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3 - 팔일(八佾) -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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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자하가 묻기를, 《시경》에 “‘곱게 웃으니 보조개가 예쁘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반짝이네. 흰 비단에 채색을 하였구나.’라 한 것은 무엇을 일컬은 것입니까?”라고 했다.
○ 此逸詩也. 倩, 好口輔也. 盼, 目黑白分也. 素, 粉地, 畫之質也. 絢, 采色, 畫之飾也. 言人有此倩盼之美質, 而又加以華采之飾, 如有素地而加采色也. 子夏疑其反謂以素爲飾, 故問之. 이것은 잃어버린 시다. 倩(천)은 예쁜 보조개다. 盼(반)은 눈이 검은 것과 하얀 것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말이다. 素란 바닥을 하얗게 칠하는 것으로서 그림의 바탕이다. 絢(현)은 채색으로서 그림의 장식이다. 사람이 이러한 보조개와 뚜렷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이 있고 나서, 다시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을 더하는 것이 마치 바탕을 하얗게 칠한 뒤에 채색을 더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자하는 그것이 거꾸로 하얗게 바탕을 칠하는 것을 장식으로 삼는다고 말하였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물은 것이다. 或謂卽衛風碩人所云 素以爲絢兮一句 夫子所刪也 朱子曰 此句最有意義 夫子方有取焉而反見刪 何哉 且碩人四章 章皆七句 不應此章獨多一句而見刪 必別自一詩而今逸矣 혹자는 시경 위풍 석인에서 말한 바에 나아가 ‘素以爲絢兮’의 한 구절을 공자께서 刪削하신 것이라고 말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이 구절이 제일 큰 의의가 있기에, 공자께서 바야흐로 이것을 취하셨음에도, 도리어 이것이 삭제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게다가 석인 4장은 장마다 모두 7구절인데, 이 장에서만 유독 한 구절이 더 많아서 삭제를 당했다는 것은 마땅치 않으니, 반드시 스스로 별도의 하나의 시였을 터였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口輔面頰也 易咸其輔 左傳輔車相依 신안진씨가 말하길, “口輔는 얼굴의 뺨이다. 주역에서 그 광대뼈를 감동시킨다고 하였고, 좌전에서는 광대뼈와 잇몸이 서로 의지한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詩無此句意 但下文素以爲絢中涵此意 신안진씨가 말하길, “시에 이 구절의 뜻이 없지만, 아랫글의 ‘素以爲絢’ 가운데에는 이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巧笑美目二句 賦也 素以爲絢一句 比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巧笑와 美目의 2구절은 賦이고, 素以爲絢의 1구절은 比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賦者 敷陳其事而直言之者也 比者 以彼物比此物也 興者 先言他物以引起所咏之同也 賦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고, 比는 이것으로써 저것을 비유하는 것이며, 興은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같은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
2 | 子曰 繪事後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림을 그리는 것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 繪事, 繪畫之事也. 後素, 後於素也. 「考工記」曰: “繪畫之事後素功.” 謂先以粉地爲質, 而後施五采, 猶人有美質, 然後可加文飾. 繪事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後素란 바탕 칠하는 것 뒤에 한다는 것이다. 고공기에 이르길,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 칠하는 공력(공정)을 한 뒤에 한다고 하였다. 먼저 바닥을 하얗게 분칠함으로써 바탕을 삼고 그 후에 오채색을 베풀어 칠하는 것이 마치 사람이 아름다운 바탕이 있은 연후에 문식을 더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周禮冬官考工記 畫繢之事 靑與赤謂之文 赤與白謂之章 白與黑謂之黼 黑與靑謂之黻 五彩備謂之繡 凡畫繢之事 後素功 주례 동관 고공기에, 그림 그리고 수놓는 일에서 푸른색과 빨간색을 일컬어 文이라고 말하고, 빨간색과 하얀색을 일컬어 章이라고 하며, 하얀색과 검정색을 일컬어 黼(보)라고 하고, 검정색과 파란색을 일컬어 黻(불)이라 말하며, 오채색이 갖추어진 것은 일컬어 繡(수)라고 말하는데, 무릇 그림 그리는 일과 수놓는 일은 바탕을 희게 하는 공을 들인 후에 한다고 하였다.
申解逸詩意 잃어버린 시의 뜻을 거듭(申) 풀이하였다. |
3 |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말하기를, “ 바탕인 충신(忠信)이 먼저이고, 예(禮)가 뒤따른다는 말씀이군요.”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일으키는 자는 상(자하)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만하구나.“라고 하셨다.
