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의 연이은 '무릎팍 도사' 출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문제가 이제서야 화제가 될 정도로 사람들이 추성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추성훈이 일본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것이 2002년 아시안게임이고 보면 불과 6년 전의 사건이고, 그때 이미 일본에서 성장한 추성훈이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 유도계의 심각한 텃세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고 일본으로 돌아가 귀화한 스토리는 충분히 화제가 됐습니다.
어제까지 '추성훈'이었던 선수가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이름으로, 가장 무서운 적이 되어 나타나는 상황을 맞은 건 누가 뭐래도 특정 대학 출신들이 주도하는 한국 유도계의 책임입니다. 그렇다면 추성훈 외에는 그 희생자가 없었을까요. 많았을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이창수와 윤동식을 들 수 있습니다.
이창수는 1991년 8월,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유럽을 통해 귀순한 북한의 간판 유도선수였습니다. 71kg급의 북한유도 간판선수로 89년 세계선수권 대회 동메달, 90년 북경아시아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따낸 경력을 갖췄죠.
그는 월남한 뒤에도 유도를 계속했지만 당연하게도(?) 대표 경력은 없습니다. 당연히 그는 대회가 끝날 때마다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런 불만들은 조용히 묻혔습니다.
혹자는 그가 이미 91년 월남 직전 78kg급으로 승급하며 경기력이 크게 떨어졌고, 국내에는 정훈 등의 강자가 있어 별 기대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죠. 당시에는 북한에서 그렇게 펄펄 날았다는 이창수가 왜 남한에서는 갑자기 죽을 쒔는지 궁금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혹시 또 모릅니다. 이창수의 경우에는 그의 망명으로 펄펄 뛰던 북한 지도부가 '유도는 못 하게 하라'고 남한에 압력을 넣었기 때문인지도. 월남하면서 남북한 사이에 냉기류를 만들어버렸던 황장엽과 비슷한 신세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너무 음모설인가요?)
아무튼 그의 이름은 지금도 가끔씩 한국 유도계의 폐쇄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거론됩니다.
그보다 더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윤동식입니다.
이창수처럼 북한에서 온 것도 아니고, 추성훈처럼 일본에서 온 것도 아니고, 멀쩡히 국내에서 활동하던 윤동식은 1993년에서 94년에 걸쳐 78kg급에서 국제대회 47연승을 기록한 신화적인 선수였습니다. 이 시기의 하이라이트는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입니다.
그에게 암운이 드리운 것은 조인철이라는 라이벌과 맞붙으면서부터였죠. 윤동식도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묘하게도 결정적일 때 기회는 모두 조인철에게 돌아갔습니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81kg 국가대표는 모두 조인철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기대와는 달리 조인철은 결정적일 때 좌절해버렸습니다. 9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땄지만 96년 동메달, 2000년 은메달에 그쳤죠. 71(73)-78(81)kg급이 한국의 주 무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성적입니다.
윤동식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윤동식이 어느 대회든 조인철 대신 대표로 나갔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땄을 거라고 말합니다.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윤동식이 조인철에게 밀리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부상 이후라고 합니다. 아무튼 윤동식 자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은 무엇인가?
▲ 한양대에 진학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거기서 훈련하면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다. 가장 후회되는 일은 올림픽 국가대표 결정 결승전에서 조인철에게 패하고 출전을 포기한 것이다. 내 생각엔 내가 이겼다고 느꼈는데 결과가 달리 나와 경기장에서 나오지 않고 무언의 항쟁을 한 적도 있다. 당시 규정엔 다시 처음부터 올라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포기했다. 그게 가장 후회로 남는다.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275&article_id=0000001721)
윤동식과 추성훈에게 분루를 삼키게 한 인물이 같은 선수라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유도계를 불신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물론 한국 유도계는 아직도 올림픽에서 한국의 희망이고, 이원희와 같은 걸출한 스타를 낳고 있습니다. 그래도 더 좋은 결과를 낳았을 가능성은 항상 있는 법이죠.
사실 추성훈에겐 좀 더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2001년 2개의 국제대회(A급 대회는 아닙니다)에서 우승하고 돌아왔을 때에도 유도계는 추성훈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에 다시 조인철을 내보낸 것이죠. 이때 조인철은 마지막 세계 정상을 따냅니다. 그리고 사실상 은퇴 상태가 되죠.
(자의든 타의든 조인철이 2002년 아시안게임에 다시 나갈 수는 없었을 겁니다. 돈이 안 되는 핸드볼이면 모를까,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의 경우 한 선수가 2번의 올림픽과 1번의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나서 다시 아시안게임을 노린다는 건 한국 여건상 너무도 비상식적인 행동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2002년 아시안게임은 추성훈에게 기회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추성훈은 2001년 세계선수권에 자신을 내보내지 않은 데 대해 무서운 실망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사실 몽골 대회에도 다른 선수를 내보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도 그를 불안하게 했겠죠. 결국 그는 '더 늦기 전에' 일본으로부터의 줄기찬 유혹에 몸을 맡기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추성훈의 사연에 공감하고 그를 동정하는 것은 상황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가끔 보면 엉뚱한 시각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
이건 '무릎팍 도사' 제작진의 심각한 인식 부족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화면상으로도 추성훈의 도복에는 선명한 태극 마크를 볼 수 있습니다. 즉, 저 몽골 대회에 나갔을 때 추성훈은 이미 '한국 국가대표'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젠... 한국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자막이 뜨는 것은 망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2진도 엄연한 국가대표입니다.)
물론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만 합니다. 그럼 그 핵심을 짚어야죠. 추성훈, 윤동식, 조인철이 모두 원했던 것은 96, 2000 올림픽과 98, 2002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는 국가대표였습니다. 군소 대회가 아닌, '메달을 따면 포상금과 지도자 자리가 보장되는 그런 대회'의 국가대표였다는 것이죠.
여기서 얘기가 더 나가면 아마추어 스포츠의 정체성 얘기까지 나올테니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중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국가대표란 태극마크가 상징하는 것 이상으로 생활의 수단이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언론 또한 엉뚱한 닭짓을 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추성훈을 무슨 변절자 취급하는 저런 망발이 다시 되풀이되어선 안되겠죠.
뭐, 추성훈은 지금 격투기 선수로 대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이런 미인 여자친구도 있으니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 셈입니다. 하루 빨리 어두운 과거를 떨치고 대 선수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젠 윤동식이 행복해질 차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나자나,
윤동식과 추성훈이 붙으면 그땐 또 누굴 응원해야 할지. 참...
p.s.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도 추성훈을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지난해 K-1 서울 대회때 추성훈과 데니스강이 붙을 때에는 대체 누구를 응원해야 하나 갈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추성훈을 신화로 만들거나, 완벽한 영웅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장단점이 있고, 실수를 할 때도 있죠. 추성훈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 보다가 얼마전 좀 희한한 과거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뭐 판단은 읽어 보신 분이 할 일입니다. '이게 뭐?'라고 하실 분도 있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분도 있겠죠. 아무튼 링크를 남겨 놓겠습니다. 2003년 오사카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때의 일입니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456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