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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上京夫子(증상경부자: 한양 가시는 낭군님께 드림)
廾七佳人廾七郞(공칠가인공칠랑) 스물일곱 살의 아내와 남편
幾年長事別離場(기년장사별리장) 몇 년이나 긴긴 이별 했었던가요?
今春又向長安去(금춘우양장안거) 금년 봄 한양에 또 가셔야 하니
雙鬂猶添淚兩行(쌍빈유첨루량행) 두 빰에 흐르는 눈물 금할 길이 없어라.
志士當年不顧家(지사당년불고가) 뜻있는 선비 중엔 집안 돌보지 않고
席門多有建高牙(석문다유건고아)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높고 위대하게 된 인재 많아라.
臨分誦道前人事(림분송도전인사) 이별을 앞두고 옛날 일 말씀드리나니
晝錦何時鄕里夸(주금하시향리과) 금의환향 언제 하여 고향 마을 빛내실까?
老馬終宵齕荳萁(노마종소흘두기) 늙은 말은 밤새도록 여물을 먹었는데
行人將發故遲遲(행인장발고지지) 떠날 사람 행장은 왜 이리도 더딘가.
搴裳小婢來廚下(건상소비래주하) 짧은 치마 여종은 부엌에서 들어와
爲報黃梁已曉炊(위보황량이효취) 새벽에 기장밥 지었다고 알려오네.
鴛鴦枕畔鷄聲早(원앙침반계성조) 원앙금침 잠자리에 새벽닭 일찍 우니
遠客行裝千里道(원객행장천리도) 천리 길
떠나실 낭군의 행장 차리고 있네.
老僕開門步征馬(노복개문보정마) 늙은 머슴 문 열고 말 끌고 나가서
石鐺獻火燃南草(석당헌화연남초) 부싯돌로 불 붙여 담배만 피워대누나.
春事家家桃始華(춘사가가도시화) 봄 일로 바쁜 집
집집마다 복사꽃 활짝 피었고
淸晨早起捲窓紗(청신조기권창사) 상쾌한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었어라.
千里長安相送去(천리장안상송거) 한양 천리 길로 서방님 보내고 나니
溪山朝日散餘霧(계산조일산여무) 솟아오른 아침 햇살에
짙은 안개 사라졌어라.
白竹扉前遠送客(백죽비전원송객) 사립문 앞에서 서방님 멀리 보내는데
東風征馬踏朝雲(동풍정마답조운) 봄바람 가르며 떠난 말은
아침 구름을 밟고 가는 듯하구나.
臨行不可無相贈(림행불가무상증) 서방님 가시는데
그 어찌 징표가 없을쏜가?
遵彼蘭畦拾晩芬(준피란휴습만분) 난초 언덕에 가서
지는 꽃잎을 주어서 드릴까나.
歸路迢迢草吐芽(귀로초초초토아) 새 싹이 돋아나 있는
가시는 그 길 아득히 멀기만 한데
東風送客一天涯(동풍송객일천애) 동풍을 맞으며 그 먼 곳으로 님 보내네.
摻子之手執歸袂(섬자지수집귐몌) 당신의 손을 마주잡고 또
당신 따라 돌아갈 그 소매를 부여잡고서
莫念閨中朝露花(막념규중조노화) 규중의 아침 이슬 맞은 꽃(삼의당)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아 주세요.
城東門外雨初晴(성동문외우초청) 성의 동쪽문 밖에 내리던 비는 개이고
芳草堤頭白馬鳴(방초제두백마명) 방초 언덕에 백마는 울고 서 있네.
愧我十年長是別(괴아십년장시별) 나의 십년 동안의 이별 부끄럽지만
嗟君千里爲誰行(차군천리위수행) 당신의 천리 길은
누굴 위한 것인지 안타깝네요.
須看世上奇男事(수간세상기남사) 모름지기 세상 남자들 큰일을 한 것 보면
肯作人間匹婦情(긍작인간필부정) 인간에 연약한
한 여자를 그리워하는 정 생각 했던가요.
有志終軍終建節(유지종군종건절) 뜻을 품고 전선에 나가 건설한다면
史編所以裁芳名(사편소이재방명) 역사책에 명예로운 이름 실리겠지요.
