 임재를 돈을 주고 사려다가 혼이 나고는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회개한 사람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구합니다(롬12:1-2).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거기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보고 그들에게 기도하여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눅10:19).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갈 때 성령께서 불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서도 계속 복음을 증거합니다. 우리의 일상도 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린 거듭난 자들이고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과 성령의 침례는 하나입니다. 교회에서의 일이 따로 있고 밖에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 한 덩어리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사업을 하든지 살림을 하든지 교회 일을 하든지 삶이 예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