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쌍둥이 적자에 ‘상저하고’마저 불투명… 나라 곳간 비어간다
안용성별 스토리 • 어제 오후 6:53
무역수지가 ‘역대급’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대(對)중국 수출과 반도체 업황에 따른 마이너스가 14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 재정수지도 마이너스 폭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이 없는데, 나라 곳간마저 비어가는 꼴이다. 실제 지난 1분기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의 ‘쌍둥이 적자’ 리스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하반기 경제상황이 개선될 것이란 ‘상저하고’ 기대감마저 약해지고, 재정 적자 규모도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우울한 경제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14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10일까지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감소하며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역작업 분주한 부산항 10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5월 1∼10일 무역수지는 41억6900만달러 적자를 기록, 올해 누적된 무역적자는 총 294억1200만달러로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1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무역수지 적자 행진의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 업황 부진과 대중국 수출 위축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던 반도체 수출이 급락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는 지난달까지 월간 기준 9개월 연속 수출 감소를 기록했고, 이달 들어서도 1년 전보다 29.4% 감소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던 중국 수출도 11개월째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이달 초 기준으로도 대중 수출은 14.7% 감소했다. 앞으로 대중 수출에 대한 전망도 회의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0일 발표한 대중 수출 부진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대중 수출기업의 절반(50.7%)은 ‘올해 들어 대중수출의 위축과 부진을 체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체감 못한다’는 답변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무역수지가 마이너스를 이어가는 가운데 재정도 적자 폭을 키우고 있다. 이날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5월 재정동향’을 보면 올해 들어 3월까지 정부의 총수입은 145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 같은 시점 대비 25조원 감소한 수준이다. 1분기 국세수입이 87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4조원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이 됐다.
1분기 정부의 총지출은 186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조7000억원 감소했다. 이에 따라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1분기 41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보다 8조3000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54조원 적자였다. 이 역시 같은 기간 적자 폭이 8조5000억원 늘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올해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올해 들어 단 석 달 만에 정부가 예상한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전망치에 육박할 만큼 나라살림이 어렵다는 의미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이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상반기 KDI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규철 경제전망실장. 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앞으로 재정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큰 폭의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재정건전성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의 경우 경기 회복기였음에도 관리재정수지는 117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5.4%에 달하는 수준이다. 올해는 세수 여건 악화로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이 예산(GDP 대비 2.6%·58조2000억원)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KDI는 분석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 어려움이 당분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자산시장 역시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아 어느 세목 하나 늘어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증세는 국민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의무지출을 줄이는 방향의 지출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