禮必以忠信爲質, 猶繪事必以粉素爲先. 起, 猶發也. 起予, 言能起發我之志意. 謝氏曰: “子貢因論學而知詩, 子夏因論詩而知學, 故皆可與言詩.” 예도 반드시 忠과 信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림 그리는 일이 반드시 바탕을 하얗게 칠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으로 삼는 것과 같다. 起는 發과 같다. 起予란 능히 내 뜻과 생각을 일으켜 발흥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씨가 말하길, “자공은 배움을 논함으로 인해 시를 알았고, 자하는 시를 논함으로 인해서 배움을 알았는데, 그러므로 모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起予者 謂孔子言繪事後素之時 未思量到禮後乎處 而子夏首以爲言 正所以起發夫子之意 非謂夫子不能而子夏能之以敎夫子也 주자가 말하길, “나를 일으켰다고 하는 것은, 공자께서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희게 칠하는 것 이후에 한다고 말했을 때, 미처 禮도 후에 하는 것이라는 부분까지 생각하여 헤아리지 못하였지만, 자하가 이로써 처음 말하자, 바로 공자님을 일으켜 발흥시켰다는 뜻을 말한 것이지, 공자께서는 할 수 없었는데, 자하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자님을 가르쳤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聖人豈必待學者之言而後有所起發 蓋聖人胸中包藏許多道理 若無人叩擊 則無由發揮於外 一番說起 則一番精神也 성인께서 어찌 반드시 배우는 자의 말을 기다린 후에서야 起發됨이 있겠는가? 대체로 성인께서는 흉중에 수많은 이치를 숨겨 가지고 있지만, 만약 두드려 묻는 사람이 없다면, 말미암아 밖에서 발휘할 바가 없는 것이다. 한번 말씀하시게 되면, 곧 한번 정신이 드러났던 것이다. |
4 | ○ 楊氏曰: “‘甘受和, 白受采, 忠信之人, 可以學禮. 苟無其質, 禮不虛行’. 此 ‘繪事後素’之說也. 孔子曰 ‘繪事後素’, 而子夏曰‘禮後乎’, 可謂能繼其志矣. 非得之言意之表者能之乎? 商ㆍ賜可與言詩者以此. 若夫玩心於章句之末, 則其爲詩也固而已矣. 所謂起予, 則亦相長之義也.” 양씨가 말하길, “단맛은 五味의 조화를 받아들이고, 하얀색은 五彩色을 받아들이며, 忠誠스럽고 信義 있는 사람은 이로써 예를 배울 수 있다. 만약 그 바탕이 없다면, 예는 그냥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이것이 繪事後素에 관한 말씀이다. 공자가 繪事後素라고 말하자, 자하는 禮後乎라고 말하였으니, 능히 그 뜻을 이어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말뜻의 숨은 뜻을 터득한 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능히 할 수 있겠는가? 商(자하)과 賜(자공)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만약 무릇 장구의 말단에만 마음을 두고 몰두한다면, 그 사람은 시를 이해함이 고루할 따름이다. 이른바 나를 일으켜준다는 것은 곧 또한 서로 키워준다는 의미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記禮器云 甘受和 白受彩 忠信之人 可以學禮 苟無忠信之人 則禮不虛道 道猶行也 引此以解此章 方可通 不然禮後乎一句 何以知忠信當先而禮文在後乎 白受彩可證繪事後素而忠信可學禮 可解禮後乎 集註首云 禮必以忠信爲質 亦本禮器 신안예씨가 말하길, “예기의 禮器 편에 이르길, 단맛은 五味의 조화를 받아들이고, 하얀색은 오채색을 받아들이며, 충성스럽고 신의 있는 사람은 예를 배울 수 있으니, 忠과 信이 없는 사람이라면 禮를 헛되이 길 삼을 수 없다고 하였다. 道는 행한다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인용하여 이 장을 풀이해야만 비로소 뜻이 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禮後乎’ 이 한 구절에서 어떻게 忠과 信을 마땅히 우선해야 하고 예문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겠는가? 하얀색은 오채색을 받아들인다는 것에서,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하얗게 칠한 뒤에 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忠信之人이 이로써 예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서, ‘禮後乎’를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집주 첫머리에서 말한 ‘禮는 반드시 忠信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역시 예기의 禮器 편을 본받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學記曰 善敎者使人繼其志 謂師善敎以引其端 使弟子繼師之志而開悟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예기의 학기에 이르길, 잘 가르치는 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 뜻을 잇도록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스승이 잘 가르쳐서 그 단서를 인용함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스승의 뜻을 계승하여 깨닫도록 한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孟子云 固哉高叟之爲詩也 爲猶云講治 固謂執滯不通 신안예씨가 말하길, “맹자가 이르길, ‘고루하구나! 高叟(고씨 노인네)가 시를 다스림이여!’라고 하였다. 爲는 익히고 다스린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固는 집착하고 막혀서 통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學記云 敎學相長也 謂敎者與學者 交相長益 신안예씨가 말하길, “학기에 이르길, 敎學相長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과 더불어 서로 자라게 하고 보탬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繪事後素者 謂質爲之先而文在後也 子夏於此知禮文之爲後 可謂能默會之於語言之外矣 故夫子有起予之言 子夏在聖門文學之科 而其所得蓋如此 可謂知本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繪事後素라는 것은 바탕이 그 우선이 되고 문이 나중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자하는 여기에서 禮와 文이 나중이 됨을 알았으니, 언어의 밖에서 그것을 묵묵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나를 일으켜준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자하는 성인의 문하에서 문학과였는데, 그가 터득한 바가 대체로 이와 같았으니, 근본을 알았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