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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두려워 말라 (마 14:25-29)
본문의 말씀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5천명을 먹인 기적의 사건이 있은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된다면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가난과 질병, 로마로부터 당하는 억압과 고통을 일순간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우리의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무리들이 끈질기게 예수님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매달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시고, 무리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얼마되지 않아 풍랑이 몰아친 것입니다.
그것도 강하게 불어오는 풍랑 앞에 제자들은 속수무책입니다. 이처럼 인생은 가끔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도 인생의 바다에서 풍랑이 일어나 힘들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 속에 휩싸이는 어려움도 있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결단하지 못한 채 어려움에 겪고 있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오는 질병의 파도, 연약함으로 다가온 두려움의 파도, 온갖 세상의 파도에 흔들리는 우리의 믿음의 실체를 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큰 고난이 다가오고, 어떤 이에게는 또 작은 고난이 다가올 수 있어도 고난을 피할 수 있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믿는 우리에게는 이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고 나면 고난이 커다란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편기자가 (시 119:71)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고난 중에 어려움을 당한 분들이 있으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위로함을 얻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고난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습니다(22-24절).
(22-24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사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대단히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 날이 얼마나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메시아 왕국을 이루고 싶어했습니다. 이 놀라운 권세로 로마군대를 물리치고 가난과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 풍성한 메시야왕국을 이루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런 메시야 왕국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흥분됩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하시고 무리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시고, 자신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떠난 제자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저들의 고통을 다 지켜보시고 계셨습니다.
이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중간쯤 들어서 갑자기 바람이 불고 큰 풍랑이 쳐서 저들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됐습니다. 왜 저들에게 풍랑이 다가왔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여 배를 타고 갔는데 왜 풍랑이 불어왔습니까? 여기에 저는 주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흥분해서 이제 머지않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져서 메시야 왕국의 오른편 왼편을 꿈꾸고 부귀영화를 꿈꾸던 저들에게 커다란 풍랑이 다가오자 한 순간에 그런 꿈은 생각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해질 무렵에 출발하여 어둡기 전에 건너가려 했지만 밤새도록 고생만 하고도 아무 진척이 없었습니다. 한계가 부닥쳤습니다.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 중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등 대부분의 제자들이 그곳 갈릴리 지방 출신이거나 그 바다에서 배를 타고 그물질하며 물고기 잡던 어부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그 바다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닥친 바람과 파도앞에 무력하기 그지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여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대단한 것같지만 아닙니다. 한계에 부닥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그때 믿음의 사람은 위를 바라봅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바라고 있던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이제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아마 그 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에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잔잔케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오.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렇게 그 때가 주님을 찿을 때요 주님을 만날 때인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풍랑을 만날 때 먼저 여러분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멀어지지는 않았는가? 내가 내 인생의 길을 주님없이 나 혼자 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유없는 풍랑이 없습니다. 모든 풍랑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우리 믿음이 더욱 자라게 하시려고, 더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풍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설교자 토마스 보스턴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고난의 섭리는 모두 회개하라는 하늘의 부름이다. 고난은 ‘그 자리에서 발길을 멈춰 더 나가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재앙을 모면하라는 하늘의 명령이다”.
요한계시록 2장에서도 에베소 교회를 이렇게 주님이 책망하십니다. (계 2:4,5)“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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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하십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우리가 처음 은혜받을 때 모습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처음 은혜받을 때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이었는지. 처음 은혜받을 때 눈물이 나고 마음이 큰 감동이 임하고, 예배드리는 시간이 너무너무 좋아서 예배시간을 기다리고, 찬송을 불러도 은혜가 되고, 기도를 해도 은혜가 되고, 교회 들어와도 은혜가 되고, 나가도 은혜가 되고 그러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차차 지나가면서 그 감동과 열정이 식어지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신앙생활 속에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때 돌이키라고 풍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나가 복음을 전하고, 우리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우리 모두가 주의 사랑으로 하나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닥친 풍랑으로 인해 다시 한번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내가 너무 세상 욕심에 빠져 있었구나, 아, 나의 능력, 나의 경험, 그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예수님과 함께 했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풍랑의 바다위를 찾아오셨습니다(25-27절).
