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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상의 백복령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맥이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곳(북위 37˚31´19″ 동경 129°04′13″)에 솟은 산이다. 옛날에는 나무하러 다니던 초로의 산, 소원을 빌러 다니던 비나리의 산이었으나 지금은 일출 산행지로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명산이다.
바다의 코발트빛과 이 산의 녹색이 같은 빛깔이라 ‘초록은 동색이다’. 일제강점기 때 국민 모두 힘을 합치자는 뜻으로 초록동산이 초록봉(531.4m·草綠峰)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추론해본다.
봄철이면 항상 가뭄에 시달려 툭하면 산불 잘 나기로 유명한 강원도 영동지방에 오랜만에 눈이 왔다. 삼척시에서 등산장비점을 운영하는 이재학씨(팀버라인과 산사람들), 삼척여성산악회 박금순, 정선자, 김순자, 김순녀씨, 태백여성산악회 권영희, 안순란씨, 한국사이버대 사회복지학부 박형순씨가 동해시 공설운동장에 모여 하이파이브를 하고 출발한다.
축구장 철망 울타리를 끼고 나아가다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대나무숲 사이로 언덕을 올라서자 축구경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울퉁불퉁한 흙길을 따라 5분쯤 걷자 동해고속도로가 길을 막는다. 왼쪽으로 내려서서 고속도로 다리 밑으로 빠져 아이골로 든다. 널푸레한 경운기길이다. 운동장을 떠난 지 15분쯤에 바위와 농가 1채, 묘가 보이는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 길로 들자 농가 뒤로 길이 어어져간다. 오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희끗희끗 쌓였던 눈도 맥을 못 춘다. 골짜구니 사면을 타고 구불구불 가는 길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뒤로는 벌써 용정동과 송정동 사이로 쭈빗 얼굴을 내민 바다. 배낭도 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산이름이 왜 초록봉인가요?”
“글쎄요. 어디 멀리서 오신 모양인데 정상까지 1시간이면 돼요.”
동문서답이다. 만나는 사람 족족 물어봐도 초록봉의 유래는 모르겠단다. 물론 동해시청 관광개발과도 모르쇠다.
들머리에서 시눔시눔 걸어 40분여에 계곡 합수점 삼거리에 닿았다. 왼쪽 계곡으로 징검다리를 건너 초록동산자연농원 푯말을 지나 시멘트다리에 이르자 그럴듯한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나타나는 호젓한 계곡에 정자를 짓고 영업하는 ‘초록봉아이골쉼터’에 이른다. 비릿한 토종닭 삶는 냄새의 유혹을 뒤로하자 담벼락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농가 마당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따르던 아이골의 넓은 경운기길을 버리고 작은 계곡과 계곡 사이의 지능선으로 조풋한 길이 이어지며 본격적으로 경사를 높여간다. 큰키나무들은 멀리 혹간씩 보일 뿐 이제 겨우 무릎까지 차는 소나무 묘목이 식재되어 있어 황량한 모래언덕을 보는 것 같다. 올려다뵈는 초록봉 정수리에는 예쁜 명함에 걸맞지 않게 철탑이 여러 기 꽂혀 있어 마음이 애잖타.
멀리 구름띠를 두른 동해바다의 너른 품을 바라보며 애잔한 마음을 다독거려 보며 고도를 높여 보지만 묵호와 북평 시가지의 직사각형 건물들이 뿌연 스모그 속에 솟아있는 것도 또한 그렇다. 줄줄이 있는 묘의 사열을 받으며 올라가자 돌탑과 소나무, 의자와 거울 같은 시설물이 있어 정상으로 착각하기 쉬운 동봉이다.
정상의 조망도 좋겠지만 여기서의 조망도 시원스럽다. 소나무 가지에 앉았던 백설이 바람에 난분분하는 동쪽은 일백팔십도 화각이 모두 바다다. 흰 실구름이 칠해져 있는 하늘 끝으로 눈이 자라는 데까지 볼 수 있는 멍든 바다. 그 넘어 울릉도와 독도가 있을 터인데….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지금까지 보아온 분위기와는 상판 다른 경관이다. 거무퇴퇴한 웅장한 백두대간이 주름병풍을 둘러쳤는데, 번데기 주름은 저리 가라다. 만산천봉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카드섹션을 펼쳤다. 응원대장은 청옥산(1,403.7m), 두타산(1,352.7m), 고적대(1,353.9m), 상월산(970.3m), 석병산(1,055.3m)들이다.
헌데 유별나게 머리에 흰 눈을 쓰고 홀로 있는 산이 있다. 맞다. 한라시멘트에서 디립다 중장비로 긁어댔으니 자병산(872.5m)의 모습이 온전할 리 있나. 나무 한 그루도 없으니 눈이 와도 그냥 밀가루 뒤집어쓴 것 같고 눈이 없을 때도 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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