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씨의 <읽고 싶은 이어령>에서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에 크로노스라는 신이 자식들을 잡아먹는 얘기가 나옵니다.
크로노스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자식을 잡아먹는 마당에 잡아먹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소멸시킵니다.
아무리 단단한 무쇠라도 시간의 송곳니를 감당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시간한테 먹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고 합니다.
시간한테 먹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시간을 먹습니다.
먹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탐스러운 열매가 있을 때, 우리는 우선 그것을 봅니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을 때 손을 들어 그것을 땁니다.
손 안에 있는 열매를 만지는 것만으로 그 아쉬움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먹습니다.
열매가 더 이상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자신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즉 시간을 먹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만지던 바깥 세계를 몸 안의 세계로 끌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 속에 먹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시간을 적극적으로 자기 생명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에 먹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을 먹는 사람들입니다.
요컨대 시간을 적극적으로 보내야 합니다.
시간을 보냈으면 보낸 만큼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지금도 인력거가 다닌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서울 북촌과 서촌, 인사동과 광화문 일대를 운행하는 ‘아띠 인력거’는 우리나라 유일의 인력거업체로 이인재 씨가 창업했습니다.
이인재 씨는 미국 웨슬리안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맥쿼리 증권에 근무하던 ‘엄친아’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마다하고 스스로 인력거꾼이 된 것입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인력거를 끌면서도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사람들한테 자기가 힘들겠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가 그의 책 <내 일>에서 이런 이인재 씨를 언젠가 필리핀 여행에서 만난 뗏목꾼들과 비교해서 얘기합니다.
필리핀 최고의 관광지가 팍상한 폭포입니다.
세계 7대 절경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지옥의 묵시록> <플레툰>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그 팍상한 폭포를 뗏목으로 오르는데 뗏목꾼들이 연신 “힘들어 죽겠다” “배고프다”를 연발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국말로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기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으니까 팁을 좀 생각해 달라는 뜻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즐겁게 하고 어떤 사람은 억지로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보다 즐겁게 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다 압니다.
그러면 신자와 불신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같은 일을 해도 마지못해 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직업윤리에서 다룰 일이지, 성경에서 다룰 내용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즐겁게 일을 하면 하나님이 복을 더 많이 주십니까?
사사기 다음에 나오는 룻기는 마치 동화와 같은 내용입니다.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했는데, 그를 통해서 다윗 가문이 이어집니다.
룻이 오벳을 낳았는데, 나중에 오벳은 이새를 낳습니다.
이새가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룻이 다윗의 증조모가 된 것입니다.
룻이 다윗의 가문을 이으려는 원대한 포부를 마침내 이룬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았을 뿐입니다.
자기한테 주어진 날들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룻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훗날 우리에 대해서도 누군가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개가 이 사실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우리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산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