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과일 위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제철에 나는 과일 다섯 가지다. 여기에다 달걀 삶은 것 하나와 모두배기떡 한 조각, 견과류 한 줌, 석류 주스 한 잔으로 아침 한 끼를 치른다. 육칠 년 계속된 우리 집의 아침 식사다. 영양학적으로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채소를 많이 먹지 않고 아침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 가족들을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결혼한 지 사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아침 끼니의 내용이 여러 번 바뀌었다. 신혼 때는 아침을 한정식으로 먹었다. 흰 밥과 국, 김치와 생선, 갖가지 나물로 채워진 밥상이다. 남편의 밥그릇은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고봉으로 채워졌다. 결혼 일 년 후 내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 아침상의 반찬 가지 수가 조금 줄었다.
결혼 후, 구 년 만에 어렵게 첫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임신 삼 개월부터 입덧이 심해 밥을 먹지 못하자 지인이 미숫가루를 권했다. 예닐곱 가지 곡식과 말린 채소를 볶아 가루로 만든 미숫가루는 영양가가 높으며 입맛에 맞아 출산 전까지 아침 식사가 되었다. 남편도 출근하기 바쁜 아침에 먹기가 간편하고 요기도 된다며 먹기 시작했다. 미숫가루는 수년 동안 우리의 아침 끼니였다.
한 가지를 너무 오래 먹어서인지 어느 날부터 미숫가루가 맛이 없어졌다. 아침은 다시 한정식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후 십 년 만에 태어난 아이의 육아와 직장생활의 바쁨을 핑계로 간편한 죽으로 아침 식사가 바뀌었다. 죽의 종류는 전복죽, 녹두죽, 호박죽, 팥죽이었다. 전복죽은 집에서 직접 끓였고, 나머지는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 아파트 상가의 노부부가 만들어 파는 죽을 사 먹었다.
오랜만에 아침 끼니로 녹두죽을 먹었다. 연한 회색과 연두색이 합쳐진 어찌 보면 청잣빛이랄까 은은하고 편안한 녹두색에 반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맛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끓인 것보다 못했지만, 죽을 떠먹는 순간 외할머니의 녹두죽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머니가 큰 병을 앓아 집안 살림을 할 수 없게 되어 옆집에 살던 외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합가했다.
외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여러 종류의 김치를 잘 담갔고 큰돈 없이 마련할 수 있는 밑반찬과 간식을 잘 만들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셨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병이 나았을 때도 음식 준비는 외할머니가 맡았다. 나는 어릴 때 몸이 허약하여 잔병치레가 잦았다. 감기에 잘 걸리고 배탈도 자주 났으며 피곤하면 목젖이 붓기도 하였다.
외할머니는 손녀가 감기로 열이 나거나 배탈이 나면 녹두죽을 끓여 주었다. 병을 앓고 난 후 입맛이 없을 때도 녹두죽을 쑤어 먹였다. 죽을 먹고 나면 열이 내리고 며칠 지나면 병이 나았다. 입맛이 없을 때도 녹두죽을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 도시에 살았지만, 그 시절엔 약국이 집 가까이 있지 않았다. 식구가 많았던 시절, 가정 경제력에 비해 약값은 만만치 않아 웬만한 병은 민간요법으로 치료했다. 녹두죽은 치료제였으며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애정이며 정성이었다. 먹거리가 흔하지 않던 어린 시절엔 녹두죽은 비록 죽이지만 귀한 음식이었으며 별식이기도 했다.
녹두는 성질이 차서 몸속의 열기를 내려 준다. 병이 나서 열이 날 때 열을 내려 주며 설사와 복통이 반복되는 배탈에도 효과적이다. 여름에 더위를 먹거나 갈증이 심할 때 갈증이 풀린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므로 신장의 기능이 떨어질 때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몸속의 독소를 배출해 주어 해독 효과도 있다. 선조들은 이런 효능을 알아 녹두죽, 빈대떡, 청포묵, 숙주나물들의 음식을 해 먹으며 건강을 지키고 병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젊은 날, 여름에 배탈이 난 적이 있었다. 배가 아프고 설사가 계속 나서 약을 사러 나갈 힘조차 없어 바깥 출입도 못 하고 집안에 갇혀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남편이 귀가했다. 술이 만취된 상태여서 자신의 몸을 가누기도 힘든데 아내의 안녕을 물어볼 여력이 없었다. 안방에 들어가기 바쁘게 잠자리에 들었다. 온종일 앓고 있었던 나는 안부도 묻지 않는 남편이 얄미웠고 서러웠다. 일찍 귀가하여 아내의 약이라도 사 오기를 학수고대하였는데….
다음 날도 남편은 아내의 건강엔 관심이 없었다. 젊은 혈기의 자존심은 약을 사달라는 부탁도 하기 싫었다. 그 시절엔 가까운 곳에 죽을 파는 곳이 없어 녹두죽을 사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끓여주던 녹두죽이 생각나서 서러움을 혼자 삼켰다. 달짝지근하고 쌉싸래하기도 한 녹두죽을 한 그릇 먹으면 배탈이 나을 것 같고 먹지 못해 허기진 몸과 마음도 회볼 될 것 같았다.
젊은 날에는 일인삼역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아들이 열이 나거나 아파도 약을 먹이거나 병원에 데려갈 생각만 했지,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녹두죽을 끓여 먹이질 못했다. 배탈이 나면 끓이기 간편한 흰죽을 쑤어 먹이기는 했지만.
나는 어릴 때 목젖이 자주 붓곤 했다. 외할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하여서는 대청마루에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서라고 한다. 집이 마침 동향이었다. 외할머니는 나의 뒤에 서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게 하고는 양쪽 귀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그렇게 하면 부은 목젖이 낫는다고 했다. 나는 아프다고 소리 지르며 마음속으로 미신이라며 싫어하였다. 과학적인 근거는 모르겠지만 외할머니는 목젖이 부을 때마다 그렇게 하였다. 그 시대의 민간요법이었다.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사랑과 정성, 병이 나을 거라는 할머니의 믿음 때문인지 며칠 지나니 부은 목젖이 가라앉았다.
목젖이 부었을 때도 부지런하고 정이 많은 외할머니는 녹두죽을 끓여 외손녀에게 먹였다. 맛이 있고 먹기 편한 죽을 먹을 때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아픈 것이 잠시 잊히며 표정이 밝아진다.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인간의 신체는 병이 났을 때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 치유가 된다. 현대 의학의 약은 치료가 되기도 하지만 여러 번 많이 먹었을 때는 독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자연의 음식물을 섭취하고 가족의 정성이 가미되면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약의 치료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연 음식으로, 정성으로 병을 고치던 옛사람들이 현명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장마와 무더위로 입맛이 없어진 요즈음 갓 끓인 녹두죽 한 그릇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