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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학교 카페에서 펌 했습니다
대면(안면)관계는 반드시 친목관계를 빙자한 '상하위계'질서로 정립되는 한국적 현상에 대한 교육 대안 얘기입니다.
일단, 형님~ 아우님~ 호칭 시작되면 기탄없는 의견개진은 무조건 물건너 가는 겁니다.
자기들 끼리의 친목계가 시작되는 거지요.
소통의 망조가 드는 겁니다.
'친목질' 과 '간증질' 을 온라인에서도 남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왜냐면 저의 오랜 경험으로 보니까,
친목 도모 한답시고 오히려 부지불식간 그들끼리만 통하는 위계의 벽을 만든다는 철칙 때문 입니다. 터줏대감과 안방마님이 생기는 거지요. '골방 (=이너서클)' 이 생기는 겁니다.
情 많은 한국인에게 이런 증상이 특히 심합니다.
情 이 원래는 참~ 좋은 것인데 말입니다.
대화내용의 '맥락'을 보면, 포인트 핵심은 '존칭' 그 자체보다는 '존칭'만 했다하면 반드시 '위계'라는 삼천포(?)로 빠지는 '관계' 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한국에서 존칭이란것이 '호혜적 관계'가 아닌 '상하 위계적 관계' 로 직빵~ 통하는 이유 때문이겠지요
아직 머리가 굳어지기 전인 아이 때부터 [위계관계] 가 아닌 [대등관계]를 잠재의식에 심는다는 훈련인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내용이라서 펌 합니다
■ 아프로만 / 2013-2-24 노하우업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33
원 제목: 공동육아는 높임말을 가르치지 않아요
웃음소리 / 2013.02.12. 느림보학교 - http://cafe.daum.net/slowschool/Bg7E/10
공동육아를 첨 접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부분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높임말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동육아는 높임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 교사들, 아마들(공동육아에서는 아빠엄마를 줄여서 아마라고 부릅니다.) 모두 존칭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존칭이라는 것이 자신들의 원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한 어른이라는 존재, 선생님이라는 존재로 인해 생기는 감정적 거리감을 줄여주기도 하죠. 그래서 아이가 어른들에게 자기 주장이나 의견을 가감없이 풀어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들과 아마들은 각자 자기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MBC의 '아빠 어디가' 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어떤 아이 처럼 누구 아버님~ 이나 삼촌 등의 호칭을 하지 않고 그냥 별명을 부릅니다. 참고로 제 별명은 두꺼비 입니다. 아이들은 저를 보면 두꺼비 안녕~, 나랑 놀아줘~ 라고 말합니다. 아마들이 교사를 부를때도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고 교사의 별명을 부릅니다.물론 교사들도 아마를 부를때 그냥 별명만 부릅니다. 인터넷 동호회 활동을 해보신 분들은 보통 ID에 님자를 붙여 아이디 평등주의라고 해서 누구누구님 ~ 이런 식으로 호칭 하는 것을 경험 해 보셨을 테지요. 공동육아는 거기에 "님"자도 빼버립니다.
우리 어린이집에는 1년이 다 되가는데도 아직 별명에 님자를 붙이는 아빠가 한 분 계십니다.도저히 어석해서 님자를 뺄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직도 뒷풀이 자리에서는 가끔 형님 형님 그럽니다. 사회 활동을 하는데 기본은 위계질서 확립이지요. 그래서 항상 서로 나이를 확인하고 고향을 확인하고 학교를 확인해서 나의 위치를 잡을려고 합니다. 이게 확립되면 형 동생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는 자기들 끼리의 친목계가 시작됩니다. 공동육아에서는 아마들끼리 나이를 잘 모릅니다. 굳이 나이를 알아야될 필요도 없구요. 물론 학교나 현재 직업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도 예전 시골 동네처럼 퇴근 후에 오며 가며 만나서 술도 한잔 하고 이집 저집 놀러가기도 하는등 어느 모임보다도 친목이 더 잘됩니다. 아직도 님자를 빼지 못하는 그 아빠를 보며 사회에서 교육받은 그 관념을 깨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어린이집에서 4년동안 어른들에게 반말(존칭을 하지 않는다는 건데...