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아르네 네스
요즘 내 마음에서 맴도는 두 사람이다. 4,5월은 두 사람을 읽으며 두 사람을 생각하고 싶다. 에티카를 쓴 스피노자는 유태인이면서 유태교에 파문당하고 캘빈파로부터도 탄압을 받으며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철학자이다. 존재 그 자체의 내재적 신관은 사람들은 범신론이라 부르지만 스피노자의 신관은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자 통찰임에 틀림없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니 파문과 더불어 유산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친구와 후원자들의 연금에 의지해 살았다. 연금의 대부분을 책을 사는 데 쓰고 삶은 극히 검소했다.
아르네 네스는 심층생태학을 주창하고 정립한 노르웨이의 생태철학자이다. 네스는 스피노자와 간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는다. 나는 네스와 친근감을 느낀다. 자연 그 자체의 시각을 그는 알고 있다. 그것은 스피노자가 인식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20대 후반 나는 산을 내 가슴에 앉히고 아이들을 만났던 적이 있다. 외로워서 자주 보던 산이 어느새 내 가슴에 들어와 앉았다. 멀리 보이는 모악산은 내 마음의 산이었고 산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것은 그냥 있음의 변함없는 힘인 것 같다.
네스는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의 산악에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세상과 놔눴다. 아르네 네스의 책이 번역되었더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스피노자와 아르네 네스는 네게 또다른 현세의 성자같다. 멀고 어려운 성자가 아니라 가깝고 친근한 이웃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