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으로 가운데와 넷째 손가락이 손바닥에 붙어 버려 수화의 ‘사랑합니다’가 됐다.
가족들이 같은 손 모양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딸 현주씨, 손자 원우군, 작은딸 지영씨, 외손녀 은정씨. 이 씨와 아들 봉진씨.
손 그림은 은정씨가 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재명씨의 오른손
“아버지는 손이 불편하셨지만 하모니카도 잘 불고 그림도 잘 그리셨어요.
뭐든 당당하게 해내시는 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러웠고, ‘나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아버지 이재명(82)씨와 아들 봉진씨.
함경남도 흥남에서 월남해 서울 광장시장에서 메리야스 장사를 하며 1남2녀를 키운 아버지의 손을 봉진씨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손가락에 장애가 있다.
돌이 되기 전 끓는 물에 화상을 입어 오른쪽 가운데와 넷째 손가락이 손바닥에 붙어버렸다.
하지만 이씨는 “이 손으로 크게 손해 본 일도 없고 오히려 손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았다”고 말한다.
마침 그렇게 붙어버린 손 모양은 수화(手話)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 아버지의 손, 아니 사랑은 봉진씨와 그 아들까지 3대를 묶어주는 밑거름이다.
“3년 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을 때 아버지의 삶을 책으로 정리해보자 결심했어요.”
아버지와 함께 『가족이 있는 삶』(이케이북)이란 책을 펴낸 봉진씨의 말이다.
삶의 고비를 맞을 때, 어려운 시대를 살아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지침 삼아 용기와 지혜·사랑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인생을 꼼꼼히 돌아보면서 부모님 세대에 존경과 사랑을 느끼게 됐다”며
세대별 가치관·라이프스타일에 차이가 있고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란 틀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 12∼14일 전국 20대 이상 남성 13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이재명씨 같은 70∼80대 세대,
봉진씨 같은 ‘86세대’(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
20∼30대 모두 삶의 가중치를 묻는 질문에서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씨 父子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오금동의 봉진씨 누나 현주(55)씨 집이었다.
200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누나가 모시고 산다.
집에는 현주씨와 여동생 지영(51)씨, 그리고 현주씨의 딸 은정(26)씨와 봉진씨 아들 원우(15)군도 함께 있었다. 이재명씨가 광장시장에서 장사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화제였다.
“아침 6시에 온 가족이 일어나 동네 한 바퀴 함께 돌고 밥을 먹었어요.
저녁이면 온 가족이 안방에 모여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얘기를 나눴고요, 시험 전날에도 예외가 없었죠.
”(현주씨)
이씨는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은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모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지혜가 전해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50년 12월 23일 흥남철수 때 고향을 떠나 거제도로 내려왔다.
이후 부산에서 부두 노역자·페인트공 등으로 일하다 55년 상경, 장사를 시작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57년 광장시장에 점포를 구입했고,
59년 결혼했다. 이씨는 최대한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 했다.
60년대 광장시장은 한 달에 딱 하루만 휴일이었다.
그날마다 도봉산·장충단 등으로 가족 소풍을 갔다.
평소에도 웬만한 곳엔 자녀들을 데리고 다녔다.
봉진씨는 “심지어 거래처까지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다니셨다.
거래처에서 외상값 안 주는 일 등 골치 아픈 문제, 고민거리도 다 털어놓으시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물으셨다”고 기억했다.
이재명씨 부부는 자녀들이 부르는 노래도 일일이 챙겼다고 한다.
한번은 시장에서 돌아와보니 애들이 신세타령 유행가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슬픈 노래 부르면 축 처지고 괜스레 슬퍼지죠. 없는 형편이었지만 전축을 사서 클래식과 동요를 틀어줬지요.
다른 부자 관계처럼 봉진씨도 아버지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15년 이상 해오던 메리야스 가게를 접고 75년부터 나전칠기 회사를 경영했던 이재명씨는 자신이 일궈놓은 사업을 아들이 이어받길 원했다.
하지만 봉진씨는 아버지 도움 없이 전문 경영인의 길을 가고 싶어했다.
봉진씨는 “갈등이 있었지만 폭발하지 않았던 건 어린 시절부터 가족 사이에 차곡차곡 저축해 놓은 시간의 힘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씨와 1남2녀 자녀들은 이씨의 피란 시절 행적을 따라 2박3일간 거제도·부산 일대 회고여행을 다녀왔다.
흥남 부두를 떠나던 때를 생각하면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아버지 앞에서 3남매는 숙연해졌다.
이후 봉진씨는 아들 원우를 데리고 집 근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자주 찾는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원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상황에 빠지더라도 부모 탓하지 말고 세상 탓하지 말고 다시 시작해라.
혈혈단신 부산에 내려오신 할아버지도 이렇게 일어나셨다.”
이지영 기자
교수들이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의미의 正本淸源
:正바를정, 本근본 본,淸맑을 청,源근원 원을 꼽았다.
교수신문은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한 결과
36.6%(265명)가 정본청원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본청원
한서/漢書, 형법지/刑法志에서 비롯된 말로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
교수들은 위선과 무책임으로 얼룩졌던 2014년을 보내며 2015년은 정본청원의 한해가 되길 희망했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가 걸어왔던 길이 정본청원'과는 너무도 반대되는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과)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이 사자성어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류웅재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전공
관피아 문제,
땅콩회항 등 사회 전반의 난맥상은 상식과 원칙을 경시하는 문화와 연관이 있다"며
새해에는 사회 지도층이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고 합리적 소통이 통용되는 국가를 만들어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정본청원에 이어 회천재조/回天再造가 25.8%(187명)의 선택을 받아 2위.
회천재조
쇠퇴하고 어지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라를 건설한다는 뜻으로 구당서/舊唐書에서 나온 말.
김익진 강원대 HK교수(불문학)
현재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정체나 후진을 경험하고 있다며 새롭게 앞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해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 반드시 정리/正理, 올바른 도리로 돌아간다는 뜻의 사필귀정/事必歸正도 15.5%(112명)의 지지를 받아 3위를 차지.
사필귀정
잘못된 일이 바로잡히길 바라는 한해가 되길 바라는 기대감을 나타낸다.
김선범 울산대 교수(건축학부)
모든 것이 바르게 가려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류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