대게 나쁜 것 같죠? ^^)을 써왔던 아이들이 과연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겠나? 의심이 들겠지요?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잘 적응 합니다. 아이의 것을 어떤 고정된 관념의 틀 속에 넣으려고 하지 않고 크거나 작거나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나중에 자아가 강해져서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제 아이의 경우도 주위 어른들 뿐 아니라 친지들 모두에게 존칭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는 존칭을 해야 된단다 라고 말해주니 자기가 상황에 맞춰서 존칭을 잘 하더군요. 존칭을 하면서도 어른에게 전혀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 참 대견하기도 하답니다. 가끔 너무 겁없이 어른들에게 이야기 할 때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요....ㅎㅎㅎ
시라소니 13.02.13. 03:00
사실 적응이 안돼요ㅋ 조기숙 교수님께 '조 교수 밥먹자ㅋ' 이건 좀ㅋㅋㅋ 교수님 죄송해요ㅋㅋ
┗ 이부영 13.02.13. 05:47
우리 나라 호칭에 이상한 것이 많습니다. 사실 호칭에 '교수'라는 직업명칭이 붙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저더러 '이부영교사님'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냥 모두 '선생님'이면 되는 것이지요.... 또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이상한 호칭이 '**박사'라는 호칭입니다. 학위를 호칭에 붙이는 것이 이상한 노릇이지요. '**석사', '**학사'라고는 부르지 않는데.... 아마 이것은 박사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박사를 딴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인정해주는 의미에서 한 것 같은데, '**박사'라는 호칭은 아무리봐도 이상합니다. 이와같은 예로 우습게도 학교에서 교장과 교감한테 그냥 '선생님'이라고 하면 기분언짢아하는 분 참 많습니다.
┗ 이부영 13.02.13. 17:23
특히 젊은 교사가 '선생님!'하고 부르면 그 이한테 가서 '이제부터 나한테 선생님!하지 말고 꼭 교감(장)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해!'하고 혼내고 지적해 줍니다. 이런 모습은 학교마다 꼭 경험했는데, 그동안 보면 실력있고 인격적인 교감 교장은 어떤 호칭에도 민감하지 않은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무지한 교감과 교장들이 꼭 호칭갖고 화내고 따지더군요.ㅠㅠ
┗ 오드리 13.02.13. 10:07
헉 그런거 같아요.아이들 초딩때 교감샘이 꼭 자신을 '교감이 '"교감샘이' 이렇게 지칭하는 것도 좀 웃겻어요. 여자들이 자기 남편을 존경한(?)나머지 우리 박사님이 우리 원장님이 우리 의원님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듯요.. ㅋ
freebird 13.02.13. 11:58
별명을 붙여서 자연스럽게 부르는거 좋은 것 같아요..최근에 아이 그림책 독서모임을 몇번 갔는데, 거기 선생님들이 모두 별명을 붙여서 아이들 한테, 별명을 부르도록 하더라고요. 같은 맥락인 듯 합니다. 그 선생님 말씀은 가정에서도 별명을 붙여서 해보면 좋다고 하셨어요..좋은 생각입니다 ^^
an-sojeong 13.02.15. 09:24
좋은말씀 잘 들었습니다... 근데요.. 저도 삼실에서 저를 **씨라고 부르는 직원이 있어요.. 근데 은근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나이가 17살 차이나거든요... 미드를 보면서 서로 나이에 상관없이 쿨하게 이름부르는 것을 동경하면서도 내가 겪으니 좀.. 근데요 더 우스운건 그사람이라 더 기분나쁜것 같아요.ㅋㅋ 내가 좋아하는 다른직원이 그러면 괜찮을것 같기도 한데..ㅋㅋ 집에서 가족끼리 별명부르기 한번 해봐야 겠어요.. 재미있을듯..
Anne 13.02.15. 16:44
자아가 강해져서 적응 또한 잘 하는 것 같단 말씀이 다가오네요.
존칭교육 하면 안철수 전후보가 생각나요.. 어머니가 늘 존칭하셨다고.. 그래서 그게 좋은건가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더랬어요. 근데 적용할 생각을 해보면 안철수집은 좀 특별했겠다는 생각이 더 들더군요 ㅎㅎ
존칭교육 않게 된 배경이나 이론서 있으시면 더 알려 주실수 있을까요?
