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8] 홍종복 (洪鍾福) - 나의 증언 3.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 - 1
나는 남달리 어릴 적부터 여러모로 영적인 경험들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모든 일에 늘 최선을 다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6년제 원주 농업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원주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성실함을 인정받아 학도호국단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강원도를 대표한 학도호국단 운영위원장에 선출되어 도내에서 운영 책임을 맡았다. 나는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아무래도 서울로 가서 공부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에 지원했다. 시험 날 보성고등학교에 가보니 전국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학생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긴장 속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합격 경쟁률이 무려 38 대 1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합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결과가 발표되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래도 확인은 한 번 해봐야지.”라고 하시며 직접 우체국으로 가서 전화를 해보셨다. 놀랍게도 내가 보성고등학교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감사한 마음에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그렇게 보성고등학교에 들어가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법학과에 다니는 동안 나는 오로지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래서 내 관심은 늘 공부였다. 처음 하숙집을 얻은 곳은 학교 근처였다. 그런데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며 드나들었기 때문에 마음 편히 공부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가끔 뜻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 어떻게 싸워나가는 것이 좋을까를 깊이 고민하였다.
해답을 찾기 위해 각종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인생의 심오한 문제들을 놓고 깊이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고 공부에 더욱 전념하기 위해 나는 친구들이 자주 놀러 오기 힘든 달동네 산돈암동으로 하숙집을 옮겼다. 하루는 공부를 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바람도 쐴 겸 집 근처 야산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큰 바위 밑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나를 급하게 부르며 “이봐 젊은이. 그 바위 밑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아.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그곳에서 젊은 방공 청년들을 잡아다 죽인 곳이야. 얼마 전 이 동네로 이사 온 시골 청년도 그 바위 밑을 걸어 다니곤 했는데 글쎄 미쳐서 자살을 했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오히려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일부러 바윗돌 가까이에 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모를 오싹함이 느껴졌다. 바위 옆으로는 깊은 골짜기였다. 밑으로 내려가 보니 정말 사람의 뼈마디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나뭇가지 끝에는 가죽으로 만든 혁대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