楊柳千絲拂地輕(양류천사불지경) 버들가지는 실처럼 늘어져
땅을 가볍게 스치고
錦蠻黃鳥兩三聲(금만황조양삼성) 비단 같은 꾀꼬리 두세 마리 지저귀네.
今年又作昔年別(금년우작석년별) 금년에도 작년처럼 이별을 하게 되니
何日將回此日行(하일장회차일행) 언제 오시려고 이 길을 떠나시나요?
吾所贈言皆血焑(오소증언개혈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
뼈저린 부탁이오니
子如怠業豈人情(자여태업기인정) 공부를 게을리 하시면
어찌 인정 있다 하오리까?
古之格語能知否(고지격어능지부) 옛날의 격언을 님도 잘 아실터
有志者皆事竟成(유지자개사경성) 뜻이 있는 자
모든 일을 결국 성취했다는 것을.
※ 참고
1. 지은이는 김삼의당.
2. 夫子(부자)는 남편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의미하는 부자는 父子이다.
3. 廾七(공칠)은 들 공으로 20을 뜻하므로 廾七(공칠)이라 함은 27이다.
4. 幾年長事(기년장사)는 몇 기, 얼마 기, 해 년, 길 장, 맏 장, 일 사 이므로
몇 년이나 걸린 기나긴 일인가?
5. 別離場(별리장)은 다를 별, 헤어질 별, 떠날 리, 마당 장, 곳 장 이므로
이별 마당 즉 이별.
6. 雙鬂(쌍빈)은 쌍 쌍, 살쩍 빈 이므로 양 볼, 두 뺨
7. 猶添淚兩行(유첨루량행)은 원숭이 유, 오히려 유, 더할 첨, 눈물 루,
두 량, 짝 량, 다닐 행, 줄 항 이므로 오히려 두 줄기 눈물을 더하다.
8. 志士(지사)는 뜻 지, 선비 사 이므로 직역하면 뜻이 있는 선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
9. 當年(당년)은 마땅할 당, 이(그) 당, 해 년 이므로 그 해, 이 해
10. 不顧家(불고가)는 아닐 부, 돌아볼 고, 돌볼 고, 집 가 이므로
집을 돌보지 않는다.
11. 席門(석문)은 자리 석, 돗자리 석, 문 문 이므로 돗자리로 만든 문.
즉 가난한 집 대문.
12. 多有(다유)는 많을 다, 있을 유 이므로 많이 있다.
13. 建高牙(건고아)는 세울 건, 높을 고, 어금니 아,
대장기(대장이 지휘할 때 쓰던 기) 아 이므로 높고 위대한 것을 만들다.
14. 臨分(림분)은 임할 림, 나눌 분, 가를 분 이므로 갈라서는 마당. 즉 이별 함.
15. 誦道(송도)는 욀 송, 읽을 송, 길 도 , 도 도 이므로 도리를 외우다.
도리를 읽다.
16. 前人事(전인사)는 앞 전, 사람 인, 일 사 이므로 옛날 사람에 관한 일.
즉 옛날에 일어난 일.
17. 晝錦(주금)은 낮 주, 비단 금 이므로 직역하면 낮에 비단 옷을 입고 다님.
즉 사람이 출세하여 고향에 금의환향 한다는 뜻이다.
18. 何時(하시)는 어찌 하, 때 시 이므로 어느 때.
19. 鄕里夸(향리과)는 시골 향, 고향 향, 마을 리, 자랑할 과 이므로
고향에 자랑하다.
20. 終宵(종소)는 마칠 종, 끝 종, 밤 소 이므로 밤새도록.
21. 齕荳萁(흘두기)는 깨물 흘, 씹을 흘, 콩 두, 콩대 기 이므로
콩과 콩대기를 씹다. 즉 여물을 먹다.
22. 行人將發(행인장발)은 行人이란 길가는 사람.
장수 장, 장차 장, 쏠 발, 떠날 발 이므로 장차 떠나갈.
따라서 行人將發(행인장발)은 장차 길 떠날 사람.
23. 故遲遲(고지지)는 일(事) 고, 더딜지 이므로 일이 더디다.
일이 지연되고 있다.
24. 搴裳小婢(건상소비)는 걷을 건, 바지 건, 치마 상, 아랫도리 옷 상,
작을 소, 계집종 비 이므로 짧은 치마를 입은 어린 계집 종.
