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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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윤상길의 중계석] 시인 유희경의 산문집 <사진과 시>가 ‘아침달’에사 출간되었다. 생활 속에서 탐구하는 테마와 시(詩)를 나란히 두고, 시와 생활이 서로를 건너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아침달’의 에세이 시리즈 <일상시화>의 네 번째 순서로 등단(조선일보 신춘문예) 이후 고요하고도 기민한 감각으로 삶에 가려져 있던 감정과 진실을 마주해온 시인 유희경의 세 번째 산문집이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어디서 자세히 말해본 적 없이, 머뭇거리기만 했던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흐른다. 시인이 살면서 간직했던 카메라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보는 일’에 대한 새로운 초점을 재구성한다.
‘사진과 시’ 이미지 디자인에서
어느 날 홈쇼핑에서 판매하던 보급형 카메라를 어머니로부터 덥석 받게 된 날로부터, 사랑과 원망을 동시에 느끼던 외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게 된 이안반사식 카메라 ‘롤라이플렉스’, 무리에서 이탈하기 좋아하던 아버지의 관광 사진 속 흐릿한 해상도를 복구하기 위해 ‘드럼스캔’ 가게를 전전긍긍했던 어느 겨울까지. 기억에 자리 잡고 있던 어렴풋한 이야기가 시인의 언어를 통해 선명한 해상도로 복원된다.
시인은 그동안 자기 손을 거쳐 간 카메라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장비’라고 부를 수 있는 카메라의 시선과 연대하며 바라보고, 사로잡혔던 것들을 통해 어떤 비밀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또 어떤 비밀은 끝끝내 지켜지기도 한다. 시인은 한쪽 눈으로 바라보게 된 세계에서 감은 눈으로는 본 것들을 담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사진과 사’ 본문에서 발췌
카메라의 원리와 닮은 듯한 시인의 시선은 카메라 동호회 사람들과 나눈 정다운 우정 속에서, 쿠쿠에게서 느끼던 작은 동경 안에서, 가족들을 이해해 나가는 어떤 실마리 안에서 구체화한다. 빛에서 어둠으로, 다시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하는 시선의 명암은 한 장 사진 없이도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전해진다.
카메라를 처음 갖게 된 첫날에 찍은 용량 8MB의 사진 목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번째 사담은, 시인이 자신의 유년과 카메라를 처음 쥐게 된 최초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진 세계에 입문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것은 자신의 원형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자, 쓰고 읽고 보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과 시’ 표지
두 번째 사담은 ‘바라보기’에서 출발했던 사진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쓰기의 영역으로 옮겨오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의 명징하고 맑은 사유가 빛나는 두 번째 사담의 산문들에는, 시인이 그려온 세계와 지켜나가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그려나간다.
시인은 망각의 편에 서서 기억을 고찰한다. 그것은 사진으로 재단된 붙잡힌 순간 너머를 바라보고자 함이다. 이 책에는 시인이 지나온 이야기로써 조감하려고 하는 미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외할아버지 등 가족을 비롯하여 ‘펜세금포럼’ 동호회 사람들과 쿠쿠, 그리고 그의 사진 선생님이라 부를 만한 여러 작가까지. 시인의 시선 속에서 포착되는 인물들은, 그가 찾고만 있었던 삶 안에서 ‘바라보기’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며 살아감의 방식을 터득하는 데 중요한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사진과 사’ 본문에서 발췌
시인은 사진과 시를 통해 깨달은 것을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그 너머에도 이야기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유실된 것 또한 기억의 방식이라 여기며 우리가 붙잡고 있던 순간을 새로이 환기한다. 빛이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어둠은 그것을 담아내게 만든다는 카메라의 원리처럼 시인도 세상을 본다. 고요와 침묵을 셔터 소리로 깨우며 찾아낸 이 이야기들이 시인 자신의 자화상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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