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7일 (금)
제목 : 하나님과 동행한 다윗
오늘의 말씀 : 사무엘상 17:28-37 찬송가: 432장(구 462장)
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29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30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중심 단어: 다윗, 블레셋 사람(골리앗),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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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28절: 큰형 엘리압에게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꾸지람을 들음
29절: 자신의 행위를 변명함
30절: 전쟁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과 계속 이야기함
31절: 사울의 부름을 받음
32절: 사울에게 용기를 주고 골리앗과의 싸움에 자원함
33절: 사울에게 전투 능력을 의심받음
34-35절: 사자나 곰과 싸워 치고 양 떼와 자신을 지킨 용사임을 말함
36절: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짐승처럼 치고자 함
37절: 자신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여호와를 의뢰함
도움말
1. 이유가 없으리이까(29절): ‘말(대꾸)이 없을 수 있습니까?’라는 뜻이다. ‘골리앗이 신성 모독하는데 하나님의 백성 된 자가 가만히 침묵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분노에 찬 말이다.
2. 하나님의 군대(36절): ‘하나님께서 대장 되신 군대,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 곧 ‘이스라엘’을 말한다.
말씀묵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다윗은 왕으로서의 자질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의심받았습니다. 우선 자신의 형제들에게 의심받았고(28절),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사울 왕에게도 의심받았습니다(33절). 그러나 주변 사람의 의심과 불신에 대해 다윗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 근거는 자신의 경험과 능력이었습니다(34-36절). 그는 자신이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와 직접 싸워 이겼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긍정적인 경험은 사람에게 용기를 줍니다. 다윗은 이런 자신의 승리가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37절). 그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낙관할 수 있었던 근거는 ‘하나님’과 ‘하나님과 동행했던 경험’과 ‘지금도 긴밀하게 유지되는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
우리도 다윗의 경우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불신과 비웃음으로 마음이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승리 비결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갈 때 승리를 확신하는 믿음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다윗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성경은 다윗의 용기가 어디에서 왔다고 말씀합니까(37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어디에서 용기와 능력을 얻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을 확신하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큰형 엘리압이 다윗에게 화를 내며 꾸짖는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왜 엘리압은 이렇게까지 다윗을 꾸짖고 있을까? 장남으로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엘리압은 사무엘이 막내이자 아버지의 양이나 치는 어린 목동 다윗에게 기름 붓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사무엘은 저 자식에게 기름을 붓는 거야? 그런데 또 다윗은 사울의 은총까지 입었으니 다윗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니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더 화가 나게 했던 것은 다윗의 반응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그러면서 여전히 돌아다니면서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을 부른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하는 말이 놀랍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도 기가 막혀서 사울이 다윗에게 말한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은 전혀 두려움 없이 사울에게 말한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러자 사울이 다윗에게 골리앗과 싸우는 것을 허락한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 장면을 보면서 바디매오가 생각났다.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외치기 시작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많은 사람이 잠잠하라고 꾸짖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의지를 가지고 더 크게 소리친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보기를 원하나이다”“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비록 형 엘리압 눈에는 다윗이 교만하고 완악하고 전쟁을 구경하러 온 어리석은 막내로 보고 화를 냈지만 다윗은 억울했다. 사울 앞에 섰을 때도 “넌 안돼!”라고 했어도 다윗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포상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사울의 사위 자리가 탐나서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눈을 가진 다윗은 골리앗은 그저 사자나 곰과 같은 짐승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양치기로 살면서 항상 맹수들과 맞서 싸우며 살아왔다. 그렇게 혼자서 맹수들과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만군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 나에게 묻고 계신다.
엘리압의 꾸짖는 소리에도 다윗처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울의 ‘너는 안 돼!’라는 거절에도 바디매오처럼 그 크게 소리지를 수 있겠느냐?
너는 지금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음을 믿고 있느냐?
이새의 여덟 번째 막내아들, 아버지의 양을 치는 목동, 형들에게 귀여움을 받기보다 ‘막내가 뭘 해’라고 무시당하며 살아왔던 다윗. 하지만 그는 아무도 없는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며 사자와 곰과 싸웠다.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확실하게 믿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주님은 오늘 다시 내게 물으신다.
너는 지금 어디에서 담대함을 얻고 있느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곳에서? 평안하고 안정된 삶 속에서? 목사, 사관장이라는 직분을 통해서?
다윗은 그의 두려움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항상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골리앗을 그저 사자와 곰처럼 아버지의 양을 물어가는 짐승처럼 보았던 것이다.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습니다.”“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그러니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오늘 나는 마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혼자 열심히 땀을 흘리며 일하는 미련한 사람처럼 생각되어 마음이 힘들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아무도 없는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말씀하신다.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오늘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지금 어디에서 담대함을 얻고 있느냐? 라고 물으시는 주님.
큰 형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막내 다윗이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라고 항변하는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끼는 이 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들판에 홀로 남겨진 다윗처럼 모든 상황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이 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에게 담대함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곳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평안하고 안정된 삶 속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목사님, 사관장님 이라고 불려지는 직분에서 오는 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저도 다윗처럼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도 바디매오처럼 더 크게 소리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고난과 두려움속에서 이 종을 건져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다윗처럼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큰 두려움의 존재 골리앗을 그저 늘 함께 했던 짐승의 하나로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보여지고 그 하나님께서 작은 영혼과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세우는 종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