25. 來廚下(래주하)는 올 래, 부엌 주, 아래 하 이므로 부엌 아래에서 오다.
26. 爲報黃梁(위보황량)은 할 위, 위할 위, 갚을 보, 알릴 보,
누를 황, 들보 량 인데 밭에서 거두는 오곡중 하나인 좁쌀을 黃梁이라고 한다.
따라서 爲報黃梁(위보황량)은 좁쌀 밥을 했다고 알리다.
27. 已曉炊(이효취)는 이미 이, 새벽 효, 불 땔 취 이므로 이미 새벽에 불을 때다.
28. 鴛鴦枕畔(원앙침반)은 베개 침, 두둑 반, 물가 반 이므로 원앙금침 잠자리.
29. 鷄聲早(계성조)는 닭 계, 소리 성, 일찍 조, 새벽 조 이므로
새벽 닭 우는 소리.
30. 步征馬(보정마)는 걸음 보, 걸을 보, 갈 정, 칠 정, 말 마 이므로
말을 끌고 걸어가다.
31. 石鐺獻火(석당헌화)는 돌 석, 쇠사슬 당, 드릴 헌, 불 화 이므로
부싯돌에 불을 붙이다.
32. 燃南草(연남초)는 탈 연, 남녘 남, 풀 초 인데
담배 잎을 말려서 만든 잎담배를 南草(남초)라고 한다.
따라서 燃南草(연남초)는 담배를 태우다.
33. 淸晨早起(청신조기)는 맑을 청, 새벽 신, 일찍 조, 일어날 기 이므로
맑은 새벽 일찍 일어나다.
34. 捲窓紗(권창사)는 말 권, 창 창, 깁(무늬 없는 비단) 사 이므로
사창을 열다.
35. 溪山朝日(계산조일)은 시내 계, 메 산, 아침 조, 날 일, 해 일 이므로
계곡물이 흐르는 산에 아침 해.
36. 散餘霧(산여무)는 헤어질 산, 남을 여, 안개 무 이므로
남아 있는 안개를 사라지게 하다.
37. 白竹扉前(백죽비전)은 흰 백, 대나무 죽, 문짝 비, 사립문 비,
앞 전 이므로 하얀 대나무 사립문 앞.
38. 遠送客(원송객)은 멀 원, 보낼 송, 손 객, 나그네 객 이므로
멀리 손을 보내다. 여기서 손은 과거보러 떠나는 낭군.
39. 東風征馬(동풍정마)는 갈 정, 칠 정, 말 마 이므로
봄바람(동풍)을 치고 가는 말.
40. 踏朝雲(답조운)은 밟을 답, 아침 조, 구름 운 이므로 아침 구름을 밟다.
41. 臨行(림행)은 임할 림, 다닐 행, 길 갈 행 이므로 길 떠남에 있어.
42. 不可無(불가무)는 아닐 부, 옳을 가, 허락할 가, 없을 무 이므로
없는 것이 아니다. 없을 수가 있는가.
43. 相贈(상증)은 서로 상, 줄 증 이므로 서로 주다.
44. 遵彼蘭畦(준피란휴)는 좇을 준, 저 피, 그 피, 난초 란, 두둑 휴 이므로
저 난초 언덕을 좇아가서.
45. 拾晩芬(습만분)은 주을 습, 저물 만, 향내 분 이므로 지는 향내를 줍다.
46. 歸路迢迢(귀로초초)는 돌아갈 귀, 길 로, 멀 초, 높을 초 이므로
돌아갈 길이 아득히 멀다.
47. 草吐芽(초토아)는 풀 초, 토할 토, 싹 아 이므로 풀들이 싹이 돋아났다.
48. 天涯(천애)는 하를 천, 물가 애, 끝 애 이므로 하늘 끝, 머나먼 곳.
49. 摻子之手(섬자지수)는 잡을(쥘) 섬, 아들 자, 당신 자,
갈 지, 의 지, 손 수 이므로 당신의 손을 잡다.
50. 執歸袂(집귀몌)는 잡을 집, 돌아갈 귀, 소매 몌 이므로
당신 따라 돌아갈 그 소매를 부여잡다.
51. 莫念(막념)은 없을 막, 않게 할(금지하는) 막, 생각 념 이므로
생각을 하지마라.