leastory 13.02.16. 13:32
저도 이론서 관심 있어요. 제가 예전에 강의를 우리말로 할 때에는 학생들과 거리감이 많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영어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이 굉장히 활발하더라구요. 존칭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역시 우리 아이들은 저를 Professor Cho라고 부릅니다. 협상 워크샵을 하는데 워크샵의 특징이 상호 참여 토론이라 저를 교수라고 부르지 못하게햇어요. 참여자들이 저에게 권위를 주지 않아야 참여자가 모두 가르칠 수 있거든요. 그래서 KS라고 부르게했어요. 영어인데도 못하더라구요. 아이 때부터 훈련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요?ㅎㅎ
◆ @leastory @audrey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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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관련글:
■ 존칭의 상하위계 친목계 그리고 친목질[느림보학교]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33
■ ┗ 친목질 과 간증질 - 커뮤니티의 암종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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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온라인에서 ..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인용 지칭' 할 때는 "△△△님 이 뭐라 머라 했다 "
님자 붙일 수도 있겠지만
맞 대화 중 상대편 에게는
"△△△님" 보다는
"△△△/ " (슬래시) 가 나을 듯
실명이 아닌 별명 = '회원 닉' 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죠 '대등관계' 하자는 겁니다
그 사람이 오프에서 어떤 나이 / 학력 / 직업 / 지위 = 간담히 정의해서 [개인신상] 으로 인해 구애받게 되는 영향력을 차단하자는 겁니다
'친목질 과 (신상) 간증질' 을 커뮤니티에서 배격하는 근본원인이 이 때문 입니다.
그래서 회원닉을 쓰는 겁니다
" <존칭> 그 자체보다는 <존칭>만 했다하면 반드시 <위계>라는 삼천포(?)로 빠지는 <관계> 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
김동렬 님 언급 자주하는 게 억하심정으로 비춰질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지적할 건 해야죠. 그분이 툭하면 삼천포로 빠지는 핵심적인 원인이 바로 -많은 분들께서 이미 여러번 지적하셨습니다만- <관계>에 집중한다고 하면서도 그 관계 설정 자체가 결국 <위계>로 빠진다는 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 말과 행동이 다르고 소통이 안된다는 뜻입니다. 소통을 말하는데 정작 소통이 안되거든요. 이런 식이어서는 오히려 진보가 발목을 잡히니 문제죠. 한마디로 <위선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는 꼭 진보적 담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죠. 온라인에서 툭하면 일어나는 친목질.. 미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집니다. 누구와 친구관계만 맺었다 하면 궁금해서 못참는 것이.. 성별, 외모, (특히 나이!!), 고향, 사는 지역, 직업(!!), 출신 학교 등등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서로의 공통점과 관계망을 찾아서 어떻게든 편입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페이스북이 대박을 친 핵심 동인이 된다고 아프로만님이 계속 지적했었죠? 그 폐단이 일반화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소립니다. -_-;;
그래서 역설적으로 페북이 트위터보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히트를 좀 덜 쳤죠. 왜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미 일상사거든요.
이런 관계망에 편입되고자 하는 심리..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하고 남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든 위계를 세워 편입하고 의탁하려는 심리.. 이런 심리가 생존의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성화되고 사회적으로 대물림 되는 유전자가 되어 개인 각자에게 깊숙하게 영향을 끼쳐버린 것..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사회의 심각한 병폐 중의 하나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개인과 집단은 서로 구별해줘야 하지만 배타적으로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 받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양자대립 관계는 일원론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와 아프로만님의 준거 척도 = 관점 기준입니다!
위에서 살펴 보았던 편입과 의탁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관성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 참여계의 문제점 -노무현 초인 취급, 안철수 초인 취급, 기준과 관점에 대한 개별적 판단 능력 부족- 이라는 사실을 일전에 제가 통렬하게 지적했었죠?
그렇기 때문에 진보는 절대로 좌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관성을 극복하는 것이 진보다! [아프로만 어록]이 진보의 참 의미일 수 밖에 없는 핵심 이유죠. 좌파든 우파든 관성에 매몰되는 순간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역할 게임, 핑퐁 게임에 빠져서 허송세월하거든요. 그것이 1987년 이후의 대한민국 정치 민주화의 역사입니다. 한마디로 멈춰버린 수레바퀴죠!
노하우업이 진보 정론을 자임할 수 있는 원천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진보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맥점을 먼저 선점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이 맥점을 선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핵심이 바로 아마추어리즘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 부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게 프로의 숙명이거든요. 자 보십시오! 그나마 대한민국 정치판의 대안으로 떠오르던 친노 마저도 이해찬계, 민평련계, 참여계 등등으로 분화된 것도 모자라 그들의 행태 역시 결국 기존의 정치판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친노, 친노!, 노짱 입으로만 열심히 주워 섬기면 뭐합니까? "결국은 다아~ 그렇게 되었어!"로 결론나버리는 걸요! [아프로만 어록]
아프로만 비망록 [2012년 1월 26일]
노무현을 왕따 시키고 가장 괴롭혔던 '계보정치' 그 악령을 명색이 친노 그것도 '성골친노' 라는 것들이 부활시키는 작태를 보면서 말입니다. 이것들이 노무현 뼈를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을 지경입니다. → 요기요기 밑줄 쫙!!!
