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내적 저항력 조용기 목사
성경본문 : 잠언 4: 23
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인류 역사상 중세 때에 만연한 천연두로 말미암아 온 세계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의사 ‘제너’의 종두법으로 인류는 살고 천연두는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육체의 저항력인 면역만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의 저항력, 마음의 면역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마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원수들이 많기 때문에 외적인 저항력만 가진다고 인생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적인 면역과 저항력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1. 타락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죄가 들어오면 모든 것을 부패시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개인이나 가정 사회, 단체나 국가 조직에도 죄가 들어와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탐욕은 그 속에 독버섯처럼 피어납니다. 탐욕을 통해서 사람들은 죄를 짓고 죄로 말미암아 부패와 사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을 갖고 있지 아니하면 모든 사람은 죄의 포로가 됩니다.
인도의 한 할머니가 생후 3개월된 손자를 단돈 2700루피(미화 60달러)에 팔아넘긴 사실이 지난 1월 9일 언론에 보도 되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너무 가난해서 도저히 아이를 기를수 없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고백했습니다. 최근에도 젊은 여성이 자신이 키우던 4살짜리 아이가 짐이 된다고 추운 겨울에 공원에 갖다 내버리다가 발각이 되어 당국에 벌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 마음이 부패해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도 얼마든지 자행합니다. 불의, 추악, 저주, 절망, 고통이 꽉 들어찬 세상이 된 것은 바로 이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없는 세상은 모두 다 거짓되고 헛된 것으로 꽉들어차 있습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없는 세상에는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는 일은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의 탐심의 노예가 되도록 만들어서 탐욕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심신의 연약함과 병이라는 적이 우리 주위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소리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습니다. 한해동안 우울증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5000명이나 되는데 이들 대부분이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대학교수, 교장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인 밀턴은 “마음은 천국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마음으로 몸을 치유하기’라는 기사에 의하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골다공증, 심장병, 당뇨병, 암, 치매까지 걸리게 되고 만병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있으면 만병을 물리칠수 있지만 마음이 병들면 온 육신에 병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정신과 전문의사 드와이트 에반스 교수는 우울증이 암, 에이즈, 심장병, 당뇨, 골다공증, 간질, 발작, 알츠하이머, 파킨슨씨병 등 온갖 질병의 직접적인 연 관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이처럼 심신의 연약과 그로인 한 병이 도처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환경적인 저주와 가난이란 생활고의 적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이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이란 적 또한 늘 우리곁에 있습니다. 앞을 내다봐도 희망이 없고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린 삶을 산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마음에 공허가 날이갈 수록 깊어지고 황무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잠언 1장 27절에는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광풍같이 오고 재앙이 폭풍같이 오고 근심과 슬픔이 우리의 생활을 떠나지 않으니 이러한 적들을 우리가 이길수 있는 힘이 있겠습니까? 현재 지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막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막화는 이미 100여 개의 나라에서 10억명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들중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2억 5000만명은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유엔은 올해를 사막과 사막화의 해로 정하고 사막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지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건조지대가 지금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경우, 인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총회에서 “사막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위급한 환경재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막화는 토지의 생산능력을 빠르게 무너뜨려 많은 양의 경작지를 불모지로 만들어 식량난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환경난민을 낳기도 합니다. 이미 아프리카에 1억 3500만명이 사막화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이외에 아라비아반도, 멕시코, 칠레, 중국, 인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등 여러나라가 사막화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접한 중국이 급속도로 사막화되고 있기 때문에 봄철이 되면 황사현상이 우리 국토를 덮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황사현상으로 말미암아 호흡기질환 등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합니다. 예전에는 사흘 정도 황사현상이 있었는데 2005년에는 13일로 그 날수가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점점 더 심해질 위협적인 요소입니다. 아예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화되어 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이상기후와 지진, 태풍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사막화로 지구는 점점 살기 어려운 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살아 가는 환경 자체가 저주를 받아 어려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재앙입니다.
욥기 14장 10절에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라고 증거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는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고 죽음은 우리 인생을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곳으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고 죽음은 우리 인생을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곳으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생하기를 원합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불로장생에 집착해서 중국의 진시황은 많은 사람을 세계 여러 곳에 보내어 장생할수 있는 약을 구했던 것을 우리가 잘알고 있습니다.
