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대단원이 된 단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醫師 누가가 기록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대단원(大團圓)을 내리면서 “거침없이”(행28:31)라는 단어로 끝을 맺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31절이 아콜뤼토스(ἀκωλύτως)라는 단어로 끝이 난다. 한글성경은 “거침없이”라고 번역했지만 직역을 하면 “방해 없이”라는 뜻이다. 부정사 아(ἀ)와 코뤼오(κωλύω 방해하다)의 합성어다.
누가는 “방해 없이”라고 끝맺음했지만 실제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곳곳에서 엄청난 방해를 받았다. 사도행전을 끝맺을 당시에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군인의 감시하에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왜 누가는 “방해 없이”라는 단어로 끝맺음했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이 단어는 나를 무척 고민하게 만들었고 이 단어 때문에 다른 글을 쓰지 못하고 일주일을 보냈다.
오늘 문득 요셉의 사건이 떠올랐다. 요셉은 17살 때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의 곡식단에 엎드려 절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을 형들에게 말했다가 미움을 받게 되었다.
요셉의 형들에게 그가 얼마나 눈엣가시였는지 형들은 그를 죽여 없애버리려고 그를 깊은 마른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유다의 제안으로 요셉은 겨우 목숨을 건져 상인들에게 팔려갔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왕의 친위대장 보디발 장군 집의 노예가 되었지만, 주인의 눈에 들어 그 집을 총괄하는 총무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마님의 성상납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누명을 쓰고 왕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왕의 감옥이란 왕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나올 수 없는 감옥이었다. 이제 요셉의 삶은 왕의 감옥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요셉은 같은 감옥에 있던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여 적중시켰고, 또 그로 인해 바로왕의 꿈까지 해석한 후 처방전을 내놓음으로써 30세 나이에 애굽을 통치하는 총리로 발탁이 되었다.
7년 후에 중동지역에 큰 기근이 왔다. 요셉의 형들은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가 총리가 된 요셉에게 엎드려 곡식을 팔아달라고 간청했다. 17살 때의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요셉에게는 큰 방해들과 절망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해들”은 그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필요했던 사건에 불과했다.
사도 바울도 가는 곳곳마다 핍박이 있었지만, 그것은 복음의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과정”은 “방해”가 아니다. 통과의례일 뿐이다. 그래서 누가는 “방해 없이”라는 단어로 사도행전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