게시판은 정치판의 축소판 입니다. 정치수준이나 행태라는 것도 말이죠, 게시판 커뮤니티 행태 딱 고수준 절대루 못 벗어나요. 평소에는 참으로 고상하고 심오한 담론을 피력하면 뭐합니까? 커뮤니티 행태가 '무개념' 에다 '악습' 에 절어 있으면 그거 전부 물 말아처먹는 거에요. → 제가 말씀드렸죠? 머리와 가슴이 만나서 '실천'을 해야 진정한 '앎'이라고요!
이런 식의 현상학적 철칙이 100퍼센트 고대~로 맞아 들어가면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이모냥이고 대한민국의 진보 시계는 여전히 멈춰버린 것입니다. 이걸 다시 굴려보겠다고 노무현은 목숨까지 던졌죠.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일전에 한줄 게시판에서 다소 격한 어조로 프로 지향성 노빠 사이트들에 대해 특히 역설적 가식을 초래한다는 우려를 각오하면서까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은 겁니다.
노무현이 물었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원천은 아직은 프로 정치판에서 나오기 힘들다고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죠.
우리 노하우업에서 늘상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원칙과 상식, 기록과 역사, 책임과 신뢰죠? 그러면 이런 것들이 배양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존엄과 자부심입니다!
물론 존엄과 자부심은 우리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동렬 님도 늘상 이야기하던 부분이죠. 그런데 그 존엄이 위계와 결부되면 존엄이 존엄을 배신하는 결과가 나와버립니다. 이래서는 노무현 정신이 대한민국 정치, 대한민국 진보, 대한민국 문화의 방향타가 되어주지 못하는 겁니다.
존엄과 자부심을 훈련하는 도장에서는 절대로 위계 관계가 끼어들면 안됩니다!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하는 겁니다.
대면관계, 오프라인 관계, 사회적 영향력(= 매명지향)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프로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물론 아마추어는 한계가 없느냐? 그렇지 않죠. 왜? 이른바 폐쇄적 관계가 되기 쉽거든요. 코어와 어프로치의 논쟁, 순결성 정합성 완결성 논쟁에 빠지면 끼리끼리의 관계에만 집착하기 쉽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노하우업 역시도 자칫하면 진보신당 꼴을 면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한계와 문제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건 저 역시도 인정합니다. 아프로만님께서 <역설적 가식>을 걱정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죠. 우리끼리만 말 통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프로의 타락(?!)을 계속 지적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는 아마추어리즘 외에는 찾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노하우업이 걷겠다고 자임한 우리의 길, 우리의 결기인 셈이죠.
스타일의 차이는 용인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길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전례와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건강한 비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봐야 한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노하우업과 다른 노빠 사이트 간의 관계성에 대한 기준과 관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던 것이 지난번 한줄 게시판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입니다.
개인과 집단은 다른 방향을 볼 수 밖에 없으며 집단의 정의에 복무하는 것은 그 희생의 결실을 복무자와 복무자 주변이 누리지 못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나와 내 주변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를 감수해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노무현이 죽기 직전에 말한 "원망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역사를 위해 홀연히 몸을 던질 수 있었던 원천인 셈이죠.
역사를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원망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금 인류의 시계, 진보의 시계, 대한민국의 시계는 몇시인가? 우리는 그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노무현이 했던 질문은 그래서 정치를 넘어 인류 전체의 사상과 미래를 여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진보입니다. 노무현이 걸었던 길이 좌도 우도 아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죠..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누구의 편을 드는 자리도 아니고 누구를 미워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미움과 증오를 짊어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른 것입니다. 그게 운명이었으니까요!
아는 분 계시겠지만 상기 본문에 ' leastory ' 닉 = 조기숙 교수님 입니다.
" 워크샵의 특징이 상호 참여 토론이라 저를 교수라고 부르지 못하게햇어요. 참여자들이 저에게 권위를 주지 않아야 참여자가 모두 가르칠 수 있거든요. 그래서 KS라고 부르게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