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행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지역의 역사를 지켜 보아왔다. 임진왜란 때 불바다가 된 경주읍성의 처참함을 보았고, 경주성 전투에서 의병, 승병 등 경주사람들의 용맹도 보았다. 신라유물의 종합 박물관의 성장 과정도 보았고, 암담한 일제 강점기 시절 도둑 맞는 유물 현장도 보았다.
그리고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유물 친구들을 보며 헤어지는 슬픔도 겪었다. 그러면서 금관이나, 성덕대왕신종 등 세계최고의 보물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행운도 안았고, 또 스웨덴의 왕세자와 영친왕, 우리 대통령 등 여러 귀빈과 각계각층의 유명한 인사들도 만났다.
경주사람의 꿋꿋한 기상, 경주의 보배
지금 나이 50세 이상 되는 사람들에겐 경주수학여행 때 석굴암·불국사와 함께 으례 이곳 박물관이 필수 관람코스였다. 많은 학생들과 관람객들에겐 진귀한 신라 유물도 볼거리였지만 이 우람한 은행나무 또한 좋은 구경거리였다. 그들은 모두 지금의 박물관으로 떠났지만, 그는 그대로 남아 옛터를 지키며 전나무, 산수유, 향나무 등 여러 이웃들을 거느리고 정원의 어른으로 좌정하고 있다.
신라친구들이 떠난 텅 빈 자리에는 휑하니 쓸쓸하지만, 은행나무는 외롭진 않다. 도시속의 푸른 공원이요, 시민들의 좋은 쉼터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애들과 함께 가족들이 놀러오고, 점심때면 주변 직장인들이 쉬어가고, 어르신들께서 한나절 놀다 가시기도 한다. 경주를 떠난 사람도 경주에 오는 김에 ‘은행나무가 잘 있는가 ’ 보고 싶어 일부러 들릴만큼 이 나무는 이 고장사람들 마음속에 사랑받는 나무로 우뚝해있는 것이다.
이 은행나무는 시내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는 경주의 명물이요, 터주대감이다. 봄, 여름은 풍성한 녹엽을 이고 창공을 향해 솟아있어 신라후예들의 꿋꿋한 기상으로 보이고, 가을 노랗게 물들어 휘날리는 단풍잎은 경주사람들의 따사하고 여유로운 마음씨로 비친다. 이 은행나무를 가리키어, 경주의 보배라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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