과거 준비로 산사로, 한양으로 가 있는 삼의당 남편은
객지에서 공부를 하면서 “당신 생각에 그리워 견딜 수가 없다.”
이런 편지를 아내 삼의당에게 보내오곤 했다.
이 와중에 과거를 보면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52. 閨中朝露花(규중조노화)는 도장방(부녀자 방) 규, 가운 데 중, 안(내) 중,
아침 조, 이슬 로, 꽃 화 이므로 규방의 아침에 이슬 맺은 꽃.
삼의당 자신을 말한다.
53. 肯作(긍작)은 즐기어할 긍, 만들 작, 일으킬 작 이므로
기꺼이 만들다. 기꺼이 일으키다.
54. 人間匹婦情(인간필부정)은 한 사람의 女子를 匹婦(필부)라고 한다.
따라서 人間匹婦情(인간필부정)은 인간에 대한 한 여자의 정.
55. 裁芳名(재방명)은 마를 재, 헤아릴 재, 꽃다울 방, 이름 명 이므로
꽃다운 이름을 헤아리다.
56. 吾所贈言(오소증언)은 나 오, 바 소, 곳 소, 줄 증, 말씀 언 이므로
제가 드리는 말씀.
57. 皆血焑(개혈곤)은 다(모두) 개, 피 혈, 정성 곤 이므로 모두 피 같은 정성.
모두 뼈저린 부탁.
58. 皆事竟成(개사경성)은 다(모두) 개, 일 사, 끝날 경, 마침내 경,
이룰 성 이므로 모든 일이 마침내 이루어지다.
59. 이 한시는 김삼의당의 남편인 하립을 과거 준비 차 한양으로
전송하면서 지은 漢詩(한시)이다.
삼의당은
과거에 漢陽(한양)에서 또는 山寺(산사)에서 과거공부를 하던 남편 하립이
아내인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자주 마음이 약해지며,
또 여자 생각을 했던 남편의 마음가짐이 못미더워서,
이번에 한양에 가면 흔들리지 않고 공부에 전력투구하길 간절히 바랬다.
남편의 과거급제를 위해선 그녀 자신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성공한 선비들을 예로 들면서,
아내인 김삼의당 자신조차 절대로 女子로 생각하지 말며,
이번에는 부디 과거 시험에서 합격하여,
결혼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이별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16년 동안 계속된 낙방 끝에 결국엔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남원 땅을 떠나 전라도 진안 땅에서 부인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60.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설명하면 정기 시험으로 4년마다 실시하는 식년과,
비정기 시험으로 나라에 경사(대군 출생, 세자 결혼, 임금 또는 왕비 환갑 등)가
있을 때 (왕비가 낳은 아들은 대군, 후궁이 낳은 아들은 군이라 하고,
왕비가 낳은 딸은 공주, 후궁이 낳은 딸은 옹주라 하였다.),
임시로 실시하는 증과문과 또는 별시문과 와,
임금이 성균관에 행차하시어 실시하는 알성과가 있는데,
가장 영광스러운 시험은 알성과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알성급제 라 했다.
이렇듯 증과문과, 별시문과, 알성과는 어쩌다 있는 시험이었다.
과거에 급제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각도에서 실시하는 향시나 중앙에서 행하는 초시(1차)를 통과해야
4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식년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식년과에서는 4년에 한 번씩 생원 100명. 진사 100명을 뽑는데(2차),
생원과는 경서를 암기하는 시험이고 합격자를 생원이라 하며,
진사과는 제목과 운자를 정해주면 그에 따라 한시를 짓는데,
합격자를 진사라 하였다.
생원과. 진사과에 합격한 자에 한하여
과거의 대과(문과) 초시에 응시할 수가 있고,
성균관(현재의 서울대)에 입학 자격도 주어졌다.
문과 초시에는 생원 과 진사 중에서 성균관에서 50명, 한양에서 40명,
경상도에서 30명, 충청과 전라도에서 각각 25명, 경기에서 20명,
강원과 평안도에서 각각 15명, 황해와 함경도에서 각각 10명을 선발하여(3차)
총 240명이 문과 본시에 응시하였다.
대과 본시는 1차 시험을 초장이라고 하여 경서를 암송하고,
2차 시험을 중장이라 하여 한시를 지었다.(4차)
대과 본시 응시자는
초장이나 중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시험을 칠 수 있는데,
응시자 대부분이 초장과 중장을 다 봤다.
