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10일(토) 판문점 견학 유엔사령부 긴급전문 "전면통제"로 정기행사를 아래와 같이 변경 진행합니다.
인천 계양산, 중구봉, 천마산
산행코스 : 계산역→연무정→팔각정→하느재쉼터→계양산→피고개→징매이고개→중구봉→286봉→천마산→흑룡부대→아나지고개→청천농장입구(식사)→갈산역
계양산은 안남산이라고도 불렸다.
'안남산'이란 이름은 안남도호부가 자리잡고 있는 산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이 산을 계양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찍이 이 산에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계수나무라는 '계'와 회양목이라는 '양'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깝게도 계수나무는 모두 멸종되어 볼 수 없고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이 산에는 회양목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 산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회양목은 키가 작고 모양새가 좋아서 관상목으로 각광을 받게 되자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에 의해 마구 훼손되어 아깝게도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이자 주산(主山)이다.
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桂陽山城)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에 해안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景明峴) 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安南山),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 때는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도 하였다.
계양산의 산명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

계양산 중구봉 천마산 역사와 유래
▶ 아나지고개(조광아파트/6번도로) - 인천 서구 가정동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로 하여금 도읍지가 될 만한 곳을 두로 살펴보게 하였다.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 다니던 무학대사는 부평에 이르러 들이 넓고 기름지며 가까이 한강까지 끼고 있으므로 도읍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도읍 터는 백 개의 봉우리를 가져야 하는데 세어 보니 봉우리가 꼭 백 개였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이성계는 부평 땅이 능히 도읍이 될 만한 곳이라 기뻐하며, 주안산(만월산)에 있던 주안사로 무학대사를 보내어 산신께 제사를 지내도록 당부하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개성으로 돌아갔다.뒤에 다시 백관을 이끌고 찾아와 확인하니 백 개였던 봉우리가 아흔 아홉 개밖에 되지 않았다. 한 개의 봉우리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 개의 봉우리는 원통해서 주저앉아 원통이 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99번째 봉우리로 가는 고개는 지금도 아흔 아홉 번째라는 뜻의 '아나지 고개'로 불리고 있다.
▶ 천마산(天馬山/221m) -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서구, 계양구를 연결하여 관통한 산
계양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높이 뭉친 산을 철마산(鐵馬山)이라 부르고 있으나 원래의 이름은 천마산(天馬山)이다. 이 산의 유래는 암석에 말발굽(馬蹄) 이 많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또한 산 계곡을 용마가 나타난 곳이라 부르는데 이 산에서 천마가 나왔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산 기슭에는 고려 때부터 살아 왔다는 합천 이씨와 백천 조씨가 많이 산다. 조선조 중기 이 이씨 문중에는 한 장사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는 태어난 지 일주일만에 걸음을 걸었다 하며 아기의 양어깨에 날개가 달려 하늘을 오르내렸다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장사가 나면 나라님께 반역할까 두려워하여 장사를 없애버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장사의 부모들도 벌벌 떨며 외인이 알기 전에 이 아기장사를 죽이고자 다듬이 돌로 눌려 죽이려 할 때 천마산에서 천마가 나타나 큰 소리를 내어 울며 아기장사의 집을 빙빙 돌다가 아기장사의 목숨이 끊기니 천마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씨 문중에는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나, 그런 후에는 큰 인물도 나지 않았다고 하며, 그래서 이산을 神聖視 하고 天馬山, 馬蹄峯 이라 부르고 있다.
▶ 길마재[鞍峴]
중구봉을 남쪽에서 바라보면 봉우리 두 개가 마치 길마[말 안장; 안·鞍]처럼 보인다고하여 ‘길마재’ 또는 ‘길마재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고개를 ‘되내미고개’라고도 부르고 있다.
▶ 중구봉 -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서구, 계양구를 연결하여 관통한 산
철마산과 계양산 사이에 있는 산으로 고려시대에 불교의 중구절(重九節; 9월 9일) 행사를 치룬 산이라하여 생긴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또 크고 작은 봉우리가 아홉 개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편 계양산과 중구봉 사이에 서곶으로 넘어가는 ‘징맹이고개[景明峴]’가 있어 일명 경명산이라 한다.
▶ 장매이고개(징매이고개/90m) - 인천 서구 공촌동
징매이고개에서 서쪽으로는 인천 서구 공촌동이 있고 동쪽으로는 인천 계양구 계산동이 있으며 연결하는 경명대로의 상부이다. 징매이고개 터널의 모습은 징매이고개에서 계양산 헬기장까지 급경사로 약25분 걸리고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중에 하나다 오름길에 중심성지 안내문이 있다.