25-27절,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밤 사경은 새벽 3시부터 6까지입니다. 새벽 동트기 전, 가장 캄캄하고 어두운 때입니다.
밤이 새도록 풍랑과 싸우며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가장 밤이 깊었을 때, 가장 절망이 깊었을 때, 배가 가라앉기 직전에, 바로 그때에 예수님께서 풍랑속에서 바다 위를 걸어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포기하면 안됩니다. 절대로 우리는 지금 힘들다고 어렵다고 두 손을 놓고 무너지면 안 됩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요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 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들려오는 소식은 어두운 소식 뿐입니다. 세계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 각종 전염병에 휩싸여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만이 아닙니다. 미국 외교협회에 공개된 ‘국제분쟁 추적지도’를 보면, 중동·아프리카·동아시아 등에서 진행 중인 주요 분쟁 지역만 무려 34곳에 이른다고 합니다.
특별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을 통해 수십만명이 죽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뿐 만 아닙니다. 이러한 전쟁으로 인해 무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공급이 원할하지 못하니까 물가는 올라가고 정말 세계가 도와야 할 빈민국가들에 대해 집중할 수가 없어 지금 심각한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세계인구가 3억명 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아프리카 곳곳에 수십만명이 각종 질병으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기근의 위협에 처해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세계의 영적 도덕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할정도로 죄악이 관영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밤 4경 즈음, 풍랑이 아주 높아져 이제 기진맥진하여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한 때와 같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풍랑으로 인해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자,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물위를 걸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물위에 움직이며 걷는 것은 분명 바다에서 사는 유령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7절, 다시 보십시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먼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니’라고 하신 말씀은 영어로 ‘I am’이란 말이고, 헬라어 원어로는 에고에미라는 말로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던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야 바로 나, 내가 항상 너희들과 함께 있었던 너희들의 스승 예수란 말이야, 그러니 놀라지 말고 안심해”라는 말입니다.
또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I am that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이야, 뭐가 걱정이냐?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야, 뭐가 걱정이냐? 너희와 항상 함께 하는 내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지 말고 안심하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눈을 뜨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만이 환란 때 도움이 되십니다. 시편 46편 1절로 3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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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환란의 때에, 남들이 그 누구도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 홀로 깊은 절망의 밤을 지날 때, 그 풍랑 위로 주님이 걸어오셔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간절히 찾고 또 찾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42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간절히 주 앞에 부르짖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반드시 주님께서 풍랑 위를 걸어오셔서 여러분을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시 40:1,2)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할렐루야! 풍랑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문제와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주님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안심하라!” “안심하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약속의 말씀 꼭 붙잡고 믿음으로 일어서고 하나님의 평강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베드로도 물위를 걸었습니다(28-33절).
28,29절,“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참 베드로는 성격이 급한 것같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주님, 주님이시면 나를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만 하신다면 이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배에서 뛰어내려 물위를 걸었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므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물위를 걸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술도로도 고칠 수 없는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발을 내딛었는데 물 위를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곧바로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몇m나 걸었으며, 몇 분 동안이나 걸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짧은 순간 물위를 걷다가 곧 바로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지만 여전히 풍랑이 거칠게 몰아치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그에게 두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물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실상일 수 있습니다. “믿습니다!”를 그렇게 다짐하고 돌아서 나가다가는 내 생각이 앞서고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늘 이렇게 연약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고 의심하지 않고 나아가면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예배시간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믿음의 실재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면 그 어떤 풍랑속에서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면 믿음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만 바라봅시다.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만 의뢰하고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에 빠졌습니다. 그때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소리칩니다.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왜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바람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그에게 의심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물에 빠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은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던 큰 믿음도 순간적으로 작아지게 만듭니다.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물위를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므로 믿음이 작아져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시작과 믿음을 완성하실 분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을 보십시오. 32-33절,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예수님과 베드로가 함께 그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비로서 배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풍랑이 몰아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물질 문제 건강문제, 참 힘들고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오늘 내게 다가온 풍랑속에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하나님앞에 나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함으로 풍랑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풍랑에 빠졌습니까? 그때가 주님을 찾을 때요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조금도 주저 하지말고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내미신 손을 붙잡고 믿음으로 함께 동행할 때 풍랑이 잔잔해지고 하나님의 더 깊은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진정한 제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