도교에는 초목과 광물을 재료로 단약을 만들어 먹어 영생하려고 한적도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될수록 이런 꿈은 더욱 커져서 요사이는 불치병이 든 사람들이 장차 과학이 발달되면 그 병을 고칠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원해서 냉동인간 되기를 신청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급속도로 냉각시켜서 사람이 완전한 얼음덩어리가 되어 미래에 과학이 발달되어 그 병을 고치는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냉동인간으로 있다가 나중에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건강하고 오래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지만 사방에 사망으로 둘러쌓여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적들이 둘러쌓여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극복하겠습니까? 내부 저항력을 가져야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저항력이 없으면 세상의 노예가 되고 질병에 짓밟히고 저주와 가난에 끌려 다니고 좌절과 절망에 무릎을 꿇고 사망의 세력에 절망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육체의 면역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의 저항력, 마음의 면역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2.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성경은 우리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는데 신분이 뚜렷하게 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원수들을 저항할 수 있는 마음의 저항력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의롭게 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씻음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영광을 얻은 신분이 된 것입니다. 내가 용서받고 의인이 된 신분을 알면 죄가 들어와서 유혹할 때 당당히 저항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방된 사람이기 때문에 마귀가 아무리 죄를 가지고 와도 우리는 저항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인이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대전교도소에 갇히게 되었을 때 일본의 한 신문기자가 면회를 와서 선생을 회유하기 위해서 질문합니다. “선생님, 인도의 간디가 말하길‘사람이 태어났으면 100년은 살아야 된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앞으로 몇 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말은 좀더 오래살고 싶으면 감옥에서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일제에 순종해서 여생을 평안히 보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자 이상재 선생이 기자를 향해서 답하기를,“왜 내가 100년만 살겠나? 영원히 살아야하네”라고 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 진 기자에게 이상재 선생은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게 되고 이에 일본 신문기자는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쳐 버렸다는 일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영생 할수 있다는 진리 앞에 우리는 당당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믿음을 가졌고 동시에 사망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면 이 세상에 다가오는 폭풍우를 이길수 있는 저항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병치료 받고 축복받고 영생복락 얻은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정체성이 확립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여기에 굳세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건강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병이 다가와도 말씀에 근거해서 건강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주차한 질병에 저항하고 건강한 신분을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가져온 삼대재앙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통해 삼중축복을 받았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재앙, 저주의 재앙, 질병과 멸망의 재앙에서 예수님이 건져주시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소아마비 백신을 맞으면 면역되어 소아마비를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다가오는 수많은 폭풍우와 어려움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면역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내가 어떠한 신분을 가졌으며 어떠한 자화상을 가졌으며 어떠한 직위를 가진 것을 확실히 깨달아 알고 믿고 받아들이면 면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세상의 흑암의 폭풍우도 능히 저항해 이길 수 있는 백전백승의 영적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에 굳게 서서 종의 멍에를 거부하라.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새로운 신분에 따라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패배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십자가를 통하여 변화된 새로운 신분과 자화상과 지위에 따라 바꾸어 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새로운 신분을 좇아 소망있고 긍정적인 꿈을 가져야 됩니다. 한겨울 추위에서도 마음속에 봄을 꿈꿀 수 있는 것처럼 비록 환경이 춥고 괴로워도 십자가를 통하여 주신 새롭고 따뜻한 계절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분을 꿈꾸고 새로운 자화상을 꿈꾸고 새로운 지위를 꿈꾸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꿈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봄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인생의 봄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따뜻한 봄을 꿈꾸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 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신분, 새로운 자화상, 새로운 지위라는 아름다운 봄의 꿈을 꾸어야 할 것입니다
.
영국의 존 메이저 수상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6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새벽부터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반죽을 했습니다. 2시간의 새벽노동을 마치고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대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가 수상이 되자 기자들은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었습니다. 이 말에 메이저 수상은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항상 희망을 갖고 일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다 없애 버렸습니다. 하늘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속에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서도 십자가 밑에 있으면 꿈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학력과 직장, 재산과 인물을 떠나서 십자가 밑에 있으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됩니다. 새로운 자화상을 얻을 수 있으면 새로운 지위를 얻고 당당하게 하나님과 더불어 인생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꿈을 가진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입을 넓게 열면 하나님께서 채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꿈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채우시는 것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신분을 확신하고 하나님이 그 신분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로 나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의로운 신분을 가졌으니 의롭게 하시옵소서. 거룩한 신분을 가졌으니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치료받은 신분을 가졌으니 치료하옵소서. 축복받은 신분을 가졌으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영생복락을 얻은 신분을 가졌으니 천국에 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믿은대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는 택함받은 사람이니 더욱 마음에 확신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왕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거룩한 나라니 하나님 백성답게 살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니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새로운 신분을 좇아서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분은 하나님이 주신 신분이므로 하나님의 뜻과 의지입니다. 이 뜻에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십자가를 통해서 너에게 선물로 준것이니 이루어주리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새로운 신분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실히 믿고 의심하고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신분에 어긋나는 비관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뱉은 말이 씨가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3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증거하고 있듯이 말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믿는자의 입술을 통해 고백되어진 말은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데이비드 리버만은 ‘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라는 책에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일 다른 위치에 있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면 인생도 부정적으로 되고 생각이 패배적인 생각이 되면 인생도 패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자화상과 새로운 지위에 따라 바꾸면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하나님 뜻대로 새롭게 바뀝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패배적인 생각을 바꿔야 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는 말씀에 서서 변화된 나의 신분을 굳건히 고수하며 저항을 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6장 2절에도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로 인해 인생의 대소사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할 때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신분을 따라 말하고 자화상을 따라 말하고 새로운 지위를 따라서 말해야 합니다.