초장에서 16명, 중장에서 16명, 초장과 중장 합쳐서 1명
총 33명이 과거에 급제하였다.
성적이 나쁘면 30명, 28명도 뽑았으며 아무리 성적 우수자들이 많아도
33명 이상은 뽑지 않았다.
일단 급제자 33명이 확정되면,
장문의 논문을 작성하는 논술시험을 치렀다.(5차)
이 시험을 殿試(전시: 전각(궁궐) 전, 시험 시)라고 하는데
임금이 친히 임석하였다.
시험장에서 제목을 제시 받고 일테면 B4 용지 몇 장 분량의 답안을 작성했다.
殿試(전시)는 지식, 논리적 사고력, 당시의 조정과 사회민심에 대한 시각,
국가관, 세계관, 선비의 지조와 절개 등등
응시생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시험이었다.
최우수자 3명을 갑과, 그 다음 우수자 7명을 을과,
나머지 23명을 병과라 하였다.
최우수자 3명을 각각 장원(1등), 방안(2등), 탐화(3등) 라 하였다.
조선시대 역사를 말하면서 일테면 율곡 이이, 송강 정철 등의
장원 급제자의 답안지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게 바로 이 전시 답안지를 뜻한다.
벼슬자리가 많지 않아서 합격자도 일괄적으로 인사발령을 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원 급제자는 종6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즉시 발령을 받았다.
특히 식년과의 생원과, 진사과, 대과 본시의 초장, 중장, 전시에서
모두 다 장원으로 통과한 사람은 임금이 친히 불러서
암행어사로 삼았고 승진도 매우 빨랐다.
조선시대 과거급제자는 4년에 33명씩을 뽑았으므로
오늘날의 사법시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거급제가 어려웠다.
조선시대 선비의 프로필을 보면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바로 4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정기 과거시험으로 官(관)에 입문했으며
급제한 성적 즉 순위(4등에서 10등 까지) 등급을 의미하는 것이다.
갑과, 을과, 병과에 따라 官(관)에 입문하면서 맡는 보직에 차이가 있었다.
조선시대 3대가 연이어 장원급제한 가문이 둘이 있다.
하나는 경주 김씨 계림군(태조 이성계의 개국공신 김균으로 좌찬성 역임)파
집안으로 김천령은 연산군 1년(1495년) 식년문과에 장원,
그 아들 김만균은 중종 23년(1528년) 별시문과에 장원,
그 손자 김경원은 명종 8년(1553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 하였다.
김경원 동생인 김명원도 명종 16년(1561년) 식년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선조 임금 때 좌의정 까지 올랐다.
추사 김정희(1786-1856, 대사성, 이조참판 역임)도 경주김씨 계림군파 이다.
또 하나의 집안은 여흥 민씨 가문으로 민광훈은 인조 6년(1628년)
알성문과에 장원, 그 아들 민정중은 인조 27년(1649) 식년문과에 장원,
그 손자 민진장은 숙종 12년(1686년) 별시문과에 장원을 하였다.
고종의 왕비 명성왕후가 여흥 민씨 가문이다.
관직에서 이조 정랑(정5품, 정3품 당상관 이하 관직의 인사권자) 이라는 자리는
(옛 총무처 인사과장 자리와 비슷하지만 파워 면에서는 비교가 안될 만큼 컸다.)
정6품 이하의 관직에서 경력을 쌓은 과거급제자 중에서
당대의 최고 엘리트가 맡는 자리이다.
이조 정랑 출신은 큰 사고가 없는 한 6조 판서의 자리에 올랐고,
반역죄가 아닌 한 사법처리도 면하였다고 한다.
첫댓글 좋은글 잘보고갑니다..감사합니다..항상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3월도 다 가고 있습니다..
づ ̄ ³ ̄)づ~♡ ..........오늘도 행복하세요~~!!..요기다 명상음악하나 올리면 금상첨화인디...
하얀 백지에 까만 글자로 써 내려 갈 뿐.. 여백의 미를 사랑합니다..
역사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었다면 학교때 공부 무지 잘했을텐데 그때는 왜 그리 지루한지~~^^ 이렇게 공부하다 장원급제 하겠어요~~^^ 고~~맙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