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안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4월 23일, 제15회 LG배 통합예선 결승 16판이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렸다. 주 관심은 16판의 예선결승 중 9판의 한중전이었다. 결과는 예상보다 참혹했다. 한국이 나오는 결과마다 계속해서 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박지은 9단, 박정상 9단, 조훈현 9단이 겨뤘던 3판이 모두 반집으로 결판나 패배한 것은 아쉽기도 했지만 매우 쓰라렸다.
허영호의 승리는 23일 한-중전의 첫 승리로 의미가 깊었다. 승부의 여파로 얼굴이 붉어진 허영호 7단을 한국기원 3층 사무국에서 인터뷰 했다. 허 7단은 "중국기사와 두는 게 한국의 젊은 기사와 두는 것보다 편하며, 중국의 나이어린 기사들을 이겨 자신감을 쌓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 춘란배 8강에 이어 LG배 통합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들었다. 세계대회에 유독 강해진 것 같다. "세계대회가 더 편하다. 나로선 젊은 한국기사들이 더 피곤하고 까다롭다. 중국기사들하고 두는 게 오히려 더 편하다. 통합예선같이 한꺼번에 몰아서 정해진 일정에 모든 걸 정하는 게 좋은데 국내대회(본선 등)보다 편한면이 있는 것 같다."
- 예선 결승 하루전에는 일본의 미녀기사 스즈키 아유미와 뒀다. 좀 긴장되지 않았나? 인터넷으로 그 판이 선정된 이유는 같이 열리는 한일전의 한국 대국자중 허영호 7단의 랭킹이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구링이가 스즈키에게 진 것을 보고 영웅은 미녀에 약하다고 하지만, 허영호 7단과의 대국을 보면 또 미녀는 '미남'에 약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 건 아니고, 부담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용상으론 약간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판인데, 전체적으론 내가 좋았다. 스즈키가 좀 열을 받았던지 지고 나서 식식대는 것 같았다. 지고 나면 (프로기사)누구나 다 열을 받는다. 특히나 좀 더 잘 두었으면 이겼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더 열을 받는다. 스즈키가 나쁘지 않았으니까, 좀 열을 받았을 수 있다."
- 춘란배에서는 8강에 들었고, LG배도 본선에 들고, 이제 욕심이 날만하다.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는지? "콩지에와의 춘란배 8강전은 올 11월쯤이라 하니까 시간이 많이 남았다. 콩지에 기보만 볼 수는 없는 거고 중국기사 중심으로 기보를 공부하고 있다."
- 허영호 7단이 이겨서 그나마 오늘 한국이 체면을 차린 것 같다. 한중전이 오늘 9판이었는데, 현재 허 7단 빼놓곤 모두 졌다. 다른 판도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아서 1:8로 한국이 참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희성 8단이 씨에허에게 이겨 2:7이 됐다.) 큰 일이 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한-중전의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결과가 그렇게 난다면 이미 큰일이 나긴 난 거다. 이유를 찾자면 이번 예선에서 강동윤,윤준상,원성진 같은 한국의 상위랭커들이 예선결승에 오르기 전 모두 떨어진 탓도 있다. 다른 이유론 중국의 선수층이 한국보다 두텁기 때문이다. 중국은 랭킹 30위권까지 (정상권과의) 실력차이가 별로 없다. 한국은 정상권이 세지만 그 밑으론 중국 정도까진 아닌 것 같다."
- 예선결승까지 별 어려움이 없이 기세를 탄 것 같다. "아니다 연구생 이주형과 붙은 판이 있었는데 정말 어려웠다. 이길 수 없는 판을 억지로 이겼다. 다른 판도 다 안좋았다. 운이 좋은 것이다. 어제바둑(스즈키)도 오늘바둑(중국 치아징)도 운이 좋았다. 예선 대진표를 보곤 구링이와 붙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구링이가 먼저 떨어지고 해서, 내가 속한 조가 좀 더 편한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 평소 공부는?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평소 생활은 아주 단조롭다. 신사동 연구실에 나가기도 하고, 잠실에 있는 양재호 도장에 나가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
- 참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작년에 2장이었는데 올해 한국리그에서 주장(1장, 충북&건국우유팀)을 맡게 됐다. 책임감이 많이 생길 것 같다. " 큰 부담은 없다. 팀원들과 또 다른 팀과도 실력이 다 비슷하다. 또 팀원들이 강하고 조훈현 사범님도 계시니까 좋다. 다만 팀 성적이 안좋게 나오면 부담될 것 같다."
- 국내대회보다 세계대회에 더 강한 면모를 보이는 거 같다. 최철한 9단이 허영호 7단을 보고 "허영호는 큰 거(춘란배 8강)만 챙기고 국내대회(명인전)는 그냥 버려요, 그래서 이 판(물가정보배 예선결승)도 기대해요"라는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하던데. "아~~~놔, 최 9단이 농담을 한 거다. 명인전은 국내대회에서 가장 큰 대회 아닌가, 예선에서 떨어지고 정말 아팠다. 그러고 나서 한국물가정보배 예선결승에 최철한 9단을 만나서 좋았던 판을 역전패했다. 역시나 무척 아팠다. LG배 통합예선에서는 또 지면 안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 LG배 본선에선 "꼭 집어 누구와 겨루고 싶다"는 느낌, 그런 상대가 있나? "음..글쎄, 꼭 콩지에를 미리 만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없다. 오히려 나보다 훨씬 어린 90년대생 신예기사들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다. 퉈지아시, 스위에, 구링이, 저우루이양 등인데 내가 보기엔 구리나 콩지에 등의 정상급 기사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을 만나 이기면 자신감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이번 예선에서 스즈키에게 떨어진 구링이게도 진 적이 없다."
- 본선에 진출한 이상 당연히 세계대회의 목표가 있을 텐데. "작년부터 세계대회와 인연이 있었다. 비씨카드배는 1회와 2회 모두 본선에 들었고, 작년 삼성화재배(8강), LG배도 작년과 올해 모두 본선에 들었다. 또 춘란배도 8강에 올랐고, 이번까지 작년부터 올해까지 총 6번 세계대회 본선에 올랐다. 그런데 힘들게 본선에 올라도 32강이나 16강에서 떨어지면 별로 의미가 크지 않다. 단순하게는 시간연장의 의미랄까? 8강까지는 올라야 (승부의) 큰 의미가 생긴다. 8강에 오르면 그 이후나 목표를 생각할 수 있다."
- 비씨카드배 결승2국 해설을 맡아 줄 수 있겠나? 25일 일요일이다. 이세돌 9단과 창하오 9단의 대국이다. 승부가 어떨 것 같나? "어~, 음... 해설 하겠다. (요즘) 궁하다. 하하. 이세돌 9단이 이길 것 같다. 독기가 있어 보이지 않나? 연승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독기가 더 강해진 것 같다. 창하오는 (잘 두지만) 이세돌에 비해 뭐랄까? 좀 약해 보인다. 이세돌 9단 본인말로는 연승에 신경 안쓴다고 하지만 생각은 하고 있을 거다. 하긴 워낙 뉴스에 많이 나오니까 본인관련 뉴스에도 신경 안쓴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
[취재 : 최병준, 박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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