육체적인 저항력을 가지면 여러가지 질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적 저항력을 가지면 삶의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저항력은 과학의 힘으로 면역체를 만들어 얻을수 있습니다. 내적인 저항력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믿고 받아들이면 내적인 저항력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고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꿈, 자화상을 가지고 새로운 지위를 얻은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고 원수가 오면 단호하게 저항 하고 물리치며 승리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지켜야 산다! (잠 4:23)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세상도 아름답고 우리 인생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건강은 우리 생의 전부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물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은 것을 잃은 것, 건강을 잃은 것은 전부를 잃은 것." 건강을 잃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려고 건강에 투자를 많이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먹는 것에도 투자를 하고, 운동을 하고, 갖은 노력을 다 해서 자기 건강 관리에 최선을 다합니다.
건강은 육체적인 건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은 마음의 건강입니다. 모든 병은 다 마음에서 근거합니다. 암도 마음에서 발병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으면 그때부터 육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면 모든 것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어디에 있나?"라고 묻는다면 인간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성, 감성, 의지 이러한 기능들을 인격적 요소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곧 마음의 기능입니다. 마음에서 알고, 느끼고, 결단하는 모든 인간의 요소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선과 악이 다 창출되는 곳이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바르게 지키고 사는 것이 인격자의 최대의 과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보화가 다 어디에 있나' 할 때 사람들은 밖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은 다 마음에 담아 주셨습니다. 행복도 마음에서 찾아야 되고, 성공도 마음에서 찾아야 되며, 모든 선도,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도 마음에서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에 이끌어 가셔서 최초에 하신 명령은 선악과를 다스리며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동산에 이끌어 가시면서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다스리며 지키게 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담 외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뭘 다스리고 보호할 필요가 없는데 선악과를 다스리며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선악과를 손대려고 하는 유혹에서 네 마음을 지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여기에서 실패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게 "이 실과를 먹어도 죽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유혹할 때 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한 채 마귀의 유혹에 넘어져서 최초에 실패하는 타락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마음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되며, 사람됨의 인격도 마음으로부터 형성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도 그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중심을 본다는 말은 마음을 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로 인정했습니다.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
다윗을 만났을 때 하나님 마음에 꼭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을 쓸 때 외모를 먼저 봅니다. 사람의 학력, 재능, 건강 이런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 때문에 다윗을 택하셨고 사울의 마음 때문에 사울을 폐하셨습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범죄할 때 그 마음이 아비의 마음 같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왕상 11:4)
'그 아비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 솔로몬을 평가할 때 솔로몬의 마음이 아비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인정해야 됩니다. '나는 참 마음이 착하다.'
이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축복을 말할 때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것, 손으로 잡히는 것을 말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때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타락은 마음의 타락이며 마음의 실패였습니다. 다윗은 마음의 중요성을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솔로몬은 살아온 생애를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잠언서, 아가서,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우리에게 중대한 교훈을 줍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솔로몬은 인간의 모든 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이 세상의 부요를 다 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서 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마음을 잘 지켜야 건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의 건강도 마음에서, 영혼의 건강도 마음에서, 정신의 건강도 마음에서 그리고 생활의 건강, 인격의 건강, 삶의 모든 건강이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믿음으로 지키는 마음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우주보다 더 넓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하늘을 뚫고 이 지구 끝을 달리고 있으며 어느 깊은 공간이라도 우리 마음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마음을 주신 하나님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능력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지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다스리며 지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며 지킵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간직할 때는 모든 것이 지켜집니다.
마음은 밭과 같아서 무엇을 뿌리느냐에 따라서 열매를 거둡니다. 밭에 아무것도 뿌리지 아니하면 빈 밭 같아도 계속해서 잡초가 우거지게 됩니다. 쓴 뿌리가 뻗어 내립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세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형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내버려두면 마음이 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나쁜 것으로 얼마든지 채울 수 있습니다. 마치 밭에 잡초가 우거지듯이 채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고 하지만 비워지지 않습니다. 뭘 채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야 됩니다.
밭에 알곡을 심어놓으면 알곡이 자라면서 잡초는 자연히 자라지 못합니다. 이와같이 마음을 비운다고 아무리 산속에 들어가서 깊은 명상에 잠긴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잡념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한 수도사가 자기 스승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스승님, 제가 세속을 떠나 수도하러 들어왔는데 세속의 생각 때문에 잠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솥 안에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끊임없이 파리가 날아든다. 그래서 솥에 파리가 날아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솥 안을 뜨겁게 달궈야 한다. 뜨겁게 달구면 파리가 날아오지 않는다." "선생님, 무슨 말씀입니까?" "네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달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지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지십시오.