▶ 중심성지(衆心城址) - 인천 서구 공촌동
중심성지는 계산동과 공촌동 사이에 있는 경명현에 위치하고 있다. 경명현(속칭 징맹이고개)를 중심으로 동서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던 산성으로 현재는 완전히 없어지고 잔해만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고종3년(1866) 8월에 일어난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양호사건등의 이양선의 침입에 위협을 느끼게되어 왕의 칙령에 의해 고종 20년(1883) 10월 부평부사 박희방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축조하였는데 성문은 지명을 따라 공해루라 하였으며. 성의 이름을 민중들의 마음(心)을 모아 축조하였다하여 중심성지 즉 중심성이라 전한다.
▶ 계양산(桂陽山/395m)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계양구에 위치한 계양산은 인천시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산이다. 진달래가 계양구를 상징하는 꽃이듯이 이산에는 유난히 진달래가 많고, 특히 팔각정 부근에는 무리를 지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막힘없고 서쪽으로 영종도, 강화도등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시내전경이 자리를 잡고, 북쪽으로는 고양시가지가, 남쪽으로는 인천시내가 펼쳐진다. 주능선 등산로는 나무그늘이 없어 여름에는 산행이 적합치 않다. 계양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이다. 1988년 인천시 시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이 산의 동쪽 능선에 있는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삼국 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일명 고산성(古山城)으로 불린다. 현재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
▶ 계양산성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삼국시대때 축조된 석성(石城)으로 일명 고산성(高山城)으로 불린다. 부평의 진산(眞山)인 계양산(394.9m)의 동쪽능선에 축조되어 있다. 축조형식은 지형분류상 산정식(山頂式)에 속하며 방법상으로는 내탁식(內托式)이다. 외벽은 잘 다듬은 돌로 쌓아올리고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割石)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이 성은 석축 둘레가 1,937보(587m)이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볼 때 계양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부평읍의 성곽역할을 담당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계양산성은 계양산 주봉(主峰)에 축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중간지점에 축조되어 있다. 성에 불쑥 튀어나온 능선을 중심으로 축조되어 있어 성내가 사방으로 노출되는 특이한 성이다. 현재 성벽 일부는 남아있으나 대부분이 퇴락하였다. 임진왜란때 명군과 일본군이 이 산성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 굴포천(掘浦川) -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부천시·김포시를 북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강
계양구 산곡동에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 9.3km에 달한다. 이 하천이 굴포천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김포굴포(金浦掘浦)가 시도되었기 때문인데, 김포굴포란 인천쪽 서해안과 김포쪽 한강을 연결하려던 운하계획을 말한다. 이 계획은 고려의 최우(崔瑀) 때부터 시도되던 것으로 조선 중종조에 이르러 김안로에 의해 착공되었다가 원통이 고개에 막혀서 중단된 것이다. 원통이 고개 굴착에 실패한 것이 당시의 기술부족 때문인지 풍수지리 사상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이래 김포굴포에 집착하게 된 것은 삼남지방에서 해로로 운송되던 세곡선들이 강화의 손돌목(孫乭項)에서 자주 전복되었기 때문이다.
















































































화령님 점심 대접 감사합니다.
배터지는집 게장 무한대 너무 감사합니다.
첫댓글 인천의 진산에서의 인증샷 멋져요.
계양산의 정기듬뿍 받으시고
건강한 한해 보내세요.
폴라리스님 감사합니다.
어제 백운에서 계양산행중 등산로에 시산,시사제 홍보물 많이 있길래 누군지 참 부지런하다 햇드니만 이유가 있었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용오름님 그러셨군요
시산제에서 뵙겠습니다.
계양산 중구봉 천마산 역사와 유래 180210
화령님 점심 대접 감사합니다.
배터지는집 게장 무한대 너무 감사합니다.
http://cafe.daum.net/9595kimmini0A0/MZFV/733
갑자기 찾아온 멋진 계양산 산행과 화령님께서 마련해주신 푸짐한 게장.
저에게는 예기치 않은 멋진 주말 선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동행해주시고 시산제 홍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짝 풀린날씨 덕분에 발걸음도 가볍고 기분좋은 선물같은 산행이였습니다
화령님 점심 넘 맛있게 잘먹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새롭게 변화된 계양산길
오랫만에 여유롭게 즐거운 산행길이었습니다
정말 배터지는 무한리필 게장을
대접해주신 화령님 감사드립니다
역사와 유래를 들으며 즐거운 둘레길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