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가슴
이유경
가슴속 살점을 떼어냈다. 아기를 낳을 때 태반이 떨어져 나간 이후로는 처음이다. 피와 살 조직들이 서걱서걱 떨어져 나갔다. 간호사는 둥둥 유리컵에 떠다니는 내 몸의 일부를 직접 보여주기까지 한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취라는 약품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눈만 질끈 감은 채 간단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고통의 크기가 느껴지는데 마취약 덕분에 직접 느껴야 할 신경세포들이 잠시 의식을 잃고야 만 것이다.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갔다가 유방초음파까지 하면 싸게 해준다는 말에 나는 덥석 그 미끼를 물었다. 암 조직인지 아닌지는 검사를 해 봐야 안다지만 내 한 쪽 가슴에 불규칙한 모양으로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1cm의 혹 2개는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속 시원하게 떼 내고야 말았으니 초음파 1+1 묶음상품을 상술로만 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수술비용도 150만원이 훌쩍 넘건만 그동안 눈물을 머금고 콸콸 쏟아 부었던 사보험이 있었기에 보험사에 큰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보다 10배는 강하게 압박붕대로 상체를 꾹꾹 눌러 둘둘 말았다. 숨 쉬기가 힘들지만 큰 숨이 절로 나온다. 여자는 매달 피를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출산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아기에게 젖을 주고 늙고 쪼그라든 가슴은 불편한 혹들을 마주하고, 탄력을 잃은 자궁도 수명을 다할까봐 전전긍긍한다. 갑상선이며 갱년기며 평생 벗하고 싶지 않은 몸의 언어들이 숱하게 들어선다. 그뿐이겠는가. 어머니들의 마음에 박히는 대못은 빼기도 어렵고 자식들과 빠져나간 자리에는 크고 허전한 구멍만 아스라이 남는다. 기구한 신체구조를 소유한 여성의 생을 톺아본다. 울컥.
나는 수술실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는데 차마 펑펑 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의사는 내가 많이 아픈 줄 알고 잔뜩 울상인 나에게 한마디한다.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가. 찰나의 통증이야 참을 수 있지만 여자로 사는 평생의 시름은 어찌 쉬이 덜어낼 수 있겠는가. 여의사의 손을 잡고 한바탕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훌륭한 수술을 마친 의사는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족한 얼굴로 내일 보자고 한다. 수많은 여자의 가슴을 마주하는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여자의 가슴이 돈으로만 보일까, 볼품없는 폐기물로 볼까. 아니 어쩌면 감수성이 풍부한 의사라면 자녀를 먹이고 살려낸 맑은 강물로 볼지도 모르겠다. 영광의 상흔을 직접 새길 책무에 가슴 떨려 할지도 모르겠다. 신앙이 있는 의사라면 살과 피를 내어준 예수의 십자가를 떠올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여의사의 머릿속을 알 길이 없다. 그저 오늘 끝내야 할 단조로운 노동에 과잉진료처럼 과잉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지도…….
여자의 가슴은 여전히 많은 이들 (특히 남자들)에게 성적인 상징이며 탐닉하고픈 영역이겠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로맨틱 영화인 《노팅힐》(Notting hill)에서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주인공 안나는 윌리엄에게 대략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
“도대체 남자들은 왜 그렇게 여자의 가슴에 집착하죠? 단지 먹이를 주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요.”
가슴에 대한 문학적 표현도 여기저기 넘쳐난다. 산의 아름다운 능선이나 온갖 풍요로운 자연을 표현할 때는 꼭 여자의 가슴에 비유한다.
“ 아침이면 바다에선 수박 냄새가 났고 정오에는 안개에 덮인 채 조용했는데, 조용히 일렁거리는 파도는 흡사 덜 익은 젖가슴 같았다.”(98)_그리스인 조르바
성경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아가서 4:5)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일까, 어미의 가슴에 대한 향수일까, 탐스럽고 아름다움에 대한 절정의 표현일까, 가슴은 특히 남성들에게 왜 그렇게 자주 언급이 되는가. 여성들은 앞서 말한 이 모든 것들을 얼마나 수용하고 공감하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나는 다만 오랜 세월 찬미 받아 온 여자의 가슴을 이제 그만 미화하고 싶을 뿐이다. 둥글고 아름다우라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감추고 숨기라고 조이고 싶지도 않고, 조롱받으라고 내 놓고 싶지도 않다. 가슴에 대한 넘치는 표현들에 이제 더 이상 감동하지도 울컥하지도 않는다. 그저 제 삶을 살라고 다독이고 위로해 주고 싶다.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그 경계에서 가슴은 제자리를 찾아가리라.
산문집 『서른아홉 생의 맛』 2020. 꽃고래책다방
이유경 (수필가)
1981년생. 중앙대 졸업
작문공동체 ‘삼다’ 수료
2018년 울산문학신인상 수필부문
동서문학상 아동문학 맥심상
산문집 『서른아홉 생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