그래야 파리같은 사탄의 유혹들이 내 심령을 침투하지 않습니다. 바쁜 꿀벌은 근심할 틈이 없다는 말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에게는 사탄이 틈탈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됩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4-7)
우리가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터넷 때문에 인생 파탄에 빠진 아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아이들을 뭘로 지키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지켜야 됩니다.
저는 가끔 훌륭한 부모들을 봅니다. 광주나 부산 같은데서 아이들을 서울로 유학 보낼 때 그 아이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부모가 직접 자녀를 교회에 데리고 와서 목사에게 부탁을 합니다.
"목사님, 제 아들 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얼마나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입니까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데리고 와서 과외 선생님에게 부탁합니다. 레슨 선생님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을 그에게 주어야 할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종에게는 무관심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믿음으로 길러야 됩니다.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한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의 생각에 따라 결정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잠 23: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영의 생각이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생각입니다.
둘째, 사랑으로 지키는 마음
우리의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은 사랑의 마음을 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사랑으로 인간 관계를 형성해 가야 됩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언제나 우리 마음에 사랑을 담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마음을 관리해야 됩니다.
어떻게 관리해야 됩니까 사랑으로 관리해야 됩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14:30)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우리의 마음을 시기, 질투, 근심, 불안, 이런 것들이 차지하게 되면 몸에 병이 듭니다.
우리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사랑과 감사로 채워야 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마음은 위대한 의사"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의사가 자기 병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건강하게 지키는 유일한 처방이 마음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가정에 어떤 환란, 자녀 문제가 파도처럼 엄습해 올 때 우리 마음 속에 감사를 담아야 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좋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언제나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인생을 감사로 채우는 자입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근심이 올 때는 기도로 근심을 물리쳐야 됩니다. 마음이 우울해지려고 할 때마다 감사를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감사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행해지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불평하면 된다.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감사로 채우면 된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이 건강해져서 그것이 육체의 건강을 만들어냅니다.
이땅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면 천국이요,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채우면 자신을 병들게 해서 세상을 온통 어둡게 만들기 때문에 지옥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채우십시오. 기뻐하십시오. "기뻐할 것이 있어야 기뻐하죠." 이것은 명령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기쁘게 살려고 하면 기뻐집니다. 감사하려고 하면 감사가 넘칩니다.
"마음을 지키라"는 말은 불평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탄식하는 마음을 버리고 감사로 채우라는 말입니다.
셋째, 소망으로 지키는 마음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해서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위엣 것을 생각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2).
우리는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위엣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7) 이것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쳐를 삼으시고 안주하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심는 대로 우리 마음에 거둬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저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시인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송명희입니다. 그는 1963년에 태어났습니다. 의사의 부주의로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드려 소뇌에 상처를 입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울지도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기형아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 아이를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일곱 살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머리에 힘이 없기 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느 한 날도 빠지지 않고 집회를 다니면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가 열여섯 살 되던 해에 걷지를 못하기 때문에 기어서 강단 밑에 가서 "하나님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모든 것을 다 드릴께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반짝이는 빛이 올라가고 밝은 빛이 비취면서 두루마리같은 것이 눈앞에서 양쪽으로 펼쳐지고 이상한 글자가 그 앞에 적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하나님이 그를 감동해서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열어 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눈을 열어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열어 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귀를 열어주소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열어 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마음을 열어주소서.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열어 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입을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전할 수 있도록
그는 연희동에 살았는데 집 주인이 집을 판다고 나가라고 해서 사글세를 얻어서 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는 그때 너무 많은 충격을 받고 울었습니다. 울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 친구도 없고, 집도 없고, 휠체어도 없어요. 이제 나와 같이 놀아주던 이웃집 언니도 이사 가면 오지 않을테니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그때 주님께서 이런 시를 불러주면서 쓰라고 하더랍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이 가진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았으며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그는 너무도 엉뚱한 말씀이라 기가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때 강력하게 "받아 써라" 해서 그대로 받아 쓴 것이 바로 "나"라는 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부르짖었으나 공평하신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습니다. 남이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남이 받지 못한 것을 받았습니다.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마음으로 눈을 열고 하늘의 소망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습니다. 누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딸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의 육신은 공평하지 못한 하나님을 원망할 정도로 질그릇 같이 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음에 엄청난 보화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비추었습니다. 나같은 약한 자, 나같은 소아마비 장애자도 이런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노라고 세계를 향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 환경이 열악하다고 탄식하십니까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하나님은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늘 문을 여십니다. "열어주소서. 눈을 열어주소서. 귀를 열어주소서. 입을 열어주소